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결정·실행 필요한데... "위기 돌파 방안 마련 안갯속"
  • ▲ 최태원 SK그룹 회장 ⓒSK그룹
    ▲ 최태원 SK그룹 회장 ⓒSK그룹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부재 속에서 핵심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의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 주력사업인 정유 부문은 물론 석유화학과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서도 눈에 띌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수백억원을 투자해 온 태양광 전지 사업은 아예 청산을 결정했다.

    특히 연료전지분야의 핵심 기술인 분리막(LiBS) 기술을 세계 3번째로 획득, 야심차게 추진해 온 배터리사업도 투자자를 찾아나선 상황이다. 현재 SK는 여러 기업에 합작사설립 등을 타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자동차용 배터리의 경우 중국 정부의 대기환경개선 정책에 따라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시장 자발적인 움직임이 아닌 강력한 인센티브에 따른 것으로 유가가 갑작스레 폭락하는 등 에너지시장 체계가 불안전한 가운데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분명한 시장이다. 게다가 LG, 삼성 등과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시장이다.

    국내에 이미 휴대폰 및 노트북 등 소형연료전지 시장에서 검증을 받은 기업들이 두 곳이나 있는 만큼, 돌파구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산업용 ESS(에너지저장장치. Energy Storage System) 시장의 경우, 시장 초기인데다 진출장벽이 높아 마땅한 수요처를 찾지 못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모습이다. 

    사실상 급작스러운 유가 붕괴로 정유·석화·신재생에너지 부문이 타격을 받은데다, 최종 결정권자인 최 회장의 공백이 길어지면서 선제적 투자와 과감한 사업적 결단이 늦어진 데 따른 아쉬운 결과로 해석된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올 초부터 SK이노베이션의 사령탑을 맡게 된 정철길 사장은 직원들에게 "올해 죽기 살기로 각오해야 한다"면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지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거듭 강조했다고 한다.

    냉정하게 사업 경쟁력을 따져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몰아치면서 검토하고,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힘을 실어 '어떻게든 살려보자'는 것이다. 정 사장은 사장 취임 후 종종 최 회장을 찾아 시장 상황과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뿐만 아니라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를 포함한 신사업 분야에서 신규 투자 파트너 및 합자사(JV) 설립을 검토하기 위해 최근 국내 여러 기업들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 측은 "JV  설립이나 공동 투자 등은 다양한 사업 방안 중 하나일 뿐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다양한 위기 돌파 방안을 여러모로 고민하고 있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예기치 못했던 유가 폭락으로 주요사업들이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빠른 결정과 실행이 절실한 신사업이 잇따라 차질을 빚으면서 SK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 ▲ 최태원 SK그룹 회장 ⓒSK그룹



    △국제유가 폭락 직격탄... 37년만에 적자

국내 간판 정유 업체인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37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확한 실적이 발표되는 1월 말께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업계에서는 지난해 SK이노베이션과 SK에너지·종합화학·루브리컨츠·인천석유화학·트레이딩인터내셔널 등 5개 자회사의 연결 영업이익이 지난 1977년 이후 처음으로 적자 전환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1년 사이 국제유가가 반토막나면서 주력인 정유 부문의 재고평가 손실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SK이노베이션 실적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지난 4분기에만 약 7000억원에 달하는 재고평가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했다.

재고평가 손실이란 정유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석유와 석유제품 등의 재고 가치가 떨어지는데서 오는 손실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재고자산의 가격이 하락했을 때 그 하락된 가격으로 재고의 가치를 평가함으로써 생기는 손실을 뜻한다.

올해 정유 부문 사업 전망 또한 그리 밝지 않다. 외국 투자자들은 올 상반기 내 국제유가가 20달러 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다만 다행스러운 점은 유가가 바닥에 근접할수록, 반등의 기회가 가까워진 만큼, 그동안의 손실을 만회할 기회가 있다는 점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선이 무너지자 일부 저항세력이 나타나고 있고 세계 최대 수요처로 부상한 중국이 비축유 구입에 나서는 등 서서히 바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석유시장에서는 유조선 임대료(WS지수)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시장에서는 일부 투기세력들이 유조선에 원유를 채워 공해상에 세워뒀다는 이야기가 회자되는 등 서서히 반등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석유화학... 싱가포르 주롱아로마틱콤플렉스 가동 중단

석유화학 부문도 유가 폭락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SK가 싱가포르에 운영 중인 주롱아로마틱콤플렉스(JAC)는 최근 공장 가동을 완전히 중단하고 설비 변경에 나선 것이다. 

