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 총수 16명 美 총출동해 李 대통령 총력 지원'외교 참사' 우려 나왔지만 기업들 도움으로 위기 모면 돌아온 건 노란봉투법 … 하청 노조 "진짜 사장 나와라"재계 "이대로 가면 산업 기반과 경쟁력 붕괴 보완 입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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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이 26일(현지 시간)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를 방문해 현장 시찰을 마친 뒤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왼쪽부터 데이비드 김 한화필리조선소 대표, 조현 외교부 장관, 조시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이 대통령,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장관, 토드 영 상원의원. 2025.08.27.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첫 한미 정상회담은 시작 전부터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외교 참사' 우려가 나왔지만, 비교적 무난하게 넘어간 것으로 평가된다.이는 조선업을 비롯한 미국의 제조업 재건에 사활을 걸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기업들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에 '레드 라인'을 넘지 않은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국내 대기업 총수 16명은 미국으로 총출동해 한미 정상회담을 전방위로 지원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여당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상법 개정 등 반기업법을 연이어 통과시키며 관세 직격탄을 맞은 기업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27일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주요 외신과 전문가들의 평가를 종합하면,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분위기다.뉴욕타임스(NYT)는 한미정상회담 관련 분석 기사에서 이 대통령이 트럼프의 저서 '거래의 기술'을 공부했다고 언급하며 "이 대통령의 칭찬공세(flattery)가 첫 양자 회담을 무난히 넘기도록 도왔다"고 보도했다.폴리티코도 "한국 대통령은 회담을 무사히 끝냈고, 심지어 중국 여행이나 북한 트럼프 타워에서의 골프에 대해 농담을 주고받으며 트럼프 대통령을 매료시켰다"며 "그것만으로도 승리로 간주된다"고 보도했다.트럼프는 정상회담을 불과 2시간 30여분 앞두고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숙청 또는 혁명같이 보인다. 우린 그것을 수용할 수 없고, 거기서 사업할 수 없다"고 적었다.이 때문에 한미 정상회담에서 자칫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나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당한 '외교 참사'가 반복될 수 있다는 긴장감이 나돌았다.그러나 막상 정상회담이 시작되자 분위기는 화기애애 했고, 취재진과 질의응답에서도 트럼프가 SNS 글에 대해 "오해라고 확신한다"고 진화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한 정치권 관계자는 "세계 10위권인 한국의 경제적 위상이 이 대통령을 호랑이 굴에서 지켜준 것"이라며 "트럼프가 이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는 대신 한국으로부터 받아낼 수 있는 모들 걸 받아내 경제적 실익을 챙기는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은 25일(현지시간)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을 통해 조선, 원자력, 항공, 액화천연가스(LNG), 핵심광물 등 총 5개 분야에서 11개 계약·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이 자리에는 주관단체인 한경협 류진 회장과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SK 최태원 회장, 현대차 정의선 회장, LG 구광모 회장 등 총 16인의 국내 기업인이 참석했다. 미국 측에서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등 21명이 자리했다.류진 회장은 이 자리에서 "한국 기업들은 1500억달러(209조원)의 대규모 대미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한미는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수십억달러 규모의 공동 투자펀드 조성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HD현대, 한국산업은행이 참여한다. 삼성중공업과 비거 마린 그룹은 미국 해군의 지원함 유지·보수·정비(MRO), 조선소 현대화 및 선박 공동 건조 등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MOU를 체결했다.원자력 분야에서는 한국수력원자력, 두산에너빌리티, 엑스-에너지, 아마존웹서비스가 소형모듈원자로(SMR)의 설계, 건설, 운영, 공급망 구축, 투자 및 시장확대 협력에 관한 4자간 MOU를 체결했다.두산에너빌리티와 미국 민간 에너지 개발사업자인 페르미 아메리카는 미국 텍사스 주에 추진중인 'AI 캠퍼스 프로젝트'에 공급할 대형 원전과 SMR 기자재 관련 포괄적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항공 분야에서 대한항공은 보잉으로부터 차세대 고효율 항공기 103대(362억달러 규모)를 신규 도입하고, GE에어로스페이스와 엔진 구매 및 엔진 정비 서비스 계약(총 137억불 규모)을 맺기로 했다.가스공사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인 트라피구라 등과 2028년부터 약 10년간 미국산 LNG를 주요 기반으로 하는 연 330만톤 규모의 중장기 LNG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고려아연은 글로벌 방산기업인 록히드마틴과 게르마늄 공급구매 및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MOU를 맺고 2028년부터 록히드마틴에 게르마늄을 장기 공급할 예정이다. -
- ▲ 이재명 대통령이 26일(현지 시간)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열린 미국 해양청 발주 국가안보 다목적선 '스테이트 오브 메인'호의 명명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2025.08.27. ⓒ뉴시스
이처럼 한국 대기업들이 국익을 위해 미국에서 전방위로 활약했지만 국내에 돌아와 마주해야 할 현실은 노란봉투법 통과 후폭풍이다.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를 '협력업체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모호하게 규정해 직접 계약 관계가 없는 하청업체도 원청에 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여기에 불법 파업 등 쟁의행위로 손해가 발생했을 때 손해배상 책임을 파업 참가자의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산정하도록 하면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제한하고 있다. 노조의 불법 파업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당장 기업들이 우려했던 상황은 현실이 되고 있다. 하청업체 노조들이 "진짜 사장 나와라"라며 원청 대기업을 상대로 잇달아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삼성전자 협력사인 이앤에스 노조는 통상임금 갈등을 계기로 지난 6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의 개입을 요구한 데 이어, 최근에는 임금 체불 문제까지 원청이 직접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현대제철 하청업체 근로자로 구성된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도 "진짜 사장 현대제철은 비정규직과 교섭하라"며 직접 고용을 요구했다. 네이버 산하 6개 자회사 노조도 원청인 네이버에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특히 수백에서 수천곳의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는 조선 업계와 완성차 업계에선 대규모 생산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국내 주요 조선소 사업장 노조로 구성된 조선업종노조연대는 지난달 HD현대·한화오션 등 원청에 공동 교섭을 촉구했고, 현대차 노조는 지난 25일 찬반투표를 통해 실투표 기준 90.93%의 찬성으로 결국 파업을 선택했다.이밖에도 건설·백화점·택배 등 거의 전 산업분야 협력업체 노조가 대기업을 상대로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주한미국상공회의소는 26일 노란봉투법에 대해 "예측할 수 있는 투자 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규제의 명확성과 예측 가능성이 필수"라며 "정부·기업·노동계 간의 지속적이고 투명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 산업 기반과 경쟁력이 완전히 붕괴될 수도 있다"며 "정부와 여당이 지금이라도 노란봉투법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