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관세 日·EU와 같은 15%로 낮추는 등 '선방'FTA로 우위 있던 車 관세율 日·EU보다 2.5%p 올라 되레 불리해져FTA, 양국 동의 있어야 개정 가능 … "사실상 폐기 수순""정부 한계점, 민간기업이 메꿔 … 주미대사 귀국은 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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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과의 관세협상이 기존 25%에서 15%로 타결된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미국 관세협상 타결 관련 뉴스가 송출되고 있다. ⓒ뉴시스
한국이 미국에 3500억달러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면서 양국 간 관세협상이 일단락 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에서 일본과 유럽연합(EU) 등 주요 경쟁국과 동일한 15%의 상호관세율을 관철한 것에 대해서는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무력화'는 피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깊은 아쉬움을 표시했다.31일 통상당국에 따르면 미국이 8월 1일부터 한국에 부과하기로 했던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자동차에 부과됐던 25%의 품목관세도 15%로 적용하기로 했다. 총 3500억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펀드를 조성하고, 향후 3년간 1000억달러 규모로 액화천연가스(LNG)를 포함한 미국산 에너지를 수입하기로 했다. 국내 쌀과 소고기 시장은 추가 개방하지 않기로 했다.통상 전문가들은 우선 이번 협상에 대해 '수입의 범위'를 긍정적으로 봤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일본이나 유럽연합(EU)은 미국에서 구매하는 물량이 매우 많은 반면 한국은 1000억달러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구매로 막아 잘한 협상이라고 본다"며 "향후 품목관세 부과가 예고된 반도체, 의약품에 대해서도 최혜국 대우를 얻어 낸 점은 다행스럽다"고 말했다.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장도 "한미 FTA 당시와 비교하면 절대적인 조건은 나빠졌지만 최근 통상 환경 변화와 일본, EU 등 다른 국가들과의 협상 사례를 비교해 보면 한국은 선방한 편"이라며 "전체 펀드 규모도 일본이나 EU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축소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이번 협상에서 쌀, 소고기 등 민감품목에 대한 추가 개방을 막아낸 점을 두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되, 비관세 장벽 논의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은 "미국과 EU 합의문에서도 공산품과 농산물 관련 비관세 장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측이 전향적으로 노력하기로 명시돼 있어 향후 추가 협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우리도 마찬가지로 비관세장벽은 앞으로도 협상이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다만 이번 협상이 단기적 통상 갈등 봉합에는 성공했지만 한미 FTA 체계 자체를 흔들고 있다는 비판도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 측 일정에 맞춰 성급히 타결을 밀어붙인 결과, 한미 FTA 원칙 자체가 새로운 양자 협정에 의해 무력화됐고 이를 우리 스스로 승인해 준 셈이 됐다"고 비판했다.이어 "급한 불은 껐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한미 FTA 효과를 우리가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게 됐다"며 "앞으로 미국이 기존 협정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합의를 용인해주는 전례를 만들어준 협상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 통상 전략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FTA 체제를 기반으로 유지되던 교역 안정성에도 균열이 생겼다는 평가다. 협상 원칙보다는 타결에 무게를 실은 결과, 향후 유사한 상황에서 불리한 협상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단기적 소나기는 피해 막았는데 우리의 든든한 방패(한미 FTA)는 훼손됐다"며 "한미 FTA가 사실상 사문화 수순에 접어든 것 아니냐"고 우려를 내놨다.또 "한미 FTA는 원칙적으로 양국 합의 없이는 개정할 수 없는데, 일방적으로 기존 협상을 지키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 한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다"며 "향후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문제 등을 거론하며 또다시 변덕을 부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이런 줄기에서 한미 FTA에 따른 한국산 자동차의 관세 0%가 종료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일본과 EU는 이미 2.5%의 관세를 부담해 왔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25% 추가 관세가 12.5%로 낮아진 셈이 됐지만, 한국은 무관세에서 15%로 급등하면서 기존의 경쟁력 우위가 크게 약화됐다.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미 관세협상에서 자동차만 놓고 보면 사실상 백기투항이나 마찬가지"라며 "일본과 EU는 기존 2.5%에서 15%로 오르며 12.5%포인트(P) 상승한 반면 우리는 기존에 무관세였기 때문에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이어 이호근 교수는 "미국 시장에서 수입차들이 전반적으로 불리해졌기 때문에 미국 내 수입차 시장 점유율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전체 파이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더라도 점유율과 수익률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장상식 원장은 "한국산 자동차에 이제 15% 관세가 적용되면 미국 국내 기업에 비해 불리해지고 여타 외국 기업과도 동등 선상에서 새로 출발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평가했다.아울러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등 민간기업 차원에서 대미투자 사이즈를 키워 정부의 한계를 기업이 메꿨으며, 우리나라가 다른 국가에 비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 금액이 크단 지적도 제기됐다.곽노성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명예교수는 "이재명 정부는 이번 협상을 앞두고 주미대사를 귀국시켜 접촉 포인트를 없애버리는 등 실책을 범했다"며 "일본의 GDP는 우리나라의 2배 규모인데 투자 금액은 거의 비슷해 우리로선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클 수 있다"고 했다.최원목 교수도 "일본 보다는 대미 투자 규모가 작지만 갑자기 미국으로의 투자를 많이 늘려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일본보다 부담이 더 클 것 같다"고 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