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삼성 신경영' 선언… '세계의 삼성' 도약 밑거름'학력-성별' 등 인사 차별 타파… '인재육성' 평생 공들여'위대한 기업인' 넘어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높은 평가 받아
  • ▲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삼성전자
    ▲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삼성전자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2주기 추모식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유족들 참석 속에 25일 오전 경기도 수원 선영에서 진행됐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14년 5월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6년 5개월여간 투병하다 2020년 10월 25일 새벽 향년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 회장은 1987년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삼성을 '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변모시켰다. 취임 당시 10조원이었던 매출액은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었으며, 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359배,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무려 396배나 증가했다.

    이러한 외형적인 성장 외에 선진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고 도전과 활력이 넘치는 기업문화 만들어 경영체질을 강화하며 삼성이 내실 면에서도 세계 일류기업의 면모를 갖추도록 했다.

    1993년 이 회장은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경영 전 부문에 걸친 대대적인 혁신을 추진했다. 이 회장은 혁신의 출발점을 '인간'으로 보고 '나부터 변하자'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는 ▲인간미 ▲도덕성 ▲예의범절 ▲에티켓을 삼성의 전 임직원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가치로 보고 양을 중시하던 기존의 경영관행에서 벗어나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경영의 방향을 선회했다.

    이같은 노력을 통해 삼성은 1997년 한국 경제가 맞은 사상 초유의 IMF 위기와 2009년 금융 위기 속에서도 성장했다.

    2021년 브랜드 가치는 746억달러로 글로벌 5위를 차지했고 스마트폰, TV, 메모리반도체 등 20개 품목에서 월드베스트 상품을 기록하는 등 명실공히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했다.

    이 회장의 경영철학은 '인간중시'와 '기술중시'를 토대로 질 위주 경영을 실천하는 '신경영'으로 대표된다. 신경영 철학의 핵심은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자기 반성을 통해 ▲변화의 의지를 갖고 ▲질 위주 경영을 실천해 ▲최고의 품질과 최상의 경쟁력을 갖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자는 것이다.

    이에 이 회장은 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 차별을 타파하는 열린 인사를 지시했고, 삼성은 이를 받아들여 '공채 학력 제한 폐지'를 선언했다.

    이 회장은 인재 확보와 양성을 기업경영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인식했으며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글로벌 인재를 양성했다. 이 회장은 인재제일의 철학을 바탕으로 '창의적 핵심인재'를 확보하고 양성하는데도 힘썼다.

    인재 육성과 함께 이건희 회장은 기술을 경쟁력의 핵심으로 여겨 기술인력을 중용함으로써 기업과 사회의 기술적 저변을 확대했다. 사업에서는 반도체 산업이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에 부합하며, 한국과 세계경제의 미래에 필수적인 산업이라 판단하고 1974년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반도체사업에 착수했다.

    이후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1984년 64K D램을 개발하고 1992년 이후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속 달성해 2018년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44.3%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이를 통해 ▲세계 최초 4기가 D램 개발('01) ▲세계 최초 64Gb NAND Flash 개발('07) ▲세계 최초 30나노급 4기가 D램 개발과 양산('10), 세계 최초 20나노급 4기가 D램 양산('12) 등 축적된 기술력이 토대가 됐다.

    해외에서도 '한국의 삼성'을 '세계의 삼성'으로 성장시킨 뛰어난 경영자로서의 업적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외신들은 2020년 10월 이건희 회장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삼성을 혁신기업으로 만든 선구자"(로이터), "한국을 대표하는 카리스마적인 경영자"(NHK), "삼성그룹 중흥의 시조"(닛케이)라고 평가했다.

    각계 오피니언 리더들은 회장님을 '위대한 기업인'을 넘어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본 '철학자'이자 '사상가', '예술가'로 기억했다.

    이우환 화백은 문예지 월간문학 21년 3월호에 실린 '거인이 있었다'라는 제목의 추모글에서 "내겐 이건희 회장은 사업가라기보다 어딘가 투철한 철인(哲人)이나 광기를 품은 예술가로 생각됐다"고 추억했다.

    이경숙 전 숙명여대 총장은 이 회장의 기부 사연을 담은 추모글을 대학 관계자들에게 전하며 "고인은 기업인이라기보다 철학자였다"며 "'나라가 잘돼야 기업이 잘된다. 기업은 국가 발전에 보탬이 되는 사업을 해야 한다'는 뚜렷한 소신을 갖고 있었고 그 중심에 인재 양성이 있다는 신념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송재용 서울대 교수는 지난해 10월 한 언론사 기고문을 통해 "이 회장은 글로벌화, 디지털화. 지식기반경제화라는 21세기 패러다임 변화를 예견하고 이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21세기 글로벌 초일류기업'의 원대한 비전을 제시한 비전가"라고 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은 시대를 앞서가는 통찰력으로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고, 한국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이끈 '대한민국 역사의 비저너리'"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사회공헌을 기업에 주어진 또 다른 사명으로 여기고, 이를 경영의 한 축으로 삼도록 했다.

    삼성은 국경과 지역을 초월하여 사회적 약자를 돕고 국제 사회의 재난 현장에도 구호비를 지원하고 있는데, 1994년 삼성사회봉사단을 출범시킨 이래, 조직적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회장의 독특한 경영철학은 임직원들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끼쳐, 매년 수십만명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고아원, 양로원 등의 시설에서 봉사하고 자연환경 보전에 땀 흘리고 있다.

    아울러 이 회장은 IOC 위원으로서 스포츠를 국제교류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촉매제로 인식되고 있다.

    1997년부터 올림픽 TOP 스폰서로 활동하는 등 세계의 스포츠 발전에 힘을 보탰다. 특히 이 회장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꾸준히 스포츠 외교 활동을 펼쳐, 평창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최초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데 크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