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격 못하는 신고리 4호기… 업무공백 속출 최연혜 의원 "제 2의 강정민 원천 차단해야"
  • ▲ 강정민 전 원자력안전위원장은 국회 국정감사 마지막날인 지난달 29일 돌연 자리에서 물러났다. ⓒ 뉴데일리
    ▲ 강정민 전 원자력안전위원장은 국회 국정감사 마지막날인 지난달 29일 돌연 자리에서 물러났다. ⓒ 뉴데일리
    강정민 전 원자력안전위원장은 국회 국정감사 마지막날인 지난달 29일 돌연 자리에서 물러났다. 원안위는 "일신상의 사유로 사표를 제출해 수리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퇴의 진짜 원인은 따로 있었다. 야당 의원들이 제기한 '결격사유'에 발목이 잡혔다. 강 전 위원장은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2015년 2월 원자력 연구원 사업에 참여했다. 이 사업을 통해 연구비 674만원을 받았다.

    원자력 안전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최근 3년 이내 원자력 이용자 및 단체의 사업에 관여한 이들은 위원을 사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올 7월에는 원안위 비상임위원 4인이 역시 원자력연구원으로부터 위탁연구과제에 참여해 7억여원의 연구개발비를 받은 사실이 감사원에 적발돼 모두 물러났다. 

    이로써 원전 안전 정책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원안위에는 총 9명의 위원 중 현재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사무처장과 비상임위원 3인만 남았다. 신고리 4호기의 운영허가, 라돈사태, 에너지수급 논란 등 원자력 안전을 포함한 관련 정책 추진에 차질이 예상된다. 


    ◇ 문재인 정부, 非전문가 코드인사 실패 

    강 전 위원장은 애초 임명단계부터 코드인사 논란이 일었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 6호기 공론화 과정서 탈원전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인물로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원과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초빙교수를 지냈다. 

    특히 임명될 당시에는 미국 천연자원보호위원회(NRDC) 선임연구원을 맡고 있었는데 이곳은 국제 비영리 환경단체다. 또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과정서는 건설중단쪽 패널로 참가해 체르노빌, 후쿠시마 등 원전사고의 피해를 강조, 탈원전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당시 원자력업계에서는 탈원전으로 치우친 인사가 원자력안전위원장의 업무를 수행할 지를 두고 논란이 들끓었다. 동시에 '코드'만 쫓다 원안위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쏟아졌다. 

    급기야 강 전 위원장은 자신의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결격사유에 걸려 스스로 퇴진했다. 청와대의 인사검증 과정이 부실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청와대는 강 전 위원장에 징계 대신 재빨리 사표를 수리하는 쪽을 택했다. 국감 당일날 차관급 인사가 사퇴하자, 청와대가 즉각 사표를 수리한 것은 이례적이다. 

    원안위법은 원전업계와 유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강력한 결격사유 조항을 갖고 있다. 하지만 위원장, 비상임위원 4명이 줄줄이 같은 사안으로 사퇴할만큼 유착은 만연한 상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은 최근 원자력안전위원 중 비상임위원이 형법을 위반할 때 공무원에 준하는 벌칙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원안위와 구성이 비슷한 공정거래위원회나, 국민권익위원회 등은 민간 신분의 비상임위원 모두 공무원 의제 규정을 받는다. 


    ◇ 출격 못하는 신고리 4호기… 업무공백 多 

    현재 원안위에는 위원장 직무대행과 비상임위원 3인만 남았다. 엄재식 원안위 사무처장(직무대행)을 비롯해 김호철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한은미 전남대 화학공학 교수,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원전특위 위원장 등이다. 

    사실상 원자력 관련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은 멈춘 상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신고리 4호기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지난달 원안위에 신고리 4호기 성능이 기술 기준에 적합하다는 결과를 보고했다. 원안위가 전체회의를 열고 운영허가를 내면 출력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전체회의는 요원하다. 원안위법에 따르면 위원회 회의는 2인 이상의 요구가 있을때 위원장이 소집하는 것으로 현재 4인만으로 회의구성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원전 운영 허가와 같은 중요 사안을 위원장 없이 결정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새 원안위원장 인선 시점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문재인정부의 경제부총리 및 청와대 정책실장 교체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중폭 이상의 개각 가능성이 나오고 있으나 차관급인 원안위원장이 여기에 포함될 지는 미지수다. 

    공석인 비상임위원 4인의 선임도 갈길이 멀다. 원안위는 국회에 4인 추천을 요청해 여야가 각각 2인씩 추천할 전망이다. 다만 국회가 예산시즌에 돌입, 471조원의 샅바싸움을 벌이는 상황에서 연내에 인선을 단행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 원안위법에 인선기간이 명시되지 않은 점도 원안위원 공백의 장기화를 부추기고 있다. 

    현재 원안위 내에 원전 전문가는 남아있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회원전수출포럼과 원자력정책연대는 새 원안위원장 및 원안위원은 전문가로 구성돼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남아있는 위원들의 원자력 기초지식이 없어 원안위 회의가 이들의 과외시키는 '학원'이 됐다"고 비판했다. 

    자유한국당 최연혜 의원은 원안위 위원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15년 이상 원자력 안전 분야 경력을 가진 사람을 원안위 위원으로 임명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최 의원은 "이번 개정안을 통해 제2의 강정민 사례를 원천 차단하고, 앞으로 원안위가 원전 안전문제 만큼은 객관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독립적인 규제기관이 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