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관세율 0% → 15% … EU·일본 대비 상승률 커한미 FTA 이점 사라져 … 미국서 가격 경쟁력 약화섬유의복·음식·반도체 등 복합위기 … "美에 이용당해"
-
-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2일 백악관에서 국가별 관세율 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관세협상이 일본·유럽연합(EU)과 동일한 '15% 관세율'로 타결되자 대체적으로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거의 무관세로 수출하던 우리로선 가격 우위가 사라지고, 1~10% 기본관세를 내던 일본과 EU에 견주면 손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지난달 30일(미국시간) 한국산 대(對)미 수출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기존 제시 25%에서 15%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무역협상을 매듭지었다.상호관세율 15%를 얻어내기 위해 우리는 상당한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3500억달러(약 487조원)에 달하는 대미투자펀드 조성과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제품 1000억달러어치를 구매하는 내용이다.쌀·소고기 등 농축산물 추가 개방, 주한미군 분담금 대폭 증액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워낙 커서 '15% 관세'가 선방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우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기 이전 미국이 일본·EU산 제품에 부과한 관세율을 보면, 품목별로 1~10% 수준이었다. 한국과 달리 EU와 일본은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약 2~3% 수준의 관세가 적용돼 왔다.일본의 품목별 평균 관세율을 보면 △섬유의복 10.48% △음식료 3.83% △전지 3.47% △화학 3.46% △석유정제 2.85% △자동차 1.94% △전기전자 1.02% 등이었다. EU도 품목별 관세율을 보면 일본과 유사한 수준으로 알려졌다.반면 우리나라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미국과 FTA를 체결한 만큼 대부분 품목에서 0% 관세를 적용 받았다. 특히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에서 한국은 일본·유럽과 2%가량 관세율 차이가 나서 한국산 자동차가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는 데 역할을 했다는 게 중론이다.그러나 최근 기본관세 2.5%를 더한 일본의 자동차 관세율은 최근 협상으로 15%로 결정됐고, EU 역시 동일한 조건을 적용받게 됐다. 이번 관세협상으로 한국이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지만 기존에 0% 관세를 적용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동차 품목관세는 주요 경쟁국에 비해 상승률이 많이 크다.일본 언론도 이러한 점에 주목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기존에 2.5% 관세가 부과됐던 일본, EU 자동차와 달리 한국은 무관세로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해 왔으나, 이번 합의로 기존의 가격 우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도쿄신문도 "한국에서는 일본과 같은 조건으로 합의해 안도하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동차 분야 등의 경쟁력 저하에 대한 불안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전했다.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일본과 EU는 기존 2% 수준에서 15%로 오르며 12.5%p 상승한 반면 우리는 기존에 무관세였기 때문에 더 큰 부담"이라며 "한미 관세협상에서 자동차만 놓고 사실상 백기투항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그러면서 "미국 시장에서 수입차들이 전반적으로 불리해졌기 때문에 미국 내 수입차 시장 점유율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전체 파이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더라도 수익률은 위축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이번 협상에 따른 관세 문제는 비단 자동차에서 그치지 않는다. 앞서 우리나라는 한미 FTA에 따라 섬유의복, 음식료, 전지, 화학, 석유정제, 비철금속, 기계류, 전기전차, 반도체 등에서도 관세율 0%를 보장받았다.그러나 이번 협상을 통해서 EU, 일본 등과 함께 일괄적으로 15%로 오르게 된다면 곧장 산업 전반에 걸친 위기로 귀결될 가능성도 커진다. 특히 섬유의복의 경우 유럽과 일본은 모두 10.48%의 관세율을 적용받았기에 향후 우리 수출 업계가 느끼는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한국은 그동안 FTA로 미국 국내 기업에 준하는 혜택을 받아 미국시장에서 상대적 우위가 있었지만 이제 15% 관세를 부과 받게 됐다"며 "앞으로 미국 국내 기업에 비해 국내 기업은 불리해지고 여타 외국 기업과도 동등한 선에서 새로 출발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우려했다.실제로 이번 협상에 따라 한미 FTA가 사문화됐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전날 브리핑 후 'FTA의 효과가 사라진 것'이냐는 기자 질문에 대해 "맞다. FTA라는 게 상당히 많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다.이를 두고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 측 일정에 우리가 철저하게 이용당하면서 성급하게 타결시키느라 한미 FTA의 원칙 자체가 새로운 양자 협정에 의해 사실상 무력화됐다"며 "이를 우리 스스로 승인해준 셈이 됐다"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