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경기 침체·유동성 악화로 자금난 심화…법정관리 돌입'속초 헤리엇더 228' 미분양…입주지연에 부실시공 의혹도부동산PF 위기에 중소건설사 폐업 속출…올해 상반기 고비
  • 에이치엔아이엔씨 본사가 위치한 아도라타워 전경. ⓒ뉴데일리DB
    ▲ 에이치엔아이엔씨 본사가 위치한 아도라타워 전경. ⓒ뉴데일리DB
    도급순위 133위 중견건설업체인 '에이치엔아이엔씨(HN Inc)'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건설업계 '줄도산 공포'가 또다시 엄습하고 있다. 주택거래침체로 인한 자금시장 경색과 미분양 증가, 원자잿값 상승 등 삼중고로 중소·중견사들이 고사위기에 처한 가운데 이들과 연계된 하도급업체와 자재업체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2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회생법원에 법인회생을 신청한 에이치엔아이엔씨는 건설경기 침체와 부동산PF 위기로 인한 유동성 악화 등으로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려왔다.

    엎친데덮친격으로 지난해 8월 강원 속초시 장사동 '속초 헤리엇 더228' 공급결과 214가구 모집에 117가구가 미달되는 등 참패를 겪었다. 턱없이 부족한 생활인프라와 속초시내에서 단지까지 차로 10분이상 소요되는 애매한 입지가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다.

    그해 강원도내에서 주인을 찾지 못한 단지는 이곳이 처음이었다. 당시 강원지역은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 효과에 힘입어 '불장'으로 불릴 만큼 청약성적이 우수했다.

    입주지연과 부실시공 의혹으로 브랜드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에이치엔아이엔씨는 2020년 3월 경기 화성시 동탄2택지개발지구 C16블록에 '동탄역 헤리엇' 착공에 들어갔다. 당초 이 단지 입주예정일은 2022년 10월30일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재자 수급차질과 노조파업 등으로 주택건설사업계획변경을 3차까지 요청하면서 입주예정일이 올해 1월20일까지 미뤄졌다.

    입주예정자 혼란이 가중된 가운데 시행사와 시공사가 지체보상금 지급을 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사전점검과 입주를 앞당기면서 부실시공 의혹도 불거졌다. 앞서 시공감리단은 화성시청에 '공정률을 고려하면 3월에나 입주가 가능하다'는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입주예정자들은 입주지연에 따른 이사 및 직장문제와 안전불감증 등을 토로하며 화성시에 1만여건이 넘는 집단민원을 제기했다.

    에이치엔아이엔은 현대가 3세인 정대선씨가 2008년 설립한 회사다. 원래 사명은 현대BS&C였지만 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 브랜드 사용을 저지하기 위해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해 2021년 1월 사명을 변경했다.

    정씨는 현재 이 회사 최대주주로 지분 81%를 보유중이다. 그는 2006년 노현정 전 아나운서와 결혼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정씨 부친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4남인 고 정몽우 회장이다.

    최근 중견건설사의 법정관리행이 잇따르자 업계에서는 지난해부터 제기된 줄도산 공포가 현실화됐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도급순위 202위 우석건설(충남 6위)과 388위 동원건설산업(경남 18위)이 부도처리 됐고 올해초에는 83위 대우조선해양건설마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업계내 위기감이 확산됐다.

    이미 지방 중소건설업계에서는 폐업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 통계를 보면 22일 기준 올해 폐업한 종합·전문건설업체는 831개에 달했다. 이중 71.4%가 지방업체로 업계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미분양물량은 지방에 집중돼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월기준 전국 미분양주택 7만7359가구중 약 83%(6만4102가구)가 지방에 소재해 있다.

    중견건설사 한 관계자는 "정부가 1·3대책을 통해 서울 강남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전지역 규제를 풀면서 서울과 수도권 인기입지로 청약수요가 쏠렸고 반대로 비규제지역을 강점으로 내세운 지방 부동산시장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며 "대형사는 현금성자산으로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지만 중소업체는 미분양사업장이 한곳만 나와도 존폐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미분양 증가에 부동산PF 자금경색, 원자재가격 급등으로 인한 공사비 부담까지 겹치자 올 상반기 중견사 연쇄부도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최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지방중소 건설기업은 대기업과 수도권 소재 중소건설기업보다 한계기업과 부실위험기업 비중이 더 크게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은이 사업보고서를 공시한 비금융 상장기업 2392개중 건설업 72개기업을 분석한 결과 상장건설기업은 지난해 1∼3분기중 상환능력·유동성·안정성이 저하됐다. 영업이익만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취약기업비중은 지난해 9월기준 36.1%로 2021년 말(28.9%)보다 상승했다.

    같은기간 유동성 우려 기업비중도 18.1%로 전년(13.3%)보다 커졌다. 부채비율은 지난해 9월말 기준 107.9%로 2021년말(97.4%)보다 상승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건설경기가 여전히 좋지 않은 상황에 건설업계 '돈맥경화'가 장기화되면 부도위기가 중소·중견사를 넘어 대형사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중반이후 금리상승 추세가 진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상당수 건설사들 사업장이 한계상황에 놓인 만큼 상반기부터 PF사업 부실문제가 본격화될 수 있다"며 "공적보증기관 보증여력을 확대해 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 불안정성을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