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 파리오페라발레단 아시아인 최초 수석 무용수 박세은 무용과 대우교수로 초빙8월 물러나는 장선희 교수와 친분 … 최정상급 해외 스타 춤꾼의 국내 움직임에 주목한예종은 박세은 등 'K발레 황금 세대' 길러낸 김선희 교수가 올해 정년 퇴임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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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세은 발레리나.ⓒ세종대
올해 무용과 대입 시험에는 눈여겨볼 관전포인트가 하나 생겼다. 바로 발레 전공에서 '박세은 효과'가 어느 정도 일지 가늠해 보는 것이다. K발레 황금세대의 대표주자 격인 박세은이 대우교수라는 실험에도 입시지형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을지, 나아가 청출어람이란 정평을 들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스승들을 뛰어넘을 가능성을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세종대학교는 지난 18일 세계적 명성의 박세은 발레리나를 2025학년도 1학기 대우교수로 초빙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세계 최고(最古) 권위를 자랑하는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외국 국적 아시아인 최초로 에뚜왈(수석 무용수)에 오른 인물이다. 356년 파리오페라발레단 역사상 매우 이례적이고 의미 있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파리오페라 발레의 승급 단계는 군무인 카드리유를 시작으로 별이라는 뜻의 수석 춤꾼인 에뚜왈까지 총 5단계로 나뉜다.박 교수는 로잔·바르나·잭슨 등 주요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두각을 나타낸 뒤 한국 국립발레단에서 잠시 활동했다. 이후 2011년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해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약해 왔다. 2018년 러시아 출신의 전설적인 안무가 조지 발란신의 안무작 '보석' 3부작 중 '다이아몬드' 주역을 맡아 발군의 실력으로 발레계 최고 권위의 상 중 하나인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받는 등 다양한 수상을 통해 세계 발레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립했다.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는 박 교수의 에뚜왈 승급과 관련해 "재능과 절대적인 헌신의 조합이 그녀를 클래식 무용의 가장 높은 자리로 이끌었다"고 평했다. 국립발레단 이사인 이찬주 무용평론가는 과거 자신의 저서 '세계를 누비는 춤예술가들'에서 박 교수의 별명이 '빡세'라고 소개했는데, 그녀의 이름을 세게 부르는 것이면서 '빡세게' 열심히 한다는 뜻이라고 부연했다. 박 교수는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쉬제(승급 단계 중 솔리스트를 할 수 있는 3단계)였던 2015년, 총연습 포함 연간 210회쯤의 공연을 소화했는데 이는 한국 국공립 무용단이 한 해 50회 남짓 공연하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빡센' 수준이다. 당시 박세은은 '쟤는 하는데 넌 왜 못하니?' 소리를 들으니 이를 악물고 했다는데, 재능 못지않은 이런 성실함이 그녀를 초고속 승급에 이어 최고 스타 무용수 반열에 올려놓은 원동력일 것이다.박 교수는 서울예술고등학교 발레과를 자퇴한 후 2007년 한예종 무용원에 영재 입학했다. 그리고 그해 세계 4대 발레콩쿠르인 제35회 스위스 로잔 국제발레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외국 발레학교를 거치지 않은 유일한 순수 국내파로 우승하면서 한국발레의 위상을 높였다. 특히 대회 당시 기권하라고 할 정도로 몸 상태가 나빴다는 데도 정상에 올랐다. 참고로 박 교수는 세계 4대 발레콩쿠르 중 4년마다 열리는 모스크바콩쿠르를 제외하고 2006년 미국 잭슨콩쿠르, 2010년 불가리아 바르나콩쿠르 시니어부문을 석권하며 '콩쿠르의 여왕'으로 불렸다. -
- ▲ 지난 1월 8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샤롯데스위트에서 열린 '발레의 별빛, 글로벌 발레스타 초청 갈라공연' 기자간담회에서 김선희 예술감독(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뉴시스
