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값 뛰자 수출·소득·금융시장 연쇄 반응교역조건이 바꾼 성장 공식 … 시장도 금리도 다시 계산코스피·환율·채권까지 … 메모리값이 흔든 거시경제'취업자 2.6%' 산업에서 파급은 경제 전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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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가장 큰 의존처가 됐다. 수출과 투자, 기업 실적을 넘어 증시와 환율, 금리까지 경제 전반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반도체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성장의 과실은 특정 산업에 집중되고, 경제와 금융은 그만큼 하나의 사이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이는 호황의 혜택보다 충격의 파급력이 더 커질 수 있음을 뜻한다. 본지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함정' 시리즈를 통해 반도체 중심 성장 구조를 금융과 거시경제의 시각에서 짚어본다. [편집자주]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중 2.6%에 불과한 산업이 중앙은행의 긴축 전환을 가능하게 한 경제 여건을 만들었다. 반도체 호황은 수출과 국민소득을 끌어올리면서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부담을 덜어준 반면, 긴축의 비용은 호황에서 소외된 산업과 가계까지 함께 부담하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21일 관세청에 따르면 7월 1~20일 수출은 549억 3300만달러로 역대 같은 기간 최대를 기록했다. 반도체 수출은 221억 1300만달러로 180.6% 급증하며 증가세를 이끌었다. 시장은 수출 규모보다 반도체 의존도가 한층 높아진 데 주목했다. 한국 경제의 대외 흐름이 메모리 가격과 업황 변화에 이전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수출가격 상승은 교역조건을 통해 국민소득으로 이어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반도체 가격은 전년 동기보다 92.5% 상승했고 IT 부문은 전체 수출물가 상승분의 73.4%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3.8% 증가했지만 교역조건을 반영한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13.2% 늘었다. 두 지표의 격차는 9.4%포인트로 196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컸다. 생산보다 소득이 더 빠르게 늘어난 것은 교역조건 개선의 결과였지만, 그 변화 역시 반도체 가격 상승에 크게 기대고 있었다.

    늘어난 소득은 기업의 투자 판단도 바꿨다. 메모리 가격 상승으로 확보한 수익은 첨단 공정과 고대역폭메모리(HBM) 투자로 이어졌고 장비·소재 발주도 함께 늘었다. 기업들은 업황 회복을 확인한 뒤 투자 규모를 조정하던 과거와 달리 시장 선점을 위한 선제적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출에서 시작된 호황이 기업 이익을 거쳐 다시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형성되는 모습이다.

    증시는 이런 변화를 가장 빠르게 가격에 반영했다. 외국인 수급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집중되면서 두 기업의 이익 전망은 지수 전체의 가치평가를 좌우하는 변수로 자리 잡았다. AI 투자 기대가 높아질 때는 반도체주가 증시를 견인했지만 최근 업황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면서 코스피도 6500선까지 밀려났다. 개별 기업의 주가 변동이 시장 전체의 변동성으로 확대되는 흐름이 이전보다 뚜렷해졌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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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권시장도 같은 신호를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주식시장이 기업의 미래 이익을 먼저 반영했다면 채권시장은 성장과 물가, 통화정책의 변화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중심의 수출 회복과 설비투자가 이어질수록 경기 회복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확산하면서 장기금리는 상승 압력을 받았다. 은행채 5년물 금리는 4.428%까지 올랐고 5대 은행의 혼합형 주택담보대출 금리 하단도 4.77%로 높아졌다. 성장 기대는 금융시장을 거치며 실물경제보다 먼저 자금조달 비용을 끌어올렸다.

    환율도 더 이상 미국 통화정책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반도체 수출 증가와 무역흑자는 달러 유입을 늘리며 원화를 지지했지만 반도체 대형주를 중심으로 한 외국인 자금 이동은 환율 변동성을 키웠다. 같은 산업이 원화를 떠받치면서도 동시에 흔드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이 메모리 가격과 반도체 업황을 주요 변수로 함께 살펴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융시장이 먼저 반응한 변화는 통화정책의 판단 환경도 바꿨다. 한국은행은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0.25%포인트 인상하며 3년 6개월 만에 긴축으로 돌아섰다. 물가와 환율, 가계부채, 주택시장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작용했지만 수출과 국민소득, 기업투자가 동시에 개선되지 않았다면 긴축 전환의 부담도 지금보다 훨씬 컸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가 금리를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금리 인상이 가능한 경제 여건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데에는 시장의 시각이 대체로 일치한다.

    반도체의 경제적 영향력은 커졌지만 고용의 폭은 그만큼 넓어지지 않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반도체를 포함한 IT 제조업 종사자는 전체 취업자의 약 2.6%에 머문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매출 상위 282개 기업의 영업이익은 81% 증가했지만 고용은 0.2% 늘어나는 데 그쳤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한 IT·전기·전자 업종은 영업이익이 2740.5% 급증했지만 고용은 0.6% 증가에 머물렀다.

    반면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부담은 산업을 가리지 않는다. 한은은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연간 이자 부담이 약 3조 3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반도체가 만든 성장의 효과와 금리 인상의 부담이 경제 전반으로 전달되는 속도와 범위는 같지 않다는 점도 이번 사이클이 보여준 특징이다. 과실은 일부에 집중됐지만 그에 따른 부담은 모두가 나눠 짊어진 셈이다.

    금융권에서는 반도체가 개별 산업을 넘어 거시경제를 설명하는 핵심 변수로 자리 잡았다는 데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재의 호황을 곧바로 경제 전반의 체력이 개선됐다는 해석으로 연결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반도체 산업은 투자 경쟁과 실패 위험이 모두 큰 산업"이라며 "기업 이익은 초과이익보다 미래 투자를 위한 재원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