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중국 전략광물' 승부수 … 美 테네시에 통합제련소총 10조9500억원 투자 … 2029년 연 54만톤 생산 체제美 JV 지분 10% 확보 … 고려아연 지분 구도 유리해져영풍·MBK “경영권 방어용” 반발… 신주발행 가처분
  • ▲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10월 29일 오후 경주 예술의전당 화랑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했다. ⓒ고려아연
    ▲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10월 29일 오후 경주 예술의전당 화랑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했다. ⓒ고려아연
    국내 비철·제련 산업의 맏형인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1년을 넘기며 장기전으로 접어들었다. 영풍과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 선언으로 본격화한 갈등은 수조원대 자금 소모와 20여 건의 소송, 기업가치 훼손 등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전략 광물 공급망을 책임지는 국내 유일의 제련기업이 흔들리면서 국가 경제와 안보 리스크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내년 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3라운드’가 예고된 가운데, 본지는 총 6편을 통해 75년 동업의 균열부터 향후 관전 포인트까지 분쟁의 전모를 입체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정책 지원과 글로벌 정세 변화를 고려할 때 지금이 미국 진출의 최적기라고 판단을 내렸다. 미국 현지에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를 건설해 항공우주·방위산업에 필수적인 전략광물을 공급하고, 한·미 간 핵심광물 협력의 축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다.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며 중국의 전략광물 수출 통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고려아연은 글로벌 무대에서 ‘탈중국 전략광물’ 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자원전쟁이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미국 현지서 기초금속부터 핵심·전략광물까지 생산하는 통합제련소 건설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고려아연은 15일 미국 정부와 합작법인(JV)을 설립해 미국 테네시주에 약 20만 평 규모의 제련소를 건립할 계획을 발표했다. 해당 제련소에서는 미국 정부가 ‘핵심광물’로 지정한 11종을 포함해 총 13개 제품을 생산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미국 정부가 전략적 파트너십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도 일제히 환영 입장을 밝히며 고려아연과의 협력에 힘을 실었다.

  • ◇총 투자 10조9500억원…美 정책금융·보조금 지원

    예상 투자액은 총 10조9500억원(약 74억3200만달러)이다. 고려아연과 미국 정부, 미국 내 전략적 투자자가 출자하는 합작법인 ‘크루서블 JV’를 통해 약 2조8600억원(약 19억4000만달러)을 조달하고, 고려아연은 이 가운데 약 8600억원(약 5억8500만달러)을 직접 투자한다. 나머지 자금은 미국 정부의 정책금융과 보조금, 재무적 투자자 대출을 통해 충당한다.

    고려아연은 사업 운영 주체인 크루서블 메탈즈가 미국 정책금융 지원 대출과 재무 투자자 대출을 통해 최대 6조9210억원(약 46억9800만달러)을 추가로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상무부도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에 따라 최대 약 3000억원(약 2억1000만달러)의 보조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 ▲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내부 모습ⓒ고려아연
    ▲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내부 모습ⓒ고려아연
    ◇내년 착공해 2029년 완공…연 54만 톤 생산

    미국 제련소는 2026년 부지 조성을 시작으로 건설에 착수해 2029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완공 이후에는 아연·연(납)·동 공정 순으로 단계적으로 가동된다. 연간 약 110만 톤의 원료를 처리해 총 54만 톤 규모의 최종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연간 목표 생산량은 아연 30만 톤, 연 20만 톤, 동 3500톤, 희소금속 5100톤이다.

    이번 투자는 고려아연이 북미 지역에 안정적인 생산 거점을 확보하는 동시에 성장성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미국은 전기차, 배터리, 데이터센터, 인공지능(AI), 반도체, 방위산업이 집약된 세계 최대 핵심광물 수요처다.

    고려아연 측은 “정책과 규제 예측성이 높은 미국에 생산 거점을 구축하면 지정학적 리스크와 수출 규제, 물류 차질 등 글로벌 불확실성을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고려아연의 생산 확대 물량 중 일부에 대해 우선 매수권을 갖는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테네시 프로젝트는 미국의 핵심광물 공급망 지형을 바꾸는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스티브 파인버그 미 전쟁부 부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핵심광물을 국방·경제안보의 전략 자산으로 규정하고 최우선 과제로 지시했다”고 전하며 “이번 결정이 지난 50년간 쇠퇴한 제련산업을 되살리고, 750개의 일자리와 안정적인 전략광물 공급을 가능하게 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테네시주를 지역구로 둔 빌 해거티 미 상원의원은 X(옛 트위터)를 통해 “고려아연이 우리 주에 세계적 수준의 제련소를 건설하기로 한 것은 단순한 경제적 성과를 넘어, 동맹인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미국의 경제안보를 회복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을 직접적으로 지지하는 지정학적 승리”라고 환영했다.

    이 같은 소식에 힘입어 고려아연 주가는 15일 장중에 26% 가까이 급등해 191만4000원까지 치솟으며 연중 최고가를 새로 기록하기도 했다. 
  • ▲ 미국 제련소 건설 예상 타임라인ⓒ고려아연
    ▲ 미국 제련소 건설 예상 타임라인ⓒ고려아연
    ◇‘경제안보 축’ 굳히는 고려아연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 국면 속에서도 탈중국 글로벌 공급망 기업으로 입지를 강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최윤범 회장은 지난 10월 경주에서 열린 ‘2025 APEC CEO 서밋’에 참석해 한국 자원외교 전면에 나서기도 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이 양국 기업인들을 한자리에 모아 경제 협력과 양국 우호를 다지기 위해 마련한 이 자리가 미국과의 전략광물 협력관계의 기반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8월에는 세계 최대 방위산업체 록히드마틴과 게르마늄 공급망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를 위해 울산 온산제련소에 약 1400억원을 투자해 고순도 게르마늄 생산 공장을 짓는 중이다.

    실적도 올해 들어 분기마다 경신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올해 3분기까지 103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중국의 수출 통제로 인듐·안티모니 등 전략광물 가격이 상승한 데다 ‘트로이카 드라이브’ 신사업 전략이 성과를 내며 3분기 사상 처음으로 분기 매출 4조원을 돌파했다.

    4분기에도 104분기 연속 흑자와 함께 사상 최대 실적이 예상된다. 증권가는 고려아연이 4분기 매출 4조7390억원, 영업이익 369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0.4%, 44.9% 증가한 수치다.
  • ▲ 2025년 고려아연 정기주총 모습. ⓒ뉴데일리
    ▲ 2025년 고려아연 정기주총 모습. ⓒ뉴데일리
    ◇경영권 분쟁의 새로운 변수

    미국 정부가 고려아연 미국 제련소에 직접 투자자로 참여하면서, 영풍·MBK파트너스와의 경영권 분쟁에서도 최윤범 회장 측이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미국 합작법인이 고려아연 발행주식 총수의 약 10%를 확보하게 된다. 이에 따라 영풍·MBK 측 지분율은 44.24%에서 40.22%로 낮아진다. 최 회장 측 지분도 32%에서 29%로 희석되지만, 미국 JV 지분을 우호 지분으로 포함하면 총 지분율은 39.12%로 확대된다.

    영풍과 MBK파트너스 측은 “경영권 방어 목적의 유상증자”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할 계획이다.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울산제련소의 ‘쌍둥이 공장’을 미국에 건설할 경우 국내 제련 산업 공동화와 핵심 기술 유출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향후 양 측의 법적 공방과 주주 표심의 향방에 따라 최윤범 회장 측의 경영 안정성과 중장기 전략 추진 속도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