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국회 환노위 전체회의서 '중처법 유예 반대' 공세"노동부 의견서 제출에 실망… 노동자 목소리 반영 안 해"이 장관 "법안에 '이견이 없다' 정도 취지… 중기 지원책 곧 발표"
  •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생명안전 후퇴 및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저지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생명안전 후퇴 및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저지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의 적용 유예에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정부와 여당은 중소기업계의 현실을 고려해 유예해야 한다는 견해지만, 야당의 반발에 막혀 관련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중소기업계는 내년 시행까지 불과 두 달여밖에 남지 않았다며 고충을 호소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는 23일 전체회의를 열고 총 19건의 법안을 심사했다. 이날 회의에서 민주당은 중처법 유예를 주요 화두로 정부를 향해 공세를 퍼부었다. 

    중처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이거나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인 건설업 사업장에서 인명피해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에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을 내리는 법이다. 지난해 1월 27일부터 시행했지만, 50인 미만 사업장과 50억 원 미만의 건설업 사업장엔 적용을 2년 유예했다. 확대 적용 시기는 내년 1월 27일부터다.

    중소기업계는 중처법 시행에 대비하기엔 유예 기간이 짧다고 우려해왔다. 이에 여당은 중소기업계 입장을 대변해 지난 9월 중처법 유예 법안을 발의했다. 환노위 소속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해당 법안에는 중처법 확대 적용 시행일을 내년 1월 27일에서 오는 2026년 1월 27일로 2년 늦추는 내용이 담겼다. 노동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들은 법안에 이견이 없다는 의견서를 국회에 전달하며 유예 추진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노동부가 적용 유예와 관련해 긍정적인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한 사실을 두고 마뜩잖은 심기를 드러냈다.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한국은 전세계에서 산업재해 사망률이 제일 높은 나라로 꼽힌다. 노동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중점적으로 살피는 게 아니라 기업 중심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면서 "정부가 어떻게 대응해 나갈 건지 명확한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이수진 의원은 "노동부가 곧바로 그런 의견서를 제출하는 것을 보고 실망했다"면서 "중처법이 개정된 이후 산재 사망사고가 줄다가 유예한다는 얘기가 돌기 시작하자 다시 늘어나고 있다. 정부 정책이 일관되게 시행돼야만 기업과 시민이 협조하고 옳은 방향이라 믿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의원은 "50인 미만 사업장의 산재 비중이 80%에 가까운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중처법 적용을 유예하는 방향으로 갈 수는 없다"면서 "오히려 노동부는 (유예하는 게 아니라) 중소기업의 중처법 대비를 더 지원해서 법 시행에 어려움이 없도록 하겠다고 얘기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정부가 보낸 의견서에는 사용자 목소리만 있고 목숨을 내놓은 채 일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는 담겨있지 않다"면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죽는 건 노동자인데 왜 한쪽만의 목소리가 담긴 의견서가 국회에 제출됐는지 유감스럽다"고 했다.

    이어 "중처법 유예 법안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앞으로 조금만 더 버티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잘못된 신호를 주게 된다"면서 "노동부가 중처법을 유예하자고 주장하는 건 대단히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꾸짖었다.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마이크 위치를 조정하고 있다.ⓒ연합뉴스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마이크 위치를 조정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해명에 나섰다. 그는 "노동부가 국정과제 1번으로 삼은 게 중대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일이다. 중대재해 예방에 역랑을 최대한 집중하고 있다"면서 "그동안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만들어 발표하고, 50인 미만 사업장 43만 개소에 대해 컨설팅과 관리자 교육 등을 실시하는 등 열심히 노력해 왔다. 앞으로도 가용 가능한 자원을 총동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중처법 유예 법안에 대해서는 "여야 의원이 논의하면 법이 실효성 있게 작동할 수 있도록 적극 참여할 것"이라면서 "노동부는 임 의원이 발의한 내용에 대해 '이견이 없다' 정도의 취지로 답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중소기업의 중처법 대응을 위한 집중 지원 대책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처법 유예 법안은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여야 간사 간의 합의 불발로 상정되지 않았다. 현재로선 다음 법사위 회의 일정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중처법 확대 적용이 유예 없이 그대로 시행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중소기업계는 유예 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22일 '법사위 상정 무산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83만이 넘는 소규모 사업장의 절박한 호소에도 국회가 이를 외면한 채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면서 "중소기업 대부분이 법을 준수하고 싶어도 준수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실질적으로 중대재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준비 기간을 줘야 한다. 내년 법 시행까지 시간이 촉박한 만큼 하루빨리 유예 법안을 통과시켜달라"고 호소했다.
  •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가 23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가 23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한편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간담회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처법 적용을 2년 유예했는데도 그동안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면서 "준비 소홀에 대한 정부 사과를 전제로 유예기간 연장을 생각할 수 있다. 정부의 구체적이고 확실한 로드맵이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유예 가능성을 시사하며 유보적인 태도를 취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