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물가 28년 만에 최대치, 성장률은 1%대 '털썩'경기부양책도 '물가 자극' 우려에 정책 딜레마 심화빠른 추경 집행, 성장률 방어하겠지만 물가 압력↑
  • ▲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와 경유를 2000원 대에 판매하고 있다. ⓒ뉴시스
    ▲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와 경유를 2000원 대에 판매하고 있다. ⓒ뉴시스
    중동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와 환율이 급등하면서 주요 국제기구와 해외 투자은행들은 올해 한국의 물가상승률 전망을 상향하고 경제성장률 전망은 하향 조정하고 있다. 실제로 수입 물가는 28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으며 경제성장률 전망은 1%대에 머물고 있다. 이달 들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잇따라 하향 조정되면서 성장률 둔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1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 수입물가(원화 기준)는 전월 대비 16.1% 급등해 1998년 1월(17.8%) 이후 28년 2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급등했다. 원유 수입물가는 전월 대비 88.5% 뜀박질하며 198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2%로 특히 석유류가 9.9% 뛰며 전체 물가를 0.39%포인트(p) 끌어올렸다. 석유류 물가 상승률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인 2022년 10월(10.3%)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아직 국제유가 상승이 소비자물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상태다. 일반적으로 석유류 가격 상승은 시차를 두고 운송·물류를 비롯해 공산품, 가공식품, 외식 물가 등으로 확산되는 만큼 4월 이후부터 물가 상승 압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고환율도 부담 요인이다. 한은에 따르면 환율이 10% 오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3%p 오르는 경향을 보인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안팎에서 움직이는 고환율 상황이 이어지면서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원화 약세에 원유, 가스, 곡물 등 달려로 결제되는 수입 품목 단가가 강한 상승압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물가 충격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미 소비자 심리는 급락세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는 107.0으로 전월(112.1)보다 5.1p 하락했다. 지난해 6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가장 큰 낙폭으로, 중동전쟁에 따른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 우려가 겹치며 소비를 줄이려는 심리가 강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국제금융기구와 해외IB들도 우리나라 물가 전망치를 줄줄이 상향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2.5%로 직전 전망치(1.8%)보다 0.7%p나 올려 잡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0.9% 높인 2.7%를 전망했다. 해외 주요 IB 8곳들도 평균 2%에서 2.4%로 0.4%p 높였다. 프랑스 IB 나티식스는 4.2%에 달할 것이란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대외 충격으로 급등한 물가는 성장 둔화로 이어지고 있다. 국회를 통과한 추경 예산 26조2000억원이 풀리면 성장률을 일정부분 방어하겠지만 물가와 환율의 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은 문제다. 

    정부는 고유가에 따른 피해지원금 등 10조5000억원 규모 '전쟁추경' 사업을 상반기에 85% 이상 집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감안하면 8조9000억원 이상이 석달 내에 집중적으로 풀리게 되는 셈이다. 침체된 내수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소비 촉진 사업이 대거 추진될 경우 가뜩이나 불안한 물가 상승 압력을 가중시킬 수 있어, 내수 진작과 물가 안정 사이에서 정책적 딜레마에 놓였다는 지적이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추경으로 수십조원의 돈이 풀리면 통화량이 늘어나 물가 상승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며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추경을 편성한다지만, 결과적으로 더 높아진 물가로 오히려 부담이 커지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당초 2% 성장을 기대했던 한국 경제는 하방 압력이 커지며 1%대 성장에 머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성장률은 낮아지고 물가 상승 압력은 커지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중동 전쟁 여파로 대부분 주요 기관들은 1%대로 전망을 낮춰잡았다. OECD는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1.7%로 0.4%p나 끌어 내렸다. IMF나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망치도 1.9%다. 

    당초 한은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로 2.0%를 제시했지만, 최근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회의서 "앞으로 반도체 수출 호조와 추가경정예산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공급 차질의 영향으로 성장세가 당초 예상보다 둔화하면서 올해 성장률이 지난 2월 전망치(2.0%)를 하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하향 조정을 시사한 상태다. 

    스태그플리에션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잇따른다. 국내외 40여개 기관중 처음으로 한국의 올해 전망치를 1.0%까지 하향 조정한 나틱시스는 "(한국을 포함한) 신흥 아시아 국가들은 중앙은행이 도울 수 없는 스태그플레이션 환경에 직면할 것"이라며 "한국은 경상수지 흑자에도 수입 에너지에 대한 높은 의존 때문에 국내총생산(GDP)에 상당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리서치 회사인 캐피털 이코노믹스도 "한국은 에너지 순수입 대국으로 글로벌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교역 조건 충격은 스태그플레이션 충격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