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호황, 속은 위기" … 전방위 리스크 확산밖에선 관세 폭탄, 안에선 기업 규제법에 몸살각종 규제가 압박 … "기업 활동에 이중 족쇄"마지막 탈출구 좁아지는 기업들 … 생존 절실
  • ▲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내부 전경 ⓒ삼성전자
    ▲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내부 전경 ⓒ삼성전자
    대한민국 기업들은 현재 사면초가 상태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과 현지 투자 압박, 글로벌 소비 둔화와 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기업들을 옥죄고 있다. 여기에 미·중 갈등과 공급망 재편까지 겹치면서 기업들은 언제 어디서 충격이 터질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소용돌이 속에 서 있다.

    국내 환경도 녹록지 않다. 중대재해처벌법, 노란봉투법 등 기업 활동을 옥죄는 각종 법안이 줄줄이 대기 중이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규제 강화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인건비 상승과 경직된 노동시장까지 더해지면서 기업의 투자 의지를 꺾는 구조적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결국 기업들은 '대외 불확실성'과 '내부 규제'라는 이중 족쇄에 묶여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 자동차 호황, 조선업 수주 등 겉으로는 호재가 이어지는 모습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구조적 위기와 외부적 압력이 동시에 몰려오는 형국이다. 이 같은 복합 위기가 기업을 옥 죄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한국 기업들의 '마지막 탈출구'를 점검해야 할 시점으로 꼽힌다.

    ◇ 메모리 호황 속 中 추격 '그림자'… 글로벌 무역장벽 앞에 선 자동차

    대표적인 수출 효자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열풍 속 '메모리 슈퍼사이클'을 맞았지만, D램과 HBM 초격차를 지켜내야 하는 부담 속에서 중국 기업들의 거센 추격에 직면해 있다.

    비메모리(파운드리) 분야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TSMC와의 기술 격차로 만성 적자에 허덕인다. 호황의 불빛이 DS 전체를 비추지 못한다는 점이 한국 반도체 산업의 근본적 리스크로 지적된다.

    전자업계는 프리미엄 스마트폰과 TV, 가전 판매에 의존하며 글로벌 시장 리스크에 더 고스란히 노출된 산업이다. 글로벌 소비 둔화와 함께 중국 제조사들은 중저가 시장 잠식에 나서고 있고 인도·동남아 시장에서의 점유율 경쟁 등으로 성장세가 꺾이고 있다.

    스마트폰은 AI폰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렸지만 소비자 지갑을 여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가전 역시 수익성이 낮아지고 있으며, 친환경·에너지 규제 대응 비용이 커지는 것도 리스크다.

    현대차·기아는 글로벌 판매 호조로 역대급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배터리 원가 부담과 충전 인프라 부족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게다가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EU의 '탄소국경조정제' 등 글로벌 무역장벽이 강화되면서 한국산 자동차의 가격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다. 엔진차와 전기차 두 체제를 동시에 끌고 가야 하는 '이중 비용'도 향후 5년간 최대 리스크로 꼽힌다.
  • ▲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차량들이 늘어선 모습 ⓒ뉴시스
    ▲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차량들이 늘어선 모습 ⓒ뉴시스
    ◇ 수주 호황 속 친환경 '딜레마' … 'K-배터리'에도 중국 공세 이어져

    조선업은 LNG선 중심의 수주 호황을 맞았지만 인력난과 원가 상승이 구조적 약점이다. 특히 국제해사기구(IMO)의 친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탈탄소 선박 전환을 위한 추가 투자 부담이 크다.

    철강업 역시 중국 저가 공세, 글로벌 경기 둔화, 친환경 설비 전환 비용이 겹친다. 철강소재 수요가 줄고 탄소 배출권 부담이 커지면서 수익성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한국 배터리 3사는 글로벌 전기차 수요에 맞춰 공격적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CATL, BYD 등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가격 공세가 심해지고 있고 북미 공장 가동률 역시 IRA 보조금 정책에 따라 흔들린다.

    석유화학 업종은 극심한 저성장 국면에 허덕이는 중이다. 중국의 공급 과잉, 글로벌 경기 둔화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된데다 '친환경 전환'이라는 구조적 변화도 당장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규제·노동·지정학 '삼중고'… "기업 옥죄는 구조적 리스크"

    산업별 위기에 더해 한국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리스크도 이미 산적하다. 정부의 각종 규제와 경직된 노동시장은 수십 년간 기업 활동을 제약해온 대표적인 구조적 문제다.

    노동 유연성이 떨어지면서 글로벌 기업들에 비해 생산성 개선 속도가 늦고, 규제 강화 기조는 기업이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거나 인수합병(M&A)을 추진할 때마다 발목을 잡고 있다. 특히 '노란봉투법'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이미 통과됐거나 국회 계류 중인 법안은 기업들 사이에서 "투자 대신 리스크 회피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불만을 키우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도 기업들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미·중 갈등은 단순한 외교 이슈를 넘어 반도체·배터리·자동차 등 핵심 산업의 공급망을 뒤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재집권과 동시에 강화한 대중(對中) 관세, 투자 압박은 한국 기업들로 하여금 중국 시장과 미국 시장 사이에서 줄타기를 강요한다. 한쪽을 택하면 다른 쪽의 보복을 우려해야 하는 불확실성이, 투자 결정의 속도를 늦추고 전략 수립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전문가들은 이런 구조적 장벽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호황 국면에서도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거두는 데 실패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일시적인 메모리 반도체 호황이나 자동차 수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규제와 지정학 리스크가 발목을 잡는다면 결국 경쟁력이 약화되고 성장 모멘텀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업이 곧 국가"라는 말처럼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은 기업의 활력에 달려 있지만,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는 기업이 살아남을 마지막 탈출구 마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