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떨어졌지만 기름값 고공행진 여전서민들은 비명 … 눈총은 주유소 사장님에게휘발유 단가 모른 채 팔아야 하는 사후정산제석유 최고가격제 강행시 영세 주유소만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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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의 한 주유소 가격표.ⓒ김수한기자
"국제유가는 떨어졌다는데 주유소 기름값은 오늘도 올랐네요."기름값 고공행진에 정부는 30년 만에 석유 최고가격제라는 특단의 강수를 꺼냈지만, 일선 주유소 앞 가격표는 하루가 다르게 숫자가 뛰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10일 오전 10시 기준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L) 당 1906.55원, 서울 평균은 1950.08원으로 전날보다 각각 3.88원, 0.55원 상승했다. 미국과 이란 전쟁 발발 후 서울 및 수도권 주유소 가격이 가파르게 오른 이후 지방으로 상승세가 전이되는 모습이다.120달러에 육박했던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가 전쟁 종식 가능성에 하루만에 80달러 중반까지 떨어진 전날 국제유가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덕분에 일선 주유소 현장에서 '주유소가 폭리를 취한다'는 소비자의 볼멘소리와 '억울하다'는 주유소 사장님 입장은 더욱 첨예하게 엇갈렸다.9일 오후 서울 중심가 한 주유소. 입구 가격 안내표에는 휘발유 2299원, 경유 2169원이 붙어있었다. 서울 평균가를 상회하는 가격이다보니 주유하는 시민들의 표정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직업상 매일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는 김 모 씨는 "운전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인데 요즘은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고 운을 뗐다. 그는 "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리터당 2000원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며" 전쟁이 빨리 끝나지 않는 한 감내해야 할 고통이라지만 버티기가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장을 보고 귀가하던 주부 박 모 씨 역시 불안감을 내비쳤다.박씨는 "주유소 가격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생필품 가격도 올라서 걱정인데 기름값까지 이러니 가정 경제에 먹구름이 낀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 대책만 믿고 있을 수는 없으니 당분간은 자가용 이용을 자제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팍팍해진 가계의 긴축 분위기를 전했다.소비자의 지갑이 얇아질수록 주유소를 향한 시선은 따갑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가격을 올리고 내릴 때는 조금씩 내린다며 주유소가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주유소의 입장은 달랐다.서울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A 사장은 "유가는 오르는데 왜 우리가 도둑놈 취급을 받아야 합니까"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심지어 정부와 대통령까지 나서서 우리를 압박하니 조용히 엎드려 있는 게 상책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온다"고 털어놨다.또 다른 주유소 B 사장도 "지금 같이 싼 주유소만 찾는 상황에서 누가 적자를 보면서 기름을 팔겠냐"고 반문하며 "우리가 사회적 기업도 아니고 욕먹으면서 팔 바엔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낫다는 사장들이 태반"이라며 주유소 업계의 씁쓸한 실상을 전했다. -
- ▲ 서울의 또 다른 주유소 가격표.ⓒ김수한기자
"얼마인지도 모르고 기름 받는다"… 주유소 옥죄는 사후정산제주유소가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선제적으로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이면에는 사후정산제라는 구조적 모순이 자리 잡고 있다.주유소 사장 C씨는 "주유소는 기름을 받을떄 얼마로 받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며 "사후 정산제도 탓에 나중에 확정된 가격표를 받아들고 고스란히 손해를 떠안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지적했다.현재 국내 정유 4사와 주유소 간의 거래는 선입금·후정산 시스템으로 이루어진다. 즉, 주유소는 기름을 받을 때 정확한 매입 가격을 알지 못한다. 일단 정유사가 제시하는 입금가를 내고 기름을 받은 뒤, 1~4주 뒤에 최종 확정가를 통보받고 정산하는 방식이다.유가가 급등하는 시기, 정유사는 손실 보전을 위해 최종 확정가를 높게 책정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주유소는 사후 정산 시 그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불확실성에 노출된다.업계 관계자는 "사후 정산제 때문에 휘발유를 싸게 팔았다가 나중에 손해를 볼 수 있어 불확실성에 대비해 마진을 남겨두고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이런 가운데 정부는 9일 브리핑에서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을 예고했다. 구체적인 시행 방안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전국 주유소별로 천차만별인 가격 체계를 고려해 정유사가 공급하는 출고 단계에서 가격 상한을 두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최고 가격이 국제 유가나 생산 원가보다 낮게 책정될 경우, 제도의 현실성과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특히 사후정산제 구조 아래에서 최고가격제라는 통제까지 가해지면 주유소가 향후 정산 시점에 떠안아야 할 막대한 손실 위험은 커진다.관련 법령에는 가격 통제 대상 사업자의 손실을 국가가 보전해 줄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정부 역시 정유업계의 손실 보전을 위해 필요한 재정 소요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정유사의 손실 보전 근거는 뚜렷한 반면, 주유소를 위한 구체적인 구제책은 보이지 않는다.실제로 2021년 석유 최고가격제를 도입했던 헝가리의 경우 단기적인 물가 상승 억제에는 성공했지만 수익성이 악화된 영세 주유소들의 연쇄 폐업 사태를 겪었다. 결국 주유소들은 불투명한 공급 구조와 정부의 정책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기름값 상승이라는 외부적 요인과 사후 정산제라는 내부적 구조 결함 속에서 소비자와 주유소 자영업자들의 버티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