스타벅스 코리아, 전 매장 종이빨대 도입플라스틱 빨대 퇴출 이어 일회용컵 폐지도 추진공론장된 정용진 부회장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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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준 굵직한 발명들이 있지만, 가끔은 생활 속에서 '없다는 것'을 상상해보지 못한 것들이 다가올 때가 있다. 포털 사이트에 '누가 발명했을까'라고만 검색해도, 그런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우산은 누가 발명했을까요?", "병뚜껑은 누가 발명했을까?", "엘리베이터는 누가 발명한걸까", "에어컨 발명한 사람 누군가요?"라는 글은, 정말 '누가' 발명했는지 궁금해서 쓴 글은 아닐 테다. 누군지 모를 그의 업적을 치하하는 글이다.

    동시에 "숙제는 누가 발명한건가요", "술은 누가 발명한걸까요?", "라면은 대체 누가 만들었나요?" 같은 글들도 눈에 띈다. 도대체 왜 이런 것을 발명해서 나를 힘들게 하는지를 뜻하는 '애증'의 표현이다. 이 중에 눈에 띄는 글이 있다. 당신도 한번쯤은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일지도 모른다. 

    "종이 빨대, 그거 도대체 누가 만든거예요?"

    종이 빨대는 사실 우리가 흔히 쓰는 '플라스틱 빨대'보다 먼저 등장한다. 이 질문 역시 종이 빨대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 진짜 궁금하는 의미는 아니겠지만, 19세기 후반 미국의 마빈 체스터 스톤은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빨대로 제공된 호밀 줄기를 보고 종이를 말아 종이 빨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엔 획기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이후 석유화학 산업 발전으로 등장한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던 현대인에게 종이빨대는 '애증'의 존재가 됐다. 플라스틱에 비해 음료를 먹는 용도로 불편한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플라스틱 빨대가 얼마나 환경을 해롭게 하는지는 익히 들었으리라 믿는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친환경에 대해 모순적인 마음을 갖고 산다. 환경을 위해 편리함을 조금은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불편함을 얼마나 감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의견이 나뉜다. 사실 어떤 사람은 왜 환경이 내 편리함을 우선하느냐고 따질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마음을 숨기고 산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환경 따위 개나 주고 나는 플라스틱을 마구 쓰겠다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하지만 '한 명'이 그렇게 외치는 순간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사회성을 가진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의견분위기 지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고, 나와 같은 의견이 '다수'임을 지각하는 순간 의견을 표명할 의지가 생기기 마련이다.

    갑작스럽게도, 그런 공론의 장이 생겨났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개인 SNS다. 스타벅스코리아의 신메뉴 사진을 올린 정 부회장은 '해시태그'로 이렇게 달았다. "빨대는 #개인소장품". 그는 '플라스틱 빨대'를 직접 챙겨와 스타벅스 컵에 꽂았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신메뉴가 아닌 '플라스틱 빨대'였다는 점이 중요하지만 말이다. "빨대 좀 바꿔주세요", "빨대로 먹는 음료가 사실 더 맛나지요(맛있지요)", "종이빨대 폐지해주세요", "진짜 종이 빨대 좀 어떻게 해달라고요", "형 종이빨대 못쓰겠어요", "스벅 종이빨대 너무 싫어요"라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 ▲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인스타그램 캡처.
    ▲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인스타그램 캡처.
    스타벅스 코리아는 '친환경 정책'에 적극적으로 앞장서는 업체다. 열심히 친환경 정책을 펼치는 식품기업을 꼽으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다섯 손가락 안에 스타벅스를 꼽을 것이다. 플라스틱 빨대를 퇴출하더니, 이제 일회용 플라스틱 컵까지 퇴출하겠다고 나선 업체다. 스타벅스는 이를 '선한 영향력'이라 부른다.

    하지만 한국에서 스타벅스를 이끄는 신세계그룹의 수장은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개인 빨대를 쓰겠노라고. 잘못되지 않았다. 친환경은 강요할 수 없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플라스틱 빨대를 쓰든 금으로 만들어진 빨대를 쓰든 비난할 수는 없다.

    기업과 경영자가 한 몸인 것은 아니다. 기업의 행보와 경영자의 태도가 엇박자를 내는 것을 두고 문제인 쪽을 찾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엇박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환경이라는 인간의 과제를 염두에 둔다면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스타벅스는 그 글을 미워할 수 있다. 친환경 정책을 펴고 함께 해달라 외치던 실무자들은 그 글에서만큼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 수장조차 따르지 않는 정책으로 소비자들을 괴롭혀온 사람들이 됐다.

    스타벅스가 플라스틱 빨대를 퇴출한 것은, 소비자들을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다. 돈을 아끼고자 한 것도 아니다.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첫걸음을 걷겠다며 불편하다는 소비자들의 원망도 감수했다. 소비자들이 마음껏 원망을 퍼부을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만든 것은 스타벅스 경쟁사도 아니었다. 그래서 스타벅스는 그 공론장을 씁쓸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