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표단 현지 도착한 상황서 돌발사태 맞딱뜨려정부 대응 미진 지직에 산업장관 "안일한 대응 아니다"7일 계약식 무산됐지만 그 외 일정 차질없아 진행 계획본안 소송 정식 진행될 경우 최대 6~8개월 소요될 전망일각선 체코와 프랑스 간 협상 통한 사태 해결 가능성 제기"EDF, 국내외 프로젝트 난항 속 유럽 안방시장 내줘 위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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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코 두코바니 원전 단지 전경.ⓒ연합뉴스
K-원전의 첫 유럽 무대 진출인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사업에 급제동이 걸렸다. 수주 과정에서 탈락한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승복하지 않고 법적 대응으로 발목을 잡으면서다. EDF가 체코 법원에 가처분 신청과 본안소송을 냈고 가처분 신청이 먼저 인용되면서 7일로 예정됐던 계약 서명식은 사실상 무산됐다. 26조원에 달하는 체코 원전 수주가 법률 리스크를 안게 된 가운데 본안 소송이 정식 진행될 경우 수개월 이상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체코 브루노 지방법원은 7일 오후 4시(현지시간)으로 예정된 한국수력원자력과 체코 전력공사(CEZ) 산하 발주처인 EDUII 간 체코 원전 최종 계약을 중단시켰다. 체결식을 앞두고 체코로 향한 정부·국회 합동 대표단은 돌발변수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로이터통신과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6일 체코 브루노 지방법원은 입찰 경쟁에서 탈락한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제기한 계약 절차 중단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EDF가 제기한 행정 소송 본안 판결이 나올 때까지 한수원과 EDUII 간 최종 계약 서명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체코 법원은 가처분 인용 이유에 대해 "계약이 먼저 체결된다면 추후 EDF가 법원에서 유리한 판결을 받더라도 공공 계약을 따낼 기회를 잃게 된다"며 '회복 불가능한 손해 방지' 필요성을 들었다.체코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내려질 당시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체코에 이미 도착한 상태였고,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프라하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탑승 중이었다.체코로 향한 정부·국회 대표단의 정부 측에서는 대통령 특사단으로 임명된 안덕근 산업부 장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이창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 강인선 외교부 2차관, 김성섭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최원호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포함됐다.국회에서는 이철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국민의힘)을 비롯해 박성민·강승규·박상웅 국민의힘 의원,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 등이 특별 방문단으로 동행했다.고위급 인사들이 모두 체코 현지에 도착한 가운데 서명식 자체가 불발되면서 정부의 안이한 상황 판단도 도마 위에 올랐다. EDF가 체코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을 인지하고도 인용 가능성이 낮다고 낙관하고 대규모 정부·국회 대표단을 꾸려 체코행 비행기에 오른 것은 패착이라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이에 대해 안덕근 장관은 이날 황주호 한수원 사장과 기자간담회를 열고 "EDF가 UOHS에 두 차례나 이의신청을 내 모두 기각된 상태로 체코 정부도 문제가 없다고 보고 한국 정부 대표단을 초청해 일정을 잡은 것"이라며 "저희가 안일하게 대응한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어 "이번 행사는 체코 측에서도 정상이 참석하는 행사로 체코 측이 일정 조율과 의전 준비를 마친 뒤 초청해 우리가 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당초 산업부는 정부·국회 대표단이 체코에서 고위급 아웃리치(대외 접촉)를 전개할 계획을 밝혔다. 체코 총리 및 상원의장을 만나 원전 협력을 계기로 보다 인프라, 첨단산업 등에서 양국이 보다 전략적으로 포괄적인 관계로 발전될 수 있는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로 한 계획도 연기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정부는 최종 계약식은 무산됐지만 그 외 일정은 최대한 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안 장관은 "공식 계약 체결을 제외한 나머지 절차는 예정대로 진행된다"며 "체코 총리 회담, 상원의장 오찬, 다수의 양해각서(MOU) 체결 등은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
- ▲ 체코 신규 원전 예정부지 두코바니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일정 지연이 불가피할 가운데 10월 체코 총선 등 정치 상황에 최종 계약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불거진다. 계약해지 가능성은 희박하나 최종 사인은 최대 수개월 지연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체코 현지 전문가들은 EDF를 포함한 모든 분쟁 당사자가 협조할 경우 체코 법원이 6~8주 안에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정식 재판이 진행되면 6~8개월까지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현 집권야당이 패하면 최종 계약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감도 번진다.안 장관은 본계약 체결 시점을 예측하기 어렵다면서도 사업 무산 가능성은 낮다고 선을 그었다. 안 장관은 "두코바니 원전 사업은 체코 측에서도 굉장히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업으로 과정을 지켜보면 공정성과 객관성, 투명성에서 문제가 있을 여지가 없다"며 "UOHS가 두 번이나 명확하게 판결한 바 있는 사안인 만큼 본안 소송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신속하게 마무리해 원전 산업 경쟁력과 역량을 키을 기회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체코 정부도 진화에 나섰다.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도 법원 결정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입찰 평가 절차는 관련 법률에 따라 올바르게 수행됐다"며 "법원이 모든 맥락과 위험을 알고 있고, 또 신속하게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믿는다"는 입장을 밝혔다.CEZ는 가처분 결정에 대해 최고행정법원에 항소하기 위해 구체적 법률 검토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CEZ는 법원이 본안 소송에서 EDF 측 소송이 근거가 없다고 판명되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최종 계약 체결은 항소가 인용되거나 본안소송 결과가 나와 리스크가 해소될 때까지 어려운 상황이다.증권가에서는 체코와 프랑스 협상을 통한 이번 사태 해결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허민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향후 전개 가능한 시나리오로 △가처분 해제 및 한수원과의 계약 △체코와 프랑스 정부 간 협상을 통한 분쟁 해결 △EDF의 승소로 입찰 절차의 변경 및 재추진 등을 꼽았다.허 연구원은 "가처분이 해제되면 수 주~수 개월 지연된 후 연내 최종 계약 체결이 가능할 것"이라며 "EDF 승소는 공공조달법 등을 감안 시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체코와 프랑스 정부 간 협상을 통한 분쟁 해결 가능성과 관련해선 "유럽 내 프랑스의 외교·경제적 지위, 폴란드 원전의 사례 등을 감안하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2022년 10월 폴란드 루비아토보-코팔리노 원전 3기 사업에 탈락한 후 '유럽연합(EU) 조달 규칙 위반'으로 제소 가능성을 내비친 적 있는데 당시 EDF는 공식 제소 대신 EU 집행위나 프랑스·폴란드 정부 간 외교 채널을 통한 이의 제기에 주력했다"고 밝혔다.전문가들도 EDF의 어깃장에도 이변은 발생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이번 EDF 소송은 UOHS가 두차례나 이의신청을 기각한 사안과 다를 바 없어 무난하게 해결될 것으로 보이나 문제는 시간"이라며 "EDF가 국내외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비용 초과 등의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유럽 내 입찰에서도 자리를 내주면서 위기감이 높아져 막판까지 해보겠다는 것으로, EDF로서는 사활이 걸린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