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쏟아진 질책... 심도 깊은 대책 논의 어디로?
  • ▲ 국회 18일 열린 정무위 청문회에서는 증인들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사진은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신제윤 금융위원장 등이 증인선서하는 모습. ⓒ 연합뉴스
    ▲ 국회 18일 열린 정무위 청문회에서는 증인들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사진은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신제윤 금융위원장 등이 증인선서하는 모습. ⓒ 연합뉴스


    질타와 호통이 빗발쳤다. 하지만 대책 마련을 위한 진지한 논의는 없었다.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청문회를 표현하는 짧은 두 문장이다. 금일 여야 정무위원들은 한 목소리로 증인들을 강한 어조로 나무랐지만 문제 해결과 재발 방지를 위한 심도 깊은 논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호통국감’. 국회가 국정조사 또는 국정감사를 열 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오명이다.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은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 국회 정무위원회가 특별히 마련한 이번 청문회 역시 실속 없는 호통국감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 쏟아지는 질책들…

이날 청문회는 금융 관련 당국자들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최근 “이번 사태는 소비자의 책임”이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가장 먼저 질타의 대상이 됐다. 

김용태(새누리당·서울 양천을) 의원은 "현 부총리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미비해 국민이 대출 업체의 문자메시지에 시달리는 상황을 인식 못하고 적절치 못한 발언을 한 데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현 부총리는 사건 초기 "(카드 이용자가) 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았느냐"는 자신의 발언이 논란이 됐던데 대해 "신중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금융당국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금융업계 관리·감독에 뒷짐만 지고 있던 것 아니냐는 것이다.

김 의원은 "금융감독원은 2012년을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실태조사 조차 안했다"며 "대출시장의 1년 시장 규모가 6700억원으로 아무리 엄벌한다고 해도 이 같은 사태를 근절하기 어렵다. 금융사가 대출업체에 외주를 줄 때 합법적인 방법으로 수집하지 않으면 함께 책임을 지도록 해야 근본적 문제가 해결된다"고 촉구했다.

김정훈 정무위원장은 신제윤 금융위원장에게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것”을 직접 주문했다. 김 위원장은 신 위원장에게 “현재까지 카드 사태와 관련, 특정 인물에게 제재를 가한 사실이 있느냐?”고 물은 후,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 어물쩡 넘어가는 일이 생겨서는 결코 안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한편, 청문회에는 신용카드사에서 고객정보를 빼돌려 구속된 코리아크레딧뷰로(KCB)의 박 모(39) 차장과 이를 사들인 광고대행업체의 조 모씨도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증인석에 나와 눈길을 끌었다.

  • ▲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KCB 박 모 차장과 광고대행업체 조 모 씨. ⓒ 연합뉴스
    ▲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KCB 박 모 차장과 광고대행업체 조 모 씨. ⓒ 연합뉴스


  • ◇ 질책만으로 문제 해결되나

    문제는 이 날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발언이 이번 사태의 대책을 마련하고 재발방지책을 찾기 보다는, 잘잘못을 따지는 ‘호통’ 일색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김기식(민주당·비례대표) 의원은 임영록 KB금융 회장에게 날을 세웠다. 김 의원은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했을 당시, 임 회장이 KB금융의 고객정보관리 책임자 아니었느냐”며 “그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신제윤 위원장에게 “(임 회장이 당시 고객정보관리 책임자였던 만큼, 그에게) 법적 책임이 있지 않느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신 위원장은 “금감원 검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그 결과가 나와야 확답할 수 있다”고 답했다.

    김기준(민주당·비례대표) 의원 역시 임 회장 책임론을 거론했다. 그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계열사 사장들에게 사표를 받아내면서, 왜 자신은 책임을 지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사실상 임 회장에게 사퇴 압박을 가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의원들은 임 회장의 말을 중간에 자르거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호통을 치는 등 사실상 의도적으로 답변을 무시, 회피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증인에 대한 호통도 이어졌다. 

    강기정(민주당·광주 북구갑) 의원은 증인으로 출석한 KCB 박 모 차장과 광고대행업체 조 모 씨의 복장을 문제 삼았다. 이들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얼굴을 공개하고 조사에 임할 의향은 없느냐. 그런 식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임할 거면 무엇하러 여기 나왔느냐”고 호통 친 것이다.

    김영주(민주당·서울 영등포갑) 의원도 광고대행업체 조 모 씨에게 “귀하의 직업이 광고기획인가”라고 물은 후, “광고기획을 하는데 왜 개인정보가 필요한가”라고 호통쳤다.

    이처럼 책임 묻기 위주의 ‘호통 신문(訊問)’이 계속 이어졌으나, 대책 마련과 재발 방지를 위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치권에 정통한 한 인사는 “국회의원들의 관심사는 어떻게든 국민에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알리는 것”이라며 “차근차근 대책 마련을 논의하기보다는 증인에게 대성일갈하는 것이 국민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기 때문에 이 같은 호통 신문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시중은행 실무자는 “증인들 불러서 나무란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심도 깊은 대책을 논의하는 모습이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 ▲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KCB 박 모 차장과 광고대행업체 조 모 씨.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