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문제제기 이어지며 대통령실도 소명 필요성 언급 계엄 옹호 발언 사과하면서도 확장재정 질문엔 침묵해 여야 모두 송곳 검증 별러 나서 청문회 가시밭길 예고
  • ▲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29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뉴데일리
    ▲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29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뉴데일리
    확장재정을 내세운 이재명 정부가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을 지명한 데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이 대통령의 확장재정 정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재정건전성을 강조한 인물을 나라 살림을 책임질 곳간지기에 낙점한 것을 두고 정체성 논란으로 시끄럽다. 이 후보자에 대한 비판 수위가 갈수록 거세지는 상황으로, 험난한 인사청문회가 예고된다. 

    30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내년 초로 예상되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준비에 돌입, 전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에 마련된 예금보험공사로 첫 출근했다.

    이 후보자는 내정 발표 이후 자신의 과거 행적이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듯, 그동안 운영해 왔던 블로그와 페이스북, 유튜브 등 모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관련 콘텐츠를 싹 다 지웠다. 

    이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 출근길에서도 이 후보자는 과거 행보에 대해 선 긋기에 나섰다. 그는 "내란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불법적 행위"라며 "정당에 속해 정치를 하면서 당파성 매몰돼 사안의 본질과 국가 공동체가 처한 위기의 실체를 놓쳤음을 오늘 솔직하게 고백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획처 초대 장관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앞둔 지금 과거의 실수를 덮은 채 앞으로 나아갈 순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계엄으로 촉발된 우리 사회 갈등·분열을 청산하고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전날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과 의혹에 대해 소명과 국민 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적격성 논란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여야는 송곳 검증을 벼르고 있다. 사실상 여야 양쪽에서 우군이 없는 셈이다. 

    확장 재정을 앞세운 이 대통령과 각을 세운 적이 잦았던 만큼 이 후보자의 재정 철학이 청문회의 핵심 검증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 후보자는 '재정 매파'로 꼽히는 인사다. 특히 국가부채를 늘려 예산을 확대하는 방식에는 일관되게 비판적 입장을 보여왔다. 

    지난해 9월에는 "문재인 정부가 국가부채를 어마어마하게 늘려놓은 걸 지금 윤석열 정부가 3년 만에 거의 기적이라고 할 만큼 굉장히 줄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2020년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통령과의 토론에서 "헛돈을 쓰는 것보다 적은 돈을 들여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선별성을 강조했고, 이 대통령의 기본소득과 확장 재정에 대해서는 "포퓰리즘 독재"라고 맹렬히 비판해왔다. 

    기획처는 국가의 예산 편성과 조정을 총괄하는 핵심 컨트롤타워로 수장의 정책 성향이 향후 재정 운용의 방향을 결정짓게 된다. 그동안 이 후보자가 재정건전성을 일관되게 강조해온 만큼 정부의 확장재정론은 충돌할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이날 과거 계엄 옹호 발언에 대해 공개 사과를 내놓으면서도, 이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와의 엇박자 논란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와 관련 "드릴 말씀은 많지만 따로 날을 잡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다만 일각에선 '12·3 비상계엄'을 옹호했던 이 후보자가 장관 지명 이후 태세를 전환하면서 결국 '정책 주파수 맞추기'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후보자의 과거 정치 행보도 인사 검증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에서 3선 의원 지낸 중진으로 최근까지도 국민의힘 중구·성동구을 당협위원을 맡아온 '보수 색채'가 뚜렷한 인물이다. 

    그동안 그동안 더불어민주당 경제 정책은 물론 이 대통령이 추진해온 기본소득 등 보편적 복지 정책에 대해서도 선두에서 날카롭게 비판하며 여권 기조와 정면으로 맞서왔다. 과거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연설을 하는 등 강경 보수 성향으로 분류돼 온 만큼 정체성 논란도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자의 정부 입각 수락을 두고 여야 모두 벼르고 있다. 국민의힘은 내정 발표 3시간여만에 이 후보자를 제명 조치하고 당직자로서 행한 모든 당무 행위를 취소하기로 의결했다. 국민의힘은 "보수 정당 3선 의원 출신이 현역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입각 제의를 수락한 것은 전례 없는 배신"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야권인 개혁신당에서는 지명 철회 가능성도 거론된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보수·진보 가리지 않고 난타전이 펼쳐질 것이며 지명 철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여당 내부 비판도 심상찮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 외치고 윤석열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을 예산처 장관에 앉히는 인사, 곳간의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의 파기"라고 공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후보자의 지명에 대해 "향후 확장재정을 둘러싸고 비판이 제기되더라도 보수 인사에 경제 정책을 맡겼는데도 마찬가지라는 식의 논리를 얼마든지 펼 수 있을 것"이라며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민의힘을 더 오른쪽으로 밀어내는 정치적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는 구도인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