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 불안에 수주 경쟁 심화… "올해도 비우호적 상황 이어져중국 이어 유로화 약세 기반 유럽 건설사까지 저가 수주 공세해외 발주처, 자금 수반 'PPP사업' 선호… "정부 자금조달 지원 절실"
  • ▲ 자료사진. GS건설이 수행한 이란 사우스파 9·10단계 현장. ⓒGS건설
    ▲ 자료사진. GS건설이 수행한 이란 사우스파 9·10단계 현장. ⓒGS건설


    아파트 신규분양 급증에 따른 공급물량 부담과 부동산시장 안정화 대책에 따른 시장 위축, SOC예산 축소 영향 등 올해 건설업계가 직면한 악재들이 산재해 있는 가운데 해외시장이 돌파구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공격적인 발주가 이어지지 않는데다, 경쟁도 심화되면서 좀처럼 반등의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오르고 있지만 발주국의 재정난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인 만큼 자금조달과 관련, 정부와 금융기관들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4일 해외건설협회 집계를 보면 지난해 국내 건설기업의 신규수주액은 모두 290억달러로, 전년 281억달러에 이어 2년 연속 300억달러를 밑돌았다. 해외건설 신규수주액이 2년 연속 300억달러를 하회한 것은 2005년 108억달러, 2006년 164억달러 이후 처음이다.

    중동(145억달러, +36.3%)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의 성과가 크게 뒷걸음질 쳤다. 유럽(32억달러)과 아프리카(69억달러)는 각각 전년대비 46.5%, 42.9% 줄어든 절반 수준에 그쳤고 아시아 지역도 126억달러에서 124억달러로 소폭 감소했다.

    아메리카 대륙은 더 심각하다. 태평양·북미 지역(54억달러)의 경우 전년보다 59.8% 줄어들었으며 중동과 아시아에 이어 제3의 시장으로 부상했던 중남미(36억달러)는 전년에 비해 22.3% 수준으로 쪼그라들면서 유럽 다음으로 작은 시장으로 추락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지역에서 2010년대 들어 가장 낮은 신규수주액을 기록하면서 정부와 업계가 목표했던 300억달러 달성에 실패했다.

    이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 지속,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갈등 등 중동 발주국의 정세 불안 영향에 국제유가 역시 회복세가 더뎠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중국 및 유럽건설사와의 수주경쟁 심화, 국내 건설기업들의 주택시장 집중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꼽힌다.

    특히 MENA 지역(중동·북아프리카) 나라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발주가 지연된 것으로 보인다.

    이광수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국내 기업들의 주요 공략지인 MENA 지역에서 나올 예정이었던 대형 프로젝트들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면서 하반기 들어 수주액 증가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모습을 보였다"며 "발주 감소가 수주 위축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중동 지역 프로젝트 전문매체 MEED 등에 따르면 지난해 MENA 지역에서 발주된 프로젝트 규모는 모두 1615억달러로, 전년보다 9%가량 줄어들었다.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중국과 유로화 약세로 가격경쟁력이 생긴 유럽업체와의 수주 경쟁에서 밀린 것도 한몫했다.

    미국 건설전문지인 ENR 조사 결과 유럽 지역 주요 건설사들은 최근 중동 지역 매출을 확대하고 있다. 사이펨(Saipem) 등이 있는 이탈리아 국가 건설사는 2016년 중동 매출을 전년보다 20.9% 확대했고, 같은 기간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TR) 등 스페인 건설사들의 중동 지역 매출은 59.6% 급증했다.

    건설사들이 최근 몇 년간 이어진 국내 분양시장 호황에 맞춰 주택사업에 집중하면서 해외 경쟁력 제고에 소극적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용광 해건협 사업관리실장은 "중국, 스페인 등 경쟁국가들 때문에 저가수주 경쟁이 심해졌고, 수년간 해외에서 고전한 건설사들이 경기가 좋은 국내 시장에 치중한 것도 실망스러운 해외수주 실적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올해 시장 전망 역시 밝지 않다는 점이다.

    KDB산업은행 산업기술리서치센터는 해외건설 전망을 호황보다는 '선방'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은행 측이 예상하는 해외수주액 규모는 329억달러로, 지난해 예상치 314억달러보다 4.8% 늘어난 수준이다. 중동 지역 수주 규모는 지난해 예상치 152억달러보다 소폭 증가한 158억달러로 추산됐으며 아시아는 145억달러에서 153억달러로 증가하는데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기타 규모는 17억달러로, 지난해와 비슷할 것으로 내다봤다.

    산은 측은 "해외수주 부진은 유가 하락에 따른 중동 지역의 재정 악화로 발주 규모가 감소한 영향이 크다"며 "아시아 지역 역시 반등의 계기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고 판단했다.

    한국신용평가도 △유가 상승이 제한적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은 점 △GCC(걸프협력회의) 주요국 재정 적자 지속에 따른 발주 부진 △사우디, 이란간 갈등 심화와 같은 중동 지역 정세 불안 △유럽업체들의 공격적인 수주 전략 등을 고려해 비우호적인 사업 환경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대형건설 한 관계자는 "유가가 반등하면서 중동의 상황이 다소 호전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중국은 물론, 유럽 건설사들까지 저가 수주 공세를 펼치고 있어 아직까지는 마진과 경쟁력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사업방식도 자금능력이 중요한 요소인 투자개발형 민간협력사업(PPP)을 확대하고 있어 기술력은 있지만, 상대적으로 자금 여력이 없는 국내 건설기업들이 수주시장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PPP 발주는 건설사가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국제유가가 상승하고 있지만 그간 저유가로 인해 쌓인 중동 산유국들의 재정적자를 완전히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중동 국가들이 시공자금융뿐만 아니라 PPP 형태로 사업 발주를 늘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GCC 국가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조달해야 하는 6000억달러 가운데 정부 지출액은 절반 수준인 3300억달러에 불과하다는 조사도 있다. 사우디는 저유가로 추진이 중단됐던 사업들을 PPP 방식으로 재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쿠웨이트와 두바이 등도 민간 참여를 늘리기 위한 관련 제도 손질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정부의 다양하고 적극적인 금융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용광 실장은 "해외 발주처들도 과거에 공사만 발주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자금을 수반한 PPP 사업을 선호한다"며 "자금조달 등에서 정부의 실질적인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기술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시공능력만으로는 사업을 따내기 어렵다"며 "해외수주가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국책은행, 시중은행, 연기금 등이 해외 PPP 참여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금융과 건설이 연계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주요 건설사 수장들도 신년사를 통해 올해는 해외건설 수주를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은 "전문가들은 올해와 내년 건설산업의 암흑기가 예상된다는 전망을 내놨다"며 "그럼에도 글로벌 건설시장의 긍정적인 전망과 아시아 등 해외 플랜트, 인프라 시장의 회복 가능성이 점쳐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대건설만의 축적된 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수주를 확대해 매출 증대와 손익 개선을 이뤄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석주 롯데건설 사장도 해외사업 강화를 언급했다. 그는 "롯데건설의 미래는 해외사업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올해는 롯데건설이 100년 기업이 되기 위해 글로벌시장으로 도약하는 초석을 다지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찬건 포스코건설 사장 역시 글로벌시장을 내다봤다. 그는 "올해는 향후 10년간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글로벌시장에서의 차별적 경쟁 우위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