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탄핵에 정부 기능 상실… 입법·산업정책 '흔들'반도체·원전, 4대개혁 동력 쇠퇴… 국정마비 현실화손실만 수십조원 전망… "여야정 경제채널 가동 필요"
  • ▲ 국회 본회의장. ⓒ뉴시스
    ▲ 국회 본회의장. ⓒ뉴시스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해 온 여러 정책들도 추진 동력을 잃게 됐다. 탄핵안 부결→재발의 반복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경제에 미칠 악영향은 불가피하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경영 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산업경쟁력 마저 심각한 훼손을 입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탄핵으로 인한 국정 공백을 최소화해 자칫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골든 타임'을 놓치지 말고 정상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제언한다.

    15일 국회와 경제계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경제분야 법안은 총 12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법안은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반도체 특별법이다.

    이 법안에는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포함돼 있는데,  탄핵 정국으로 여야 대립이 극심해지면서 주 52시간 근무 제외 등 핵심 쟁점에서 여야 간 시각차를 보이면서 사실상 내년으로 미뤄졌다. 반도체 기업의 통합 투자세액 공제율을 현행보다 5%포인트 높이고,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대상에 연구·개발(R&D) 시설 투자를 포함하는 정부 지원책도 뒷전으로 밀렸다.

    인공지능(AI) 전환을 전폭 지원해 줄 무쟁점 법안인 AI 기본법 통과도 표류하고 있다. 이 법안은 AI로 만든 이미지나 영상이 AI로 생성되었음을 표시하도록 해 가짜뉴스와 딥페이크 등 기술 부작용을 방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 AI를 도입·활용하고자 하는 기업에 대한 컨설팅, 자금 지원 등 AI 산업을 육성·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첨단산업 전력 수요를 뒷받침하는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마련하기 위한 고준위특별법 제정안도 멈춰섰고, 기획발전특구 내 파격적인 규제 완화, 세제 혜택, 인프라 지원 등이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지역균형투자촉진 특별법안도 마찬가지다.

    윤석열표 주요 국정과제도 동력을 상실할 위기다. 내년 3월 본계약을 앞둔 체코 신규 원전건설 수주 건, 동해 심해 가스전 자원개발탐사 프로젝트(대왕고래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자칫 체코 원전 수주 건은 본계약이 불발될 경우 가까스로 복원된 원전 생태계까지 위협할 수 있다. 

    그간 윤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였던 4대개혁(의료·연금·교육·노동 개혁)은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될 처지다. 특히 의대 정원 확대 등 의료 개혁안은 원점에서 재검토될 가능성이 크다. 이외에 상속·증여세 등 세제 개편도 동력을 잃고 인구부 신설도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 ▲ 삼성의 반도체 생산라인. ⓒ삼성전자
    ▲ 삼성의 반도체 생산라인. ⓒ삼성전자
    탄핵안 통과로 정치 불확실성이 완화되면서 당장 금융·외환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만큼 오는 1월로 다가온 트럼프 2기 대응부터 내년 경제정책방향 수립 등에 구멍이 뚫릴거란 우려도 있다.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의 탄핵과 별개로 경제 현안에 대해서 하루빨리 여야정이 협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을 시급히 통과시켜야 하지만 이를 외면하면 우리 국가 경쟁력이 심각한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실제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반도체와 미래 먹거리인 인공지능(AI)이 멈추면서 우리 경제가 입는 손해가 국내총생산(GDP·명목)의 1% 수준인 20조원을 넘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2021년 발표한 정치·사회 불안정의 경제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정치·사회·행정 불안정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 국가 수준으로 안정되는 경우 전체 GDP 증가액은 9조9000억원에서 12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봤다. 이번 탄핵 정국으로 정치·사회·행정 불안정이 현실화되면서 그 수준 이상으로 GDP 손실액이 늘어나게 된다는 얘기다.

    불안정한 한국 정치·경제를 바라보는 해외 주요 기관들의 곱지 않은 시선도 문제다. 혹시 모를 국가신용등급 강등 사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보고서를 통해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 가계와 기업의 신뢰를 악화시키고 공공 재정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했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경제팀이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처를 해야하지만 현재 행정의 구심점이 없어 국회가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여야정 협의체 등을 통해 정책 현안에 집중하고 위기 탈출을 위한 소통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반도체 특별법, 국가 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 AI 기본법 등 여야 간 큰 이견이 없는 법안만이라도 시급히 통과시킬 필요가 있다"며 "경제 불확실성 해소에 정치권 도움이 절실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