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재처방 문의 빗발, 약국가 업무 마비… "정부가 책임 떠넘겨"의협·약사회 등 "규제 완화 원인" 질타… 제2 발사르탄 사태 우려
  • #직장인 최모씨는 식약처가 발암물질 성분이 함유된 고혈압 치료제의 제품 리스트를 추가 발표하자 분통을 터뜨렸다. 수십년간 고혈압 치료제를 복용중인 아버지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혹시라도 뉴스를 보지 못하셨을 아버지께 급히 전화드려 약봉지를 들고 가까운 약국으로 빨리 가시라고 했다"며 "병을 치료하려고 먹는 약이 다름아닌 암을 유발한다니 말이 되는 소리냐"고 말했다.

    #동작구에서 약국을 운영 중인 이모씨는 쉴새없이 울리는 전화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고혈압 치료제 재처방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어서다. 고혈압 치료제를 복용하는 환자들이 대부분 노년층이다 보니 인터넷에서 제품 리스트를 확인하기 보다 약국으로 직접 문의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약사는 "정부가 발표만 하고 모든 뒷처리는 약사들에게 떠넘기는 것과 다름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식약처가 지난달에 이어 또 다시 발사르탄 함유 고혈압 치료제의 추가 판매중단을 발표하면서, 환자들은 혼란에 빠졌고 약국은 마비 상태다.

    '고혈압약 발암물질 리스트'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라있고 약국에는 이를 문의하는 환자들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제품은 대봉엘에스가 중국 주하이 룬두사 원료를 수입·정제한 22개사 59개 품목이다.

    최근 3년간 국내 전체 발사르탄 원료의약품 시장에서 대봉엘에스 발사르탄의 비중은 약 3.5%이며, 이번에 판매 중단된 59개 품목 생산량은 전체 발사르탄 완제의약품의 약 10.7%에 해당한다.

    해당 의약품을 복용 중인 환자 수는 총 18만1286명(8월6일 0시 기준)이다.

    결국 18만명 이상의 환자들이 약국이나 병원 등 의료기관에 들러 다른 치료제로 재처방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식약처는 환자부담감 없이 의료기관을 방문해 재처방 받을수 있다고 발표했지만 막상 해당 환자들은 재처방에 대한 불편함은 물론 '암 유발'이라는 단어에 대한 공포감에 휩싸였다.

    실제로 식약처 발표에 따르면 국내 허가된 제품 가운데 최고 용량인 320mg으로 3년(제지앙 화하이사 원료의약품의 제조공정 변경허가를 받은 2015년 9월 이후) 동안 복용한 경우, 자연발생적인 발암가능성에 더해 1만1800명 중 1명이 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1만명 중의 1명이 내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의 원인이다. 이는 환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환자들에게 약을 처방한 의사들도 뿔이 났다.

    대한의사협회는 "고혈압 환자들을 대상으로 과연 어떤 약을 믿고 처방을 해야 할지에 대한 일선 의료기관의 혼란이 야기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책임 있는 대책 마련이 없는 점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정부는 관련 내용을 대대적으로 국민에게 안내하고, 불안감을 해소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약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제품 리스트 확인 전 약국으로 전화하거나 직접 약봉지를 들고오는 환자들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가 모든 책임을 약국에만 떠넘긴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서울시약사회는 이번 사태를 '의약품 규제 완화가 부른 참사'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약사회는 "고혈압치료제를 복용하는 환자들은 약국에 무조건 문의할 수밖에 없고, 약국은 모든 원망과 질책을 감당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더구나 한달사이 발사르탄 함유 고혈압 치료제의 판매중단이 또 이뤄지면서 재조제를 반복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지적이다.

    서울시약사회는 "약국에서는 재교환에 따른 재조제로 본의 아니게 같은 업무를 반복하게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며 "보건당국은 약국 현장의 이러한 고충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재조제에 들어가는 행위에 대한 보상체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발사르탄 사태가 앞으로도 재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중국산 원료를 사용하는 복제약은 고혈압 치료제 뿐만이 아닌데다 이번에 문제가 된 발사르탄과 같은 환경의 제조공정을 사용했다면 발암가능물질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의 검출은 다른 계열의 '사르탄' 성분에서도 검출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의협, 약사회도 지적하듯 이번 사태는 복제약 심사·허가 과정의 규제 완화 등 근본적인 구조문제에 있다"며 "발사르탄 사태가 시작에 불과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빠른 대책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