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베드로병원 신경과 원장으로 인생 2막삼성서울병원 정년 이후 환자 중심 진료철학 강화본질적 의미의 '의뢰-회송'체계 재정립 숙제 산정특례 적용·뇌전증 지원센터 운영 등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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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봉 강남베드로병원 신경과 원장. ⓒ정상윤 기자
뇌전증이라는 질환 바로 뒤에 홍승봉(강남베드로병원 신경과 원장·성균관의대 명예교수)이라는 이름이 따라붙는다. 권위자로 명성을 떨쳤고 30년 이상 매진해 정년을 맞이했으면 쉴 법도 한데 이제 시작이란다. 남들은 인생 2막을 여유롭게 설계할 때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 고집을 어떻게 꺾을 수 있겠는가. 잠시의 휴식도 없이 삼성서울병원에서 강남베드로병원으로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92년, 서울대병원 전임의 시절에 미국으로 떠났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더 최고의 병원이라는 평가를 받던 존스홉킨스로 향했습니다. 뇌전증 공부하러요. 그때부터 내 인생은 정해졌어요."존스홉킨스와 클리블랜드 클리닉을 거쳐 미국 임상신경생리학 전문의 자격증도 딴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삼성서울병원 개원멤버로 참여한다. 이때가 94년, 그 이후로 계속해서 한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수많은 환자가 홍 교수를 만나고 발작의 공포에서 벗어나 웃음을 되찾았다. 과거엔 '간질'이라는 질환에 사회적 낙인이 심했기 때문에 안정적 치료체계를 만들어주는 의사가 절실했다. 그는 위로였다. 뇌전증으로 명칭 바뀐 이후에도 그 아픔은 여전하기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뇌전증 환자는 국내에는 30만명으로 추산된다. 2만명은 중증 난치성으로 분류되고 이 중 절반은 수술이 필요하다. 점차 경험이 쌓이면서 치료 과정이 어려운 환자에 집중하는 정책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깨달았다."제가 생각하는 저의 가장 큰 성과는 각종 학회장이나 능력을 인정받는 논문, 수상 등이 아니라 뇌전증 환자를 분류해 중증 난치성일 경우 산정특례(희귀난치성질환자 본인부담률 경감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에 포함시켜 재난적 의료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 것이죠."포괄적 접근이 필요한 질환이라는 인식 아래 '뇌전증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것도 일종의 사명감이다. 센터에서 계속 울리는 다양한 상담 전화는 취약한 치료체계를 극복하는 축이 되고 있다. 하지만 원활한 가동을 위해선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올해는 사비를 털었다."뇌전증 도움전화(1670-5775)를 이용하세요. 매년 6000건 가량이 상담이 이뤄집니다. 최상의 치료를 받고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교육하고 길을 터주죠. 진료 현장 밖에서도 도움을 주는 공간이 있고 아픔을 나눌 수 있습니다. 벌써 5년째, 뇌전증 환우의 탈출구가 되고 있지요."뇌전증지원센터에서는 기초지식부터 약물 치료, 수술, 신경자극술, 식이요법 및 발작의 예방법, 생활 주의사항, 응급조치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설명한다. 가정, 학교, 직장에서 겪는 적응 문제 및 편견과 차별에 대해 상담하는 것은 물론 극단적 선택을 막기 위해 다각적 모니터링을 시행 중이다. -
- ▲ 홍승봉 강남베드로병원 신경과 원장이 센터장으로 근무하는 '뇌전증지원센터'. ⓒ정상윤 기자
◆ 환자 중심 의뢰-회송의 틀 구축 … "변화의 시작"뇌전증 권위자가 삼성서울병원에서 강남베드로병원으로 이동을 결정했다. 환자들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병원이어서 치료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고민은 오해였음을 곧 이해하게 될 것이다. 수술 및 검사 장비, 인력 등을 상급종합병원 이상으로 세팅한 상태다."2월 말 외래를 마치고 쉴 틈 없이 3월 진료를 개시한 것은 환자들을 빨리 봐야하기 때문입니다. 제 공백이 길어지면 불안함도 커질 것이기에 빨리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었죠. 혹자는 진료환경이 열악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갖는데 단호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실제 국내에서 뇌전증 수술이 원활하게 가능한 상급종합병원은 극소수다. 수도권에 집중됐어도 극소수에 불과하고 지방의 경우는 1~2곳 정도라도 보면 된다. 중소병원급에서 동일한 장비를 갖추고 신속한 수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뇌전증 의료전달체계의 변화를 의미한다."내 목적은 명확합니다. 껍데기는 버리고 환자부터 보자는 것이죠. 급한 수술이 필요하면 병원 간판이나 불필요한 절차를 배제하고 사람을 살리자는 의미입니다. 환자가 치료받는 병원에 수술할 의사가 없다면 수술할 곳을 찾아줘야죠. 그리고 다시 환자를 보면 됩니다. 의뢰-회송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는 구조를 의미하죠. 이 방식이 적용돼야 환자가 불편하지 않습니다."이미 제도적으로 의뢰-회송은 존재한다. 하지만 단편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개원가에서 상급종합병원으로 의뢰서를 넣는 것이 전부라고 볼 정도로 적극적 개입이 이뤄지지 않는다. 비슷한 규모의 병원에서는 움직임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틀을 새롭게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절실함이다."병원에 외과 의사가 없다고 마냥 대기만 걸고 있는 상황,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는 의사와 환자를 적으로 보는 시각. 이런 것들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는 의뢰와 회송이 한 몸처럼 붙죠. 내 환자가 신속하고 최상의 진료를 받도록 하자는 의지를 갖춰야 하는 것이죠. 의뢰한 병원에서 다시 환자를 돌볼 수 있는 구조까지 만들는 것이 핵심입니다."특정 질환의 권위자여서 일부 변화를 만들 수 있겠지만 그가 추구하는 방식은 고착화된 절차를 깨는 행위여서 한계점에도 노출될 것이다. 환자 중심의 진료 철학이 때때로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의정 갈등 상황에서 교수들에게 "사직하지 마라", "뇌전증 의사들은 단체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등의 발언을 했던 것을 두고 내부에서 비판론이 확산하기도 했다. 사태 봉합을 위해 적정 수준의 조율점을 찾자는 대안이었던 '1004명'도 묵인된 바 있다. 환자를 위한 발언이었다."줄곧 변화가 필요한 영역에 비판적 주장을 내왔기 때문에 일부 오해가 있겠지만 의사는 직업은 환자를 떠나면 안 된다는 가치관이 근간이 된 것입니다. 특히나 의대 교수에게 있어 정년은 그 직장에서 퇴직하는 것이지 의사를 중단하는 것이 아니죠. 더 큰 변화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