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7억달러 검사 중… 규모 커질 듯작년 4월 미리 경고… 은행 내부통제 또 도마에김치프리미엄 환치기 무게… 자금세탁 배제 못 해금감원 "책임소재 밝힐 것"… 유통경로 파악 집중
-
7조원이 넘는 불법 외환송금 실체가 드러나면서 금융권 전반에 퍼진 안일한 인식이 도마 위에 올랐다. 막대한 국부가 어두운 경로가 아닌 제1금융권을 통해 유출됐다는 점에서 은행권 내부통제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다.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거액 해외송금 사건과 관련해 점검하고 있는 은행권 거래 규모는 53억7000만달러(7조원)에 달한다. 금감원은 송금행태가 정상적인 거래로 볼 수 없는 불법 요소가 명확하다고 보고 있다. 은행들의 자체 조사 결과 보고 후 금감원의 추가 검사가 마무리되면 그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대부분의 외화 송금은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로부터 이체된 자금이 무역법인 계좌로 모였고 이를 수입대금 지급 등의 명목으로 해외법인에 송금된 행태다. 이 과정에 연루된 국내 업체는 22개다. 귀금속 업체, 여행업, 화장품 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벌어졌다.무역대금으로 송금되기 전 이용된 계좌들과 법인 간에는 대표가 같거나 사촌 관계이고, 한 사람이 임원을 겸임하는 등 특수관계가 많았다. 송금된 국가는 홍콩이 25억 달러로 가장 많았고, 일본 4억 달러, 미국 2억 달러, 중국 1억2000만 달러 순이었다.유출 외화는 가상자산이 국내와 해외 가격이 다른 시세차익을 노린 환치기 거래로 금감원은 보고 있다. 외국인들이 해외에서 코인을 산 뒤 국내에서 팔아 차익을 얻고 다시 해외로 빼나가는 방식이다. 김치 프리미엄이라고도 불린다. 지난해 비트코인 가격이 8000만원을 넘어서는 등 급등할 때 김치 프리미엄은 20%대까지 치솟았다.문제는 환치기 거래가 유행할 우려가 금융권 안팎에 제기됐다는 점이다. 금감원도 지난해 4월 주요 시중은행에 고객이 5만원 달러 이상 송금을 요청하거나 외국인이 여권상 국적과 다른 국가로 송금을 요청하면 거래를 거절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금융당국이 주의를 줬지만 은행들이 눈여겨 보지 않았다는 얘기다.은행들은 내부통제 시스템이 미비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현재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에 대해 검사가 진행 중이나 전 은행으로 검사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라며 "업무 최우선 순위로 삼아서 불법적인 것을 밝히고 책임 있는 사람에 대해 일벌백계 하겠다"고 강조했다.금감원은 전 은행권 검사가 마무리 되는대로 책임소재를 찾겠다는 방침이다. 이준수 금감원 은행 담당 부원장은 "실제 어떤 부분에서 내부통제가 이뤄지는지 현장에서 어떻게 대처했는지 자세히 살펴보겠다"고 했다.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만에 하나 자금세탁 등과 관련이 있다면 금융기관의 막중한 책임이 있을 것"이라며 "내부통제장치 시스템 점검과 함께 책임을 물려야 한다"고 강조했다.유출된 자금이 어디로 유통됐는지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단순 환치기 거래로 보기에는 규모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에서는 지난해 2월부터 7월까지 11개 지점에서 1238회에 걸쳐 2조5000억원 이상의 외화 송금이 이뤄졌다. 우리은행에서는 지난해 5월 부터 올해 2월까지 5개 지점에서 931회에 걸쳐 1조6000억원 송금됐다.자금세탁을 위한 해외 송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가 시장 교란과 외화 유출 행위로 보고 국정원과 검찰 등과 공조해 자금 흐름 파악에 집중하고 있다. 이용우 민주당 의원은 "만약 달러 송금이 불법, 테러, 적성국가 자금과 연계됐을 경우 미국 은행 비밀보호법, 애국자법 등에 따라 벌금 또는 미 은행계좌 폐쇄 제재 등과 같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