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권 응급이송 시범사업이 남긴 비극 "ICU 없다" 비명 지른 중소병원에 5분 만에 배정 강행'경증 자율이송' 함정…현장 평가 오류 나도 필터링할 '안전망' 증발복지부, 7월 재정비 후 전국 확대 고수의료계 "면책 특례 없는 강제 배정은 살인 행위"
  • ▲ ⓒAI 생성이미지
    ▲ ⓒAI 생성이미지

    정부가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현상을 막겠다며 추진 중인 '호남권 응급환자 이송체계 개편 시범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하려는 가운데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한 '시한폭탄 떠넘기기'로 변질됐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해당 시범사업과 관련해 "응급환자 미수용 문제를 완화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며 "지역별 이송 지침을 전국적으로 신속히 정비하고 이송체계 혁신을 이뤄내겠다"고 보고했다.

    또 정부는 이달 중 호남권 시범사업 사례 보고와 제도 재정비를 거쳐 전국 확대 수순에 들어갈 방침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확인된 사례는 정부의 '효과 있다'는 판단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광역상황실의 일방적인 우선 수용 지시 권한과 현장 구급대의 병원전단계 중증도 분류(pre-KTAS)를 핵심 축으로 삼은 설계가 배후 진료 능력이 없는 병원을 향한 '강제 폭탄 배정'으로 이어지거나 최중증 환자를 경증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치명적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산하 젊은의사정책연구원이 최근 공개한 현장사례 보고서는 이송체계 개편 시범사업의 실제 현장 기록이 담겼다. 하반기 호남권에서 전국 확대를 앞두고 현행 제도의 취약점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 5월 오전 중환자실(ICU)이 없는 광주광역시 소재의 한 지역응급의료기관(중소 종합병원)에 광역상황실로부터 급박한 연락이 왔다. 119 구급차가 현장과 구급차 내에서 약 10분간 심폐소생술(CPR)을 시행하며 이송 중인 80대 최중증(pre-KTAS 1등급) 심정지 환자를 수용하라는 '우선 수용' 지시였다.  

    당시 병원 의료진은 "우리 병원은 중환자실이 없고, 현재 중증 환자를 처치할 대응 역량 자체가 되지 않아 수용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했다. 처치할 수 없는 최중증 환자를 억지로 받았다가 발생할 환자의 안전 위해를 막기 위한 현장의 냉정한 판단이자 비명이었다.  

    그러나 광역상황실은 추가 협의나 통보는커녕 병원의 거부 의사를 묵살한 채 이 병원에 환자를 강제 배정했다. 전화를 끊은 지 불과 5분 뒤, 구급차가 응급실 문을 밀고 들이닥쳤다. 도착 당시 환자는 혈압과 맥박 촉지가 불가능하고 산소포화도가 70% 수준으로 떨어진 소생 불가 상태였으며, 결국 병원 응급실에서 최종 사망 판정을 받았다. 

    이와 관련 지역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중환자실이 없는 병원에 심정지 환자를 밀어 넣는 건 의료진더러 '독박'을 쓰라는 소리와 다름없다"며 "설령 응급실에서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었다 한들, 배후에 수술실이나 ICU가 없는데 그 환자를 어디로 보내냐"고 반문했다. 

    그는 "연계 실패 시 전원 책임은 누가 지는지 현행 정부 지침 어디에도 답이 없다. 무조건 가까운 곳에 밀어 넣고 보자는 식의 기계적 배정은 환자를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는 지름길"이라고 비판했다. 

    젊은의사정책연구원은 이 비극적인 사례를 통해 ▲사전 협의 원칙의 실질적 무력화 ▲의료진 법적 책임 면책 규정의 부재 ▲배후 진료 및 전원 책임의 공백을 핵심 쟁점으로 꼽았다. 

    정부는 그동안 "일방적인 강제 배정은 사실상 없다"고 해명해 왔으나 현장의 기록은 정반대였다. 특히 강제 배정으로 역량을 초과한 환자를 받았다가 형사처벌이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하면 온전히 현장 의료진에게 귀속되는 구조적 공백이 의사들을 극단적인 '방어 진료'로 내몰고 있다는 비판이 터져 나온다.  

