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명 몰린 '배터리 잡페어 2026' 뜨거운 열기 속 차가운 구직 현실살아남기 위해 ESS로 눈길 돌리지만 "막막해" 한숨
  • ▲ 배터리 잡페어 2026.ⓒ김수한기자
    ▲ 배터리 잡페어 2026.ⓒ김수한기자
    11일 오후 서울 코엑스.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전시장, 배터리 산업의 화려한 신기술들이 번쩍인다. 메인 전시장 맞은편에 위치한 '배터리 잡페어 2026' 부스의 공기는 화려함과는 사뭇 거리가 있었다.

    3월부터 진행 중인 채용과 맞물려 이틀 동안에만 수백 명의 학생이 이곳을 찾았다. 현직자 멘토링을 듣기 위해 이력서와 노트를 든 취업준비생들의 얼굴에는 기대감과 못지 않게 불안감과 초조함도 서려 있었다.
  • ▲ 배터리 잡페어 현장 사진.ⓒ김수한기자
    ▲ 배터리 잡페어 현장 사진.ⓒ김수한기자
    "캐즘 ‥ 캐즘 하더니 … 채용도 줄어 울적합니다"
    취준생들이 현장에서 뼈저리게 체감하는 가장 큰 벽은 단연 전기차캐즘이었다. 기업들은 작년보다는 상황이 나아졌다고 다독이지만 현장을 누비는 구직자들의 체감 온도는 아직 춥다. 현장에서 만난 홍익대학교 학생 A씨는 "막상 와보니 취업이 더 어려워졌다는 생각이 든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설명회를 들어봐도 결국 전기차가 캐즘이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도 많이 안 뽑는 느낌이 강하다"며 "옆에 진짜 잘나가는 반도체 산업에 비해서는 채용의 문이 훨씬 좁아 보인다"고 토로했다.

    대학원생 구직자 B씨의 반응도 비슷했다. "기업들이 캐즘을 핑계로 사업 방향을 휴머노이드 쪽으로 바꾼 느낌이랄까요?"라며 "사업 폭이 커졌다기보다는 결국 캐즘 때문에 뽑는 인원이 줄어든 것 같아 오히려 울적합니다"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보수적인 채용 움직임을 구직자들은 이미 포착한 상태였다. 충북대학교 학생 C씨는 "이번에 삼성전자나 다른 계열사들은 인턴을 뽑았는데 배터리사인 삼성SDI는 따로 인턴을 뽑지 않더라"며 "그런 현상만 봐도 현재 시장 상황이 얼마나 얼어붙어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짚었다.

  • ▲ 인터배터리 2026 SK온 부스 현장.ⓒ김수한기자
    ▲ 인터배터리 2026 SK온 부스 현장.ⓒ김수한기자
    설상가상 AI에 뻇기는 일자리
    모두가 주목하는 AI는 취업준비생들에게는 일자리 경쟁자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SK온은 배터리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AI 기반 연구개발 플랫폼'을 전면에 내세웠다. 배터리 지식과 축적된 개발 결과를 학습시킨 '셀 설계 AI 시스템'을 넘어, 앞으로 R&D 전체로 AI 업무를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지켜본 한 대학생은 "부스에 AI 연구원이 있던데, 배터리 공부해서 들어갔더니 결국 AI에게 직업을 뺏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기업은 이 플랫폼에 대해선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는 조력자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만난 SK온 관계자는 "원래는 연구원들이 고객의 제안요청서(RFP)를 일일이 읽고 분석해 누가 할 일인지 다 나눠야 했다"며 "이제는 AI 에이전트가 일을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AI와 연구원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며 "연구원들이 AI가 학습하지 않은 새로운 영역의 데이터를 주며 AI를 성장시키고, 연구원들은 AI 덕분에 단순 업무를 줄이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걱정하기엔 이르다며 우려를 덜어줬다.

  • ▲ 인터배터리 현장ⓒ뉴데일리
    ▲ 인터배터리 현장ⓒ뉴데일리
    돌파구는 ESS지만 "포트폴리오 어쩌나"
    얼어붙은 채용 시장에도 청년들은 주저앉지 않고 생존 전략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었다. 이들이 눈을 돌린 곳은 'ESS(에너지저장장치)'다.

    대학교 3학년 D씨는 "전시를 보며 포커스가 EV에서 ESS로 명확히 넘어갔다는 확신이 들었다"며 "AI 시대에 막대한 에너지를 감당하려면 결국 배터리가 필수적인 만큼 그쪽으로 자소서 방향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과기대 학생 E씨도 "전기차가 캐즘에 빠졌을 뿐 배터리 산업 자체는 전력망 구축이나 ESS 등 다른 쪽으로 클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열의를 보였다.

    이들은 공격적인 투자와 조직 문화를 이유로 LG에너지솔루션, 전고체 배터리 양산과 북미 시장에 맞춘 각형 폼팩터 경쟁력을 지닌 삼성SDI 등 각자의 목표를 뚜렷하게 세우고 있었다.

    다만 "결국 갈 사람은 가는 분위기인데, 문제는 포트폴리오"라며 실무역량 쌓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고 말했다. "대학생 수준에서 직접 실험을 해보거나 포트폴리오를 만들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하며 기술의 발전 속도만큼 채용자들의 눈높이가 더 올라갈까하는 우려도 보였다.
  • ▲ 인터배터리 2026 현장.ⓒ뉴데일리
    ▲ 인터배터리 2026 현장.ⓒ뉴데일리
    화려한 신기술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전망이 가득한 '인터배터리 2026'. 하지만 잡페어를 나서는 한 취준생의 뼈있는 한마디는 씁쓸했다.

    "저기 메인 전시장은 기업들끼리의 비즈니스를 위한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진짜 주인공은 저들인 셈이죠. 바라는게 있다면 배터리사 취업 준비생들을 위한 잡페어 규모도 저렇게 컸으면 좋겠습니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기술의 속도만큼 청년을 위한 채용의 문도 열릴 수 있을까. 화려한 축제의 이면에 애타는 청춘들의 한숨이 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