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마다 금감원 기준 적용한 시뮬레이션 돌입기준안 타당한지 판례 등 법률 검토 병행銀 "기본배상비율 높아 난색… 공통 가중 쟁점"
  • ▲ ⓒ연합뉴스
    ▲ ⓒ연합뉴스
    금융감독원이 11일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ELS(주가연계증권) 상품의 대규모 손실에 대한 분쟁조정기준안을 내놓으면서 은행권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분쟁조정기준안은 판매원칙 위반 등 판매자 요인과 투자자별 고려 요소를 종합해 차등배상토록 했다. 그러나 은행의 경우 25~30%의 기본배상비율을 깔고 각종 종합 요소를 고려하는 방식으로, 기본배상비율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공통 가중 요인을 은행들이 인정할 경우 내부통제 미흡을 시인하는 것이라 은행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 기본배상비율안 은행 부담 커… 조정에 상당한 시간 소요

    투자자들의 민원과 소송이 더 늘어날 것을 예상한 은행들은 일단 대형 로펌과 손잡고 ‘사법 리스크’ 대비에 돌입했다. 

    이날 금감원의 분쟁조정기준안이 나온 이후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번 가이드라인은 과거 선례에 비해 정교하고 세밀하게 나온 것 같다”면서 “금감원의 배상비율 산정 방식 등이 타당한지를 관련 현행법과 앞선 판례 등에 비춰 살펴보고 소송 등 법률 리스크도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각 고객별 배상 수준을 시뮬레이션한 뒤 내부 이사회 보고 등 절차를 감안하면 결론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ELS는 앞서 발생한 DLF(파생결합펀드), 라임·옵티머스펀드와 달리 공모상품인 데다 비교적 정형화·대중화된 상품이라는 점에서 배상비율이 하향될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는 낮은 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금감원은 은행들이 ELS 수익률을 고객에게 안내할 때 ‘과거 20년 기준’ 원칙(설명의무위반)을 어긴 것으로 보고 일괄적으로 20% 기본배상비율을 적용했고, 공통 가중도 은행 대면판매의 경우 10%포인트를 가중 부과해 은행들은 기본배상비율을 30% 깔고 종합적 요소 등을 고려하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 디테일한 배상기준‧공통 가중, 은행‧금융사 모두 반발 우려

    이번 배상비율안을 보면 판매자 요인은 기본배상비율(20~40%)+공통 가중이다. 

    기본배상비율은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 위반 등 불완전판매 여부에 따라 적용된다. 공통 가중은 지배구조법 또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상의 내부통제 운영 미흡이 반영된다.  

    금감원은 기본배상비율 중 설명의무 위반사항을 모든 은행에 일괄 적용했다. 은행은 무조건 20% 기본 배상을 깔고 배상비율 협의에 나서야 한다. 

    여기에 적합성원칙 위반과 부당권유 등을 케이스마다 적용할 경우 최대 40%까지 배상비율이 책정된다. 

    공통 가중의 경우 은행 대면 판매는 10%포인트(비대면 5%포인트), 증권사 대면판매는 5%포인트(비대면 3%포인트)가 추가 가중된다. 

    즉 ELS를 대면판매한 은행은 30% 배상을 기본으로 삼고 차등배상을 적용해야 한다. 

    은행권에서는 이를 두고 불합리하다는 반응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공통 가중의 경우 내부통제 미흡이라는 같은 법 사안을 다룬 건데 은행은 10%포인트를, 증권은 5%포인트만 가중하는 게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은행들이 공통 가중을 받아들여 배상할 경우 내부통제 미흡을 시인하는 셈이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 ▲ ⓒ연합뉴스
    ▲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소비자와 금융사 간에 귀책사유에 따라서 배상비율을 차등화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분쟁조정기준을 보면 연령층 투자경험 여부, 투자목적, 창구의 충분한 설명 등 각종 요인에 따라서 배상비율이 달라진다는 점은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서 교수는 또 “다만 은행들에서 판매한 상품은 대다수 고연령층이나 투자경험 없는 분들도 포함돼 있어 만약 그런 분들이 본인 귀책 사유가 많아서 배상비율이 떨어진다고 했을 때 이 안건에 대해서 반발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예상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은행 영업점 창구에서 고위험상품을 팔게 한 금융당국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도 다수인 상황에서 ELS 배상비율을 가입 횟수 등 사안별로 정하는 건 주관적인 측면도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분쟁조정기준안에 따르면 ELS에 반복해서 고액을 투자했고 누적 수익도 이번 홍콩H지수 손실금을 넘어선 경우 등은 투자자 고려 요소가 마이너스(-)로 책정된다. 구체적으로 ELS 가입 횟수가 20회를 초과하는 경우(-2%포인트)부터 배상비율이 낮아진다. 

    지연 상환(-5%포인트)이나 녹인(knock-in·손실 발생 구간) 경험(-10%포인트), 손실 경험(-15%포인트)이 있어도 배상비율이 깎인다. 금융사의 불완전 판매가 인정되더라도 투자자의 성향에 따라 배상을 아예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서 교수는 “분쟁조정기준을 정교하게 만든 것은 좋지만 투자 횟수 등의 기준이 뭐냐고 물었을 때 애매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너무 정교한 기준이 특정 소비자나 특정 금융사의 이견이나 반발을 가져오진 않을지 우려된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