    ◆ 구급대 '경증' 분류 열어보니 '의식저하 중증 저혈당'

    또 다른 현장의 맹점은 정부가 도입한 병원전단계 중증도 분류(pre-KTAS)의 치명적 한계와 '경증 자율이송' 설계의 이면에서 드러난다.  

    지난 4월 흉통을 호소하는 환자의 신고를 받고 119 구급대가 출동했다. 구급대원은 현장에서 환자의 활력징후(V/S)가 안정적이고 의식이 명료해 보호자 없이 혼자 진료가 가능한 수준이라 판단, 환자를 경증 범위(pre-KTAS 4~5등급)로 분류해 병원으로 이송했다. 

    이 과정에서 기본적인 심전도나 혈당 측정은 아예 시행되지 않았다. 현행 시범사업 지침상 '경증'으로 분류되면 구급대가 병원을 자체 선정해 사전 고지나 협의 없이 이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급차가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문을 열었을 때 의료진이 마주한 환자의 상태는 완전히 달랐다. 환자는 이미 의식이 저하(drowsy)된 심각한 상태였고 즉각적인 응급 처치가 필요한 53mg/dL의 '중증 저혈당' 상태였다. 병원 응급실 의료진이 깜짝 놀라 환자를 중증 등급인 K-TAS 2점으로 즉시 재평가하고 앰플 투여 등 응급 처치를 시행해 간신히 고비를 넘긴 아찔한 사건이었다.  

    한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경증 분류 시 구급대에 사전 협의 없는 이송 자율권을 줘버리면 현장 대원들은 복잡한 행정 절차나 수용 거부를 피하기 위해 환자를 경증으로 낮춰 잡으려는 '구조적 분류 편의 유인'에 빠지기 쉽다"고 우려했다. 

    이어 "현장에서 평가 누락이나 오류가 났을 때 이를 스크리닝할 유일한 보류벽이 '병원 응급실 전문의와의 사전 고지·협의'인데 이 안전망을 통째로 날려버렸으니 환자가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와 쓰러질 때까지 중증도를 아무도 모르는 공포스러운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이대로 전국 확대하면 매일 참사…사지로 내몰리는 필수의료 현장

    보건복지부와 소방청은 지난 5월을 끝으로 호남권 이송체계 개편 시범사업을 종료하고 결과 평가를 마무리 중이다. 정부는 평가 내용을 토대로 오는 7월까지 제도를 일부 재정비한 뒤, 올해 하반기 내에 이 시스템을 전국으로 전면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설계의 치명적인 구조적 결함과 공백을 메우지 않은 채 섣부르게 전국 확대를 강행했다가는 호남권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참사가 전국의 모든 응급실에서 매일같이 재현될 것이라는 경고음이 울린다.  

    젊은의사정책연구원은 정부의 전국 제도화 추진에 앞서 반드시 완수돼야 할 '3대 선결 과제'로 ▲중증·응급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면책 법제화 및 배상·보상 국가 책임 보장 ▲응급실-수술실-ICU 연속성을 보장하는 원내 프로토콜 수립 및 전원 기준 명확화 ▲실시간 병상·인력 데이터 공유 체계 구축 및 광역상황실의 일방적 지시를 '사전 조율 중심'으로 전환할 것을 제언했다. 

    국회와 정부를 중심으로 필수의료 분야 사법리스크 완화 논의가 첫발을 뗐지만 현장 응급의학 전문의들은 여전히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수용 능력이 없다고 비명을 지르는 병원에 광역상황실이라는 거대 권력이 강제로 환자를 밀어 넣으면서 그로 인한 법적 책임 및 배후 진료의 부담은 일절 지지 않는 현재의 이송체계는 '응급실 뺑뺑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전형적인 책임 전가 행정이라는 지적이다.  

    정부의 응급이송체계 개편은 뺑뺑이를 막기 위해 출발했지만 현장의 수용 역량을 철저히 무시한 일방통행식 강제 배정과 오류투성이 자율 이송으로 인해 되레 응급실을 환자와 의료진 모두를 잡는 시한폭탄으로 만들고 있다는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