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화 무관세 일방 유관세 전환되며 FTA 무력화 통상·안보 패키지딜 무산, 관세협상 패착 분석도 한미정상회담서 美 안보 청구서 꺼내들 가능성안보 현안 산적 … 대중국 견제 압박 나서나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뉴시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뉴시
    한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임에도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경쟁국과 동일한 15%의 관세율로 타결됐다. 사실상 한미 FTA 무관세 혜택이 종료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의도했던 통상과 안보를 연계한 이른바 '패키지 딜' 협상 전략이 무산되면서, 조만간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안보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들 전망이다. 통상에 이어 안보 분야에서도 한국이 또다시 양보를 강요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5일 외교 당국 등에 따르면 한미 정상회담이 이달 중 열릴 예정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통상 분야를 넘어 '안보'가 핵심 의제로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유력하다. 관세협상에서 미국이 사실상 원하는 성과를 챙긴 만큼 안보 분야에서도 한국에 대한 압박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번 한미 관세협상은 한미 FTA가 사실상 무력화돼 일본, 유럽연합(EU) 등 경쟁국에 대한 비교 우위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한국만 25% 상호관세가 확정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지만, FTA의 핵심이던 상호 무관세 원칙은 사실상 일방 유관세로 바뀌게 됐다. 

    트럼프 정부가 일방적 관세 부과로 양국 의회가 비준한 한미 FTA를 무력화했지만 정부는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를 지낸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 부회장도 "새로운 합의는 한미간 거의 대부분 관세를 철폐한 양자 FTA의 가치를 무력화한다"며 "한국은 유감스럽게도 FTA 협정국으로서 어떠한 특별대우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상과 안보 등을 묶은 패키지 딜이 아닌 통상만 먼저 협상하면서 한국은 주도권조차 갖지 못했다"며 "미국이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일지 말지만 결정하는데 그쳐, 결국 미국이 원하는 것만 다 내주는 협상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은 FTA 체결 여부와 무관하게 자체적으로 정한 공식에 따라 협상을 진행하면서 한국이 한미 FTA를 통해 얻었던 상대적 경쟁력 이익은 계산조차 되지 않았다"며 "결국 다른 나라들과 동일선상에서 협상이 이뤄진 셈"이라고 꼬집었다. 

    글로벌 패러다임이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다자무역 체계가 사실상 무력화되고 보호무역주의가 심화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미국이 자유무역, 공정무역, 비차별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세계무역기구(WTO)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이는 WTO 협정 위반이자 한미 FTA 무력화"라고 지적했다. 

    한미 관세협상은 아직 세부 내용을 조율하기 위한 과정이 남아있는 만큼 후속 협상에서 한국의 실익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이번 합의는 국가간 행정협정으로 유동성이 크고 법적구속력이 약하다"며 "향후 세부 협상 과정에서 득실이 갈릴 수 있는 만큼 꼼꼼하고 전략적인 접근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곧 이어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안보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국방비 증액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대중 견제를 위한 동맹 현대화 등 안보 관련 요구를 본격적으로 꺼내들 가능성이 제기된다. 통상에 이어 안보 분야에서도 미국의 청구서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특히 동맹 현대화는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강화와 한국의 대중국 견제 동참, 한국 국방 예산 증액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사실상 한국에 미국과 중국 중 택일을 강요하는 압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주한미군의 역할이나 규모 변경 등이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방위비분담금 증액, 전략자산 전개 비용 청구, 국방비 증액을 중심으로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 측은 한국이 적절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으로, 비용 문제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박원곤 교수는 안보협상 역시 한국이 불리한 위치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과 우호국에 행사하는 영향력은 경제와 안보 양면에 걸쳐 있어 관세 문제를 경제 분야에만 한정해 접근하기 어렵다"며 "한국의 경우 북한 핵 위협에 직접 노출돼 있고 확장 핵 억제력도 미국에 의존하고 있어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장희 교수는 "동맹 현대화를 전제로 안보 논의가 이뤄지면서 주한미군 주둔비, 한국 국방비 인상, 미국산 무기 구입 등이 협상 테이블 위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며 "상호관세가 25%에서 15%로 낮아진 것을 성과로 포장할 상황이 아니며, 이제부터 시작될 안보 분야 협상은 복잡하고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