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등장 'AI 르네상스' 시대 열려글로벌 각국 AI 규범 마련 각축전韓 '디지털 권리장전' 선제적 발표규제보다는 성장에 초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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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인공지능(AI) 르네상스 시대다. 하루가 멀다하고 정부의 정책이 쏟아지는 데다가, 기업들의 사업 소식이 전해진다. 업종에 상관없이 기업들이 AI를 미래 먹거리로 규정하고 로드맵을 짜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사실 AI라는 용어는 17~18세기부터 거론됐다.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2016년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으면서다. 이후 2023년 '챗GPT(Chat GPT)'에 따른 생성형 AI 등장으로 전성기가 도래한다. 다양한 사업 분야와 접목해 수익성과 부가가치가 창출된다는 점에 기업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AI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성장하면서 국내 ICT 기업들도 시장 선점에 사활을 걸고 있다. 대표적으로 통신사들은 수년 전부터 '탈통신'을 표방하며 AI 사업 발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유영상 SK텔레콤 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를 통해 "AI 골드러시가 바야흐로 시작됐다"며 해당 사업에 진취적인 모습을 내비쳤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포털 업계와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게임 업계도 AI 경쟁 최전선에서 고군분투 중이다.하지만 AI를 활용한 딥페이크(Deep fake) 뉴스, 저작권 침해 문제 등 각종 부작용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최근 미 의회에서 비공개로 개최한 AI 인사이트 포럼에서 일론 머스크 CEO는 "AI는 양날의 검"이라고 평가했다.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동시에 문명에 대한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AI 윤리 문제가 급부상하면서 세계 각국과 빅테크 기업들은 AI 규범 마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AI 후발주자인 우리나라로서는 AI 규범 마련을 기회로 내다봤다. 디지털 분야 전반을 아우르는 표준을 정립해 세계 시장에서 주도권을 쥘수 있다는 기회의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뉴욕 구상을 통해 디지털 질서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규범 마련을 위한 국제기구 설치 및 국제사회의 행동을 촉구했다. 그 결과를 종합한 것이 '디지털 공동 번영 사회의 가치와 원칙에 대한 헌장(憲章)이다.디지털 권리장전은 '자유·공정·안전·혁신·연대' 등 5대 원칙을 주요 골자로 총 6장, 28개조가 담긴 본문으로 구성됐다. 디지털 심화 시대에 맞는 국가적 차원의 기준과 원칙을 제시하고, 글로벌을 리드할 수 있는 보편적 디지털 질서 규범의 기본방향을 담았다. AI 규범에서 주도권을 획득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선제적으로 구상했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디지털 권리장전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은 반신반의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법과 제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찬성하지만, 자칫 규제로 얼룩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가짜뉴스와 디지털 정보 격차 해소 등의 현안을 기업 규제로 풀어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추후 디지털 권리장전에 법적 강제성이 부과될 경우 기업들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전문가들도 AI 규범 체계를 선제적으로 마련한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자국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의 체계를 만든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소리다. 디지털 권리장전을 필두로 우후죽순으로 규제 법안을 내놓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 하정우 네이버 AI 연구 소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글로벌 AI 시장은 국가대항전을 맞았다. 규제보다는 성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글로벌 AI 경쟁에서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기른 다음에 규제를 해도 늦지 않다. 5세대 이동통신(5G)의 경우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에 얽매여 서비스를 무리하게 밀어붙인 결과 현재까지도 품질 논란에 자유롭지 않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먼저 제정된 구글갑질방지법(인앱결제 강지 금지법)도 2년만에 실질적인 제재가 이뤄지며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걸음마 단계인 한국 AI 기업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질책보다는 격려와 지원이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도 스타트업에 불과했지만 MS의 전폭적인 투자와 정부의 비호아래 황금알을 낳게 됐다. 미국이 국가별 AI 스타트업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는 반면, 한국이 10위 안에도 못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업계의 생태계를 고려한 한국형 AI 규범을 촘촘히 마련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주도권을 잡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