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평균 밑도는 2% 초반대 완만한 'U자형' 성장… 저성장 고착화 우려물가 안정 흐름 이어지나, 누적된 비용압력 등 불확실성 커 둔화 속도는 완만금리인하 기대감 고조… 연준發 조기 피벗 '시기상조'·한은 "장기간 긴축기조 지속"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반도체 수출 16개월 만에 반등·불황형 흑자 탈출 고무적노동·교육·연금 개혁 박차… 尹정부 2기 체제 구축, 고부가가치 창출·규제 철폐
- 2024년. '푸른 용의 해'가 밝았다. 새 희망을 품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3년째 되는 해이자 여러 의미로 중요한 총선이 열리는 해이다. 한국 경제를 보면 올해도 녹록잖은 한 해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밖으로는 신냉전으로 불리는 미·중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결과에 따라 세계 경제에 상당한 파급력을 미칠 미 대선이 치러진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그에 따른 경제 블록화, 지정학적 리스크 등 대외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금리 인하가 기대되지만, 그 시기를 두고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엇갈린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여전한 고물가 기조와 실업 한파 우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가계대출 급증, 저출산 문제 등 풀어야 할 과제가 한가득이다. 새해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새 희망을 쏘아 올릴 성장 모멘텀은 무엇이 있는지 짚어본다. <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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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6%.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제성장률은 1.4%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지난해보다는 개선되겠지만, 새해도 경제 환경은 녹록잖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전망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2.2%다. 기존 2.3%에서 0.1%포인트(p) 하향 조정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2%,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각각 2.1%로 예상한 상태다. 저성장이 고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다.대한상공회의소의 '2024년 경제키워드와 기업환경 전망에 대한 전문가 의견 조사' 결과를 보면 90명의 전문가 중 48.9%가 새해 우리 경제의 경기 추세를 'U자형의 느린 상저하고(上低下高)'로 전망했다. 과거에는 경기가 악화한 다음에 'V자형'으로 반등하며 회복속도가 빨랐는데 이제는 노동생산성 등 경제 기초체력이 약해져 가파른 회복력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셈이다.설상가상 IMF와 OECD는 올해 세계 경제가 2.9%, 2.7% 성장할 거로 내다봤다. 지난해보다 각각 0.1%p, 0.2%p 낮은 수준이다. IMF는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올 성장률 전망치를 4.2%로 기존보다 0.3%p 내려 잡았다. OECD는 종전보다 0.1%p 높인 4.7%로, IMF보다는 높게 전망했다. 다만 두 기관 모두 성장률이 지난해보다 0.8%p, 0.5%p 둔화할 거로 봤다.한국의 성장률은 세계 성장률 평균을 밑돈다. 더욱이 세계 경제의 성장회복세가 지난해보다 둔화한다는 것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선 달갑잖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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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한풀 꺾이면서 금리 인하 기대감을 키우는 것은 그나마 고무적이다. 물가는 지난해 8월(3.4%) 이후 5개월 연속 3%대에 머물렀지만, 10월 3.8%, 11월 3.3%, 12월 3.2%로 둔화세를 보였다. 기획재정부는 "겨울철 기상, 국제유가 등 불확실성이 있지만, (올해도) 물가 안정 흐름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다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석유류 제외지수)는 완만한 내림세를 보이고는 있으나, 지난해 4.0%로 전년(4.1%)보다 고작 0.1%p 내리는 데 그쳤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지난해 12월29일 열린 '물가상황 점검회의'에서 "농산물가격이 점차 안정되고 국제유가가 다시 크게 상승하지 않는다면 물가상승률은 둔화 추세를 나타낼 것이나 그 속도는 완만할 것"이라며 "물가 전망 경로상 유가, 농산물가격 추이, 국내외 경기흐름, 누적된 비용압력 등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한은은 지난해 11월 말 내놓은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은 2.1%로 0.1%p 내리고, 물가는 2.6%로 기존 전망보다 0.2%p 올려 잡았다. 한은은 지난달 29일 발표한 '2024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에선 "물가가 내년 4분기 이후에나 목표수준(2%)으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가계부채 누증 위험과 일부 비은행금융기관의 부동산 익스포저(위험노출액) 리스크 등에 유의해 통화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며 "물가가 목표수준에서 안정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충분히 장기간 긴축기조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글로벌 금리 인하 열쇠를 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지난해 12월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3연속 동결(연 5.25~5.5%)하며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적 피벗(정책기조 전환)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이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추가 긴축 카드를 여전히 정책 테이블에서 내려놓지 않았다"면서도 "긴축 사이클에서 기준금리가 고점 또는 그 부근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긴축 정책의 수준을 언제 되돌리는 게(금리 인하) 적절하겠느냐는 질문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이날도 논의가 이뤄졌다"고 언급해 연말 증시 랠리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연준은 올해 말 기준금리 중간값으로 4.6%를 제시한 상태다. 