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달러 가치 절하 위해 '마러라고 합의' 검토마러라고 합의, 40년 전 日 흔든 '플라자 합의'와 닮은 꼴'日 잃어버린 30년' 남의 일 아냐 … "반면교사 삼아야"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 주요 국가를 상대로 상호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경제가 휘청이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행보가 환율 조정과 금리 정책을 동반하는 환율전쟁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8일 관계기관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 가치를 낮추기 위해 미국의 초장기 국채를 매입하거나 기존 국채를 교환하도록 요구해 장기금리를 낮추는 등의 내용을 포함한 '마러라고 합의'를 검토하고 있다.

    관세 등 강압적 수단을 활용해 세계가 급진적 조치를 취하도록 압박함으로써 미국의 글로벌 무역 지위를 개선하는 것이 마러라고 합의의 목표다.

    이를 통해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중국에 경제적 압력을 가하며, 미국 내 제조업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달러 가치를 떨어뜨려 통상 이익을 취하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미국이 선택했던 수단이다. 지난 1985년 미국은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 독일 등 주요국과 함께 외환시장에 개입해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하락시킨 바 있다. 당시 무역수지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강달러가 제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고 보고 달러 절하를 추진했다.

    플라자 합의 직전에 달러 당 250엔이던 엔화는 그 후 가치가 급등해 120엔까지 올랐다. 합의 이후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자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책을 위해 금리 인하와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책을 냈다. 이후 일본의 부동산·주식 시장에 상당한 버블이 생겼고, 버블이 꺼지면서 발생한 충격으로 일본 경제는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장기 침체에 접어들었다.

    일각에선 미국의 압박으로 체결한 플라자 합의가 일본 장기 침체의 간접 원인이 됐다고 본다. 이에 우리나라도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트럼프 행정부가 쏘아올린 통상 전쟁에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마러라고 합의가 현실화될 경우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높아지면서 한국 수출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반도체 산업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산업은 환율 민감도가 높은 대표 업종으로 원화 강세가 지속될 경우 가격 경쟁력이 급격히 저하될 수 있다. 반도체 산업 역시 미국 내 현지화 생산 확대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며, 공급망 이슈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도 겹칠 수 있다. 조선·기계 산업은 유럽 및 신흥국과의 경쟁 심화 속에서 미국 수출 비중이 줄어드는 구조적 제약에 부딪힐 수 있다. 특히 전기차 보조금,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으로 '통상-보조금-환율' 삼중 압력이 전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급변하는 통상 환경에서 우리 정부의 대응 전략 마련도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수출 구조의 다변화가 핵심으로 떠오른다. 대미 수출 의존도를 완화하고 인도·동남아·EU 등 신흥시장과 선진시장을 동시 공략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수출 구조는 미국·중국 등 특정국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며 "이번 관세전쟁처럼 특정 국가에서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그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수출선의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미국 시장 내 생산 거점을 확대하는 전략 역시 적극 검토 대상이다. 곽노성 동국대 명예교수는 "한국 기업은 미국 내 생산을 늘려서 보호무역 장벽을 우회하고, 현지 고용 창출을 통해 정치적 협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국의 적극적인 무역외교활동도 요구되고 있다.

    곽 교수는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무역에서 550억 달러 수준의 흑자를 보고 있지만 이 금액의 80%는 미국 내 현지 투자에 쓰인다"며 "통상당국은 이 점을 강조해 '한국은 미국을 탈취하는 국가가 아니다'는 것을 트럼프 행정부에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마러라고 합의'가 '플라자 합의' 이상의 충격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에서 통상당국은 기존 무역정책 대응 수준을 넘어 통합 대응 전략 마련에 착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강인수 교수는 "통상 관련 협상 테이블에서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며 "거시적인 안목은 정부관료들이 높을 수 있지만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에선 소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강 교수는 "통상 문제를 단순한 국가 간 문제에서 벗어나 국가·기업·소비자 등을 함께 아우르는 입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봤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