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단체 제기 소송 기각됐지만 경제적 리스크는 산적해 직접 참여 대신 알래스카산 LNG 장기구매계약 방안 거론가스公, 부채비율만 400% 이상으로 사업 감당 여력 없어"먼저 협상 나선 일본 결과 참조하되 신중한 접근 나서야"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정부가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프로젝트'를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숙원사업이면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개발사업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섣불리 뛰어들기도, 쉽사리 거절의사를 표명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서다. 미국의 참여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과 함께 투자 권유를 받고 있는 일본의 결정을 지켜보고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17일 한국가스공사에 따르면 미국 알래스카가스라인개발(AGDC)과 가스공사 실무진 간 화상회의가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와 관련해 유망한 파트너로 한국과 일본을 언급한 이후 양국 간 첫 실무회의가 진행된 것이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가진 않은 실무진 상견례같은 자리로, 후속 회의 일정도 아직 잡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2일 상호관세 발표 이후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관세율 인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주요 카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앞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지난 14일 "관련 화상회의가 하루 이틀 새에 있을 것"이라며 "모든 분야에서 한미가 협상 체계를 갖추고 이른 시일 내 구체적 내용을 도출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할 것 같다"고 했다.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도 지난 15일 한 공개 강연에서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가 한국의 대미 관세 협상 패키지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현재 한미 양국 간 실무 협상이 진행 중이며 이를 위해 곧 알래스카 출장을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다음주 미국과 관세 협상에 들어간다. 경제 사령탑인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통상 수장인 안덕근 산업부 장관이 내주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상호관세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이 자리에서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조선 분야 협력, LNG 등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 등과 함께 주요 협상 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 워싱턴 D.C. 연방 항소법원이 환경단체들이 제기한 알래스카 LNG 수출 승인 취소 소송을 기각하면서 환경 규제 리스크는 제거됐지만 경제적 리스크는 여전히 산적하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1300㎞ 길이의 가스관과 액화 터미널 건설이 이뤄져야 해 약 450억달러(약 64조원)의 막대한 추산 사업비용이 예상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혹한의 환경과 고난도의 건설공사로 향후 건설비용이 상승할 여지도 충분하다.

    한국이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인프라 구축에 직접 참여할 경우 프로젝트 성공 시 더 큰 지분을 차지 할 수 있지만, 경제성과 사업성이 담보되지 않은 만큼 사업 실패 시 대규모 리스크도 감당해야 한다. 미국의 숙원사업임에도 수십년동안 공회전만 사업이라는 점에서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키운다. 과거 엑손모빌 등 글로벌 메이저사가 프로젝트 초기부터 참여했지만 불투명한 사업성과 막대한 개발 비용, 셰일가스 개발로 인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 하락까지 겹치자 2016년 발을 뺀 전례가 있다.
  • ▲ 알래스카 프루도베이 기존 유전 시설.ⓒEPA/연합뉴스
    ▲ 알래스카 프루도베이 기존 유전 시설.ⓒEPA/연합뉴스
    만일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면 우리나라 가스 도입 물량의 약 80%를 책임지는 가스공사가 주도적 역할을 할 전망이다. 하지만 가스공사도 재무 여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가스공사는 47조원에 이르는 부채를 안고 있고 부채비율만 400%를 넘어선다. 사업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간 기업들이 뛰어들기도 어렵다. 

    이에 사업 참여를 하지 않거나 투자 규모를 줄이되 알래스카산 LNG 장기구매계약을 체결하는 방안 등도 거론되고 있다. 이는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초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와 관련해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가 수조 달러를 투자하면서 우리의 파트너가 되고 싶어한다"고 콕 집어 언급한 만큼 관세율 협상에서 유리한 패가 되지 못할 전망이다. 

    곽노성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명예교수는 "미국이 관세를 빌미로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를 요청해 한국으로선 모른척 할 수도 없는데, 리스크가 상당해 섣불리 뛰어들 수도 없는 참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재 과도기적 정부인 만큼 국가 간 약속을 하기 보다는 속도를 최대한 내지 않는 방향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도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에 적극적 의향을 밝히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막대한 건설비용과 LNG 가격 변동성, 10년 넘는 공사기간으로 인한 미국 내 정책 변동성 등으로 위험부담이 커 현 단계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전향적 검토 정도일 것"이라며 "현재 대통령 대행 체제인 만큼 대형 프로젝트 참여와 같은 중요한 결정은 새 정부에서 하는 것이 맞기 때문에 무역 수지 불균형 해소 차원에서 미국산 LNG 수입을 늘리겠다는 정도의 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에 앞서 협상에 나선 일본의 결정을 참고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일본은 관세 협의를 앞두고 신중론으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였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지난 15일 이시바 일본 총리는 미국과의 관세 협의를 앞두고 "빠르게 협상을 매듭지으면 좋다는 방식의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선제적으로 선물 보따리를 풀었지만 트럼프발 관세 폭탄을 피하지 못한 바 있다. 

    강인수 교수는 "일본이 대규모 대미 투자 등 트럼프 대통령에 선물 보따리를 안겼음에도 얻는 게 없다시피 하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일본의 결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으로선 구속력 있는 약속을 하기보다는 긍정적 검토를 언급하는 선에서 그쳐야 할 것으로 보이고, 당장 자금을 투입하거나 구속력이 있지 않은 향후 투자계획이나 의향서 등의 체결은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