한예종은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주목도가 올라갔다. 박 교수는 2016년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한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수석 무용수 김기민과 함께 한예종 출신으로, K발레 전성기를 열고 있는 대표주자다. 박 교수는 2011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과 파리오페라발레단에 각각 정단원과 준단원 자격으로 동시 합격했는데, 굳이 파리행을 선택한 배경에 한예종에서 사사한 김용걸 교수의 영향이 적잖다고 한다. 김 교수는 2000년 아시아인 최초로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해 2009년 은퇴할 때까지 쉬제로 활동했다.지난 2월 마린스키발레단에 군무(코르드발레) 단원을 건너뛰고 솔로이스트로 바로 입단해 화제가 된 발레리노 전민철과 2024~2025시즌부터 파리오페라발레단 정단원으로 활동하는 발레리나 이예은도 한예종 출신이다.한예종 발레과는 그동안 김선희 교수가 이끌어 왔다. 김 교수는 지난 2월 정년 퇴임했다. 발레계에서 김 교수의 카리스마는 정평이 나 있다. 그가 안무하거나 감독한 작품이 무대에 올려질 때면 전국에 흩어져 있는 한예종 제자들이 소위 얼굴도장을 찍기 위해 일제히 상경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지난 1월 정년 퇴임을 앞두고 마련된 '글로벌 발레스타 초청 갈라공연'만 해도 박 교수를 비롯해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 최영규, 미국 보스턴발레단 수석 채지영, 유니버설발레단 수석 이현준, 아메리칸발레씨어터(ABT) 솔리스트 한성우, 국립발레단 수석 박예은 등 국내·외 정상급 발레단에서 활약하는 무용수 23명이 대거 한 자리에 모였다. 김 교수이기에 가능했던 초청 공연이란 얘기가 있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박세은은 "프랑스에도 한예종이 많이 알려지고 있고, 그 중심에 계신 김선희 교수님도 많이 거론된다. 저희를 키워주시고 세계로 나갈 수 있게 문을 열어주신 만큼 교수님의 부름에 냉큼 달려왔다"고 말했다. 한성우는 "교수님이 늘 가지고 다니시던 키 꾸러미 소리가 '짤랑짤랑' 나면 바에 달려갔던 기억이 있다. 교수님은 모든 동작과 라인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시는데 이런 트레이닝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스승은 제자를 쏘아 올리는 활이라는데 한예종으로선 이제 김 교수의 공백이 아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
- ▲ 박세은 공연 모습.ⓒ한예종
대입과 관련해 일부 수험생과 학부모는 이런 대학의 지도자 변동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발레 전공생을 둔 학부모들은 세종대가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하기 전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박 교수가 세종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소식을 일찌감치 공유했다고 한다. 몇몇 학부모는 성급히 두 대학의 교수진과 등록금 등을 따져보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일선 학교도 예의주시하기는 매한가지다. 모 예고 발레 전공생은 "지도 선생님께서 실기에 비중을 둔다면 김선희 교수가 없는 한예종 대신 박 교수한테 지도받을 수 있는 세종대에 지원하는 것도 고려해 보라는 조언을 해주셨다"고 귀띔했다. 일선 학교 현장에선 발레 전공생이 대입 때 선호하는 학교로 한예종-이화여대-세종대 등의 순으로 꼽는다. 화려한 실전 경력을 자랑하는 박 교수의 등장이 입시 지형도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주목되는 이유다.다만 일선 학교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박 교수가 아직은 전임교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세종대에 따르면 박 교수는 오는 7월쯤 국내에 들어올 예정인 가운데 아직 정규수업 등이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현역 에뚜왈이면서 대우교수 신분인 만큼 특강처럼 비정기적인 수업을 통해 학생들을 지도할 거라는 설명이다.그러나 변수는 있다. 세종대 장선희 발레 전공 교수가 오는 8월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서다. 장 교수는 박 교수와 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레 분야 한 전문가는 "세계 최정상급 발레단의 에뚜왈인데 대우교수라니 놀랐다"면서 "세종대로선 장 교수 퇴임 이후를 고려해 일단 대우교수 자리로 박 교수를 잡은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론 박세은 (교수)이 에뚜왈 지위를 오래 누리며 해외에 머물 거로 생각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 마음이 바뀐 게 아닌가도 싶다"면서 "만약 그런 거라면 세종대로선 박 교수가 오면 좋을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선생님(교수진)을 보고 진학을 결정하는 추세다. 경희대만 해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 출신인 김지영 교수를 파격적으로 데려온 이후 많이 달라진 거로 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