JAC는 콘덴세이트(초경질원유)를 기반으로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도록 설계됐으나, 최근 콘덴세이트 가격이 상승하고 유가는 폭락하면서 상대적으로 아로마틱 계열 제품의 경쟁력이 악화된 것이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콘덴세이트 뿐 아니라 나프타 등 다양한 원재료를 이용해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정으로 구조를 변경하기 위해 상업가동 이후 4개월 만에 JAC의 가동을 중단한 것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저렴한 나프타 등 원료 다변화 차원에서 설비를 변경하고 있다"면서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3월께 재가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JAC는 현재 SK종합화학, SK건설, SK가스 등 SK그룹 3개 계열회사가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이며 이어 중국 PTA(고순도 테레프탈산) 제조업체인 SFX가 25%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태양광 전지 사업 '청산'... 헬리오볼트 경매에 부쳐

SK가 지난 2011년 7600만달러(824억원)에 인수한 미국 태양광 전지업체 헬리오볼트(HelioVolt)는 최근 아예 문을 닫았다.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헬리오볼트는 지난 14일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소재 태양광 패널 공장 등 자산을 경매에 부쳤다. 해당 사업을 그대로 이어받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시설과 부지 등 공장 자산을 경매에 부친 것이다. 

SK 측은 그 동안 헬리오볼트에 대한 투자를 보류하고 시장 상황을 지켜보던 중 사업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지난해 초 지분매각 발표 후 새로운 투자자를 찾아 나섰지만 실패하자 결국 청산절차를 밟게 됐다. 이로 인해 SK는 최대 675억원대 자금 손실을 입게 될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사업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 하에 방향을 전환하게 된 것"이라면서 "여러가지 시장 상황상 투자자 찾기기 쉽지 않아 사업 철수를 최종 결정했다"고 전했다.


△믿을 것은 전기차 배터리 뿐? "중국 시장 반응 좋아"

  • ▲ SK이노베이션 대덕 글로벌테크놀로지를 방문한 최태원 SK회장(왼쪽) ⓒSK이노베이션
    ▲ SK이노베이션 대덕 글로벌테크놀로지를 방문한 최태원 SK회장(왼쪽)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은 경쟁 업체인 LG화학과 삼성SDI에 비해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그 간 뚜렷한 실적을 내지 못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대량 수주나 확실한 사업적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 중국 시장에서 전기차 수요가 늘고 있어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에 거는 기대가 크다.

    지난해 말 SK이노베이션은 독일 콘티넨털과 손잡고 진행한 전기자동차 배터리 합작 사업을 청산하면서 유럽 시장에서 뒷걸음질 치기도 했다.

    당초 SK가 배터리셀을, 콘티넨털이 배터리제어시스템(BMS)을 각각 공급해 배터리팩시스템을 개발·생산하기로 했지만 유럽 시장에서 이렇다할 실적을 내지 못하자 양사는 2년만에 사업을 중단하기로 최종 합의한 것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생각했던 것 만큼 유럽에서 전기차 시장이 실적을 보이지 못해 사업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며 "콘티넨털과의 사업은 종료됐지만 이와는 별개로 중국 베이징자동차그룹과의 배터리 합작 사업은 차질없이 원활히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SK는 유럽사업을 접으면서 '중국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주력할 것'이라는 의견을 거듭 밝혀왔다. 다행히 중국 시장 내 전기차 배터리 반응은 좋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월 베이징전공, 베이징자동차와 손잡고 합작사인 '베이징 베스크 테크놀로지(Beijing BESK Technology)'를 설립했다. 지난해 11월 5일부터 11일까지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가 탑재된 베이징자동차의 전기차 세노바EV 50대가 의전차량으로 공식채택되기도 했다.

    국제유가 폭락으로 신재생에너지 분야가 직격탄을 맞았으나 올 상반기 중국 시장 내 전기차 수요가 예상 밖으로 늘면서 SK이노베이션은 당초 잡았던 연 5000~8000대 물량 목표를 채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은 중국에 전기차 배터리 2000여대 물량을 공급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올 초부터 SK이노베이션 배터리가 탑재된 션바오EV가 판매를 시작했다"면서 "션바오EV 업그레이드 모델인 '150' 모델이 올 들어 1000대 정도 팔렸으며 북경 내 택시 등의 수요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배터리 셀을 생산하는 충남 서산 공장과 배터리 팩을 만드는 중국 공장 모두 풀가동 상태"라며 "중국 시장 수요가 예상외로 많아 생산규모 증설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이 단순히 중국시장에 눈을 맞춰 시장을 확대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 밖에 없다. 리스크가 큰 만큼, 세계적 수준의 기술을 가지고도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