올해 0.25%p씩 3차례 인하를 시사한 셈이다.지난달 29일(현지시각) 연방기금(FF) 금리 움직임을 예측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 프로그램에 따르면 연준이 오는 3월에 금리를 내릴 가능성은 86.6%를 기록했다. 고용지표 등 미국의 여러 경제 지표는 연착륙과 함께 금리 인하 기대감을 키우는 중이다. 미 상무부가 발표한 지난해 11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1년 전과 비교해 2.6% 상승했다. 2021년 2월(1.9%) 이후 2년9개월 만에 가장 낮다. 미 PCE 가격지수는 소비자가 상품·서비스 구매 시 지불하는 가격을 측정하는 지표다. 연준은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소비자물가지수(CPI)보다 PCE 가격지수를 더 중시한다.그러나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선 전문가들도 의견이 갈린다. 일부 연준 위원은 파월 의장 발언을 진화하고 나섰다.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시장은 (연준이) 말해줬으면 하는 바를 (연준이 실제로 했다고) 덮어씌우는가"라고 반문했다. 존 윌리엄스 뉴욕 연은 총재는 "(연준은) 금리 인하를 얘기하고 있지 않다. 파월 의장 말대로 인플레이션을 목표치(2%)로 돌려놓기 위해 충분히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있는지 질문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즉 시장의 바람처럼 조기 피벗에 대해 논의한 게 아니라고 선을 긋고, 금리 인하는 시기상조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분명한 것은 한은이 미국보다 선제적으로 금리를 내릴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은 만큼 올해도 우리 경제가 상당 기간 고금리 후폭풍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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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은 싹트고 있다. 먼저 수출이 뚜렷한 회복세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이는 고무적이다. 관세청이 지난해 12월 1~20일 잠정 집계한 수출액(통관 기준)은 378억7200만 달러다. 1년 전보다 13.0% 증가했다. 조업일수를 고려한 하루평균 수출액은 24억4000만 달러로, 역시 13.0% 늘었다.그동안 12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던 수출은 지난해 10월부터 2개월째 플러스(+) 성장 중이다. 특히 전통적인 수출 효자품목인 반도체가 증가세다. 지난해 11월 12.9% 증가하며 16개월 만에 반등에 성공했고 지난달도 중순까지 19.2% 늘어 증가세를 이어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0월 이후 고정가격이 상승 중인 메모리반도체가 실적 개선을 견인하고 있다"며 "신형 스마트폰과 인공지능(AI) 서버용 제품 수요 확대 등으로 수급여건 개선이 기대된다. 앞으로도 수출 개선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무역수지도 6개월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을 기점으로는 수입 낙폭이 수출보다 큰 불황형 흑자에서 벗어나는 모습이다. KDI도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수출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상품수출이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서비스수출도 높은 증가세를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외생 변수가 없진 않다. 중국의 더딘 경제 회복과 부동산 거품, 미·중 갈등, 공급망 차질 등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다만 인도와 아세안, 중남미 등 신흥 시장 개척과 수출·공급선 다변화로 적응력과 경쟁력을 높인다면 올해가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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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3년 차를 맞는 윤 정부의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윤 대통령은 총선 등을 고려해 용산 참모진과 내각을 재구성했다. 정책 총괄 컨트롤타워 기능을 위해 폐지했던 정책실을 되살리며 승진 기용했던 이관섭 정책실장을 다시 최측근 비서실장으로 내정하고, 신임 정책실장에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비판했던 정통 경제학자인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를 깜짝 발탁한 것도 재정비한 2기 체제에 힘을 실어줘 개혁·정책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전문가들은 자유시장경제를 중시하며 '작은 정부'를 표방하는 윤 정부에게 규제 개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지적한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을 위해 규제 개혁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결국 (산업 구조를) 부가가치 높은 산업, 서비스산업으로 전환하고 규모화해야 한다. (규제에 막혀) 의료·법률·교육서비스도 좋은 일자리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실정"이라면서 "소비를 진작시키려면 소비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풀어야 한다. 가령 골프를 (자유롭게) 못 치게 하니까 외국으로 치러 나간다. 우버 등 스타트업을 하고 싶어도 규제 때문에 못 하는 처지"라고 부연했다.노동 개혁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그에 따른 긴축에도 미국 경제가 '나 홀로 호황'을 누리는 배경의 하나로 전문가들은 견조한 노동시장을 꼽는다. 이 교수는 해고와 취업이 자유로운 미국의 고용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해고가 자유롭다. 지금의 탄탄한 고용시장은 코로나19 때 해고가 이뤄졌고, 팬데믹이 풀리면서 그만큼 고용이 많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