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정부, 엘리엇에 1300억원 배상"… "판정 취소 신청해야"선진국에 유리한 제도… "사법주권 침해 및 경제-산업계 위축"ISDS 단심제로 결론… 공정성 및 신뢰성 지속적으로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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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의 국제투자분쟁 해결 절차(ISDS)에서 우리나라 정부가 일부 패소하면서 ISDS 제도에 대한 반발심이 높아지고 있다. 

    법조계는 중앙정부나 공공기관 등 전 영역에 걸쳐 소송이 진행되면서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 경제·산업계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배상해야 되는 비용은 국민들 혈세로 물어줘야 하는 만큼 국부유출에 대한 우려까지 나온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엘리엇 사건 중재 판정부는 지난 20일 엘리엇매니지먼트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약 690억원)와 법률비용 2890만달러(약 372억원), 지연 이자 등 총 130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이번에 결정된 배상액은 당초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요구한 7억7천만달러(약 9천925억3천만 원)의 약 7%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법조계에서는 단 한번의 판정이 수척억원대 혈세 낭비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정부가 나서 불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ISDS는 외국인 투자자가 어떤 나라에서 부당한 대우나 정책 때문에 손해를 입었을 때 국제 분쟁을 제기해 구제받을 수 있는 절차다. 

    ISDS는 중재인 3명이 중재판정부를 구성해 천문학적 액수의 배상 문제를 판정한다. 국제법을 기준으로 최종 판단하지만 항소가 불가능한 단심제로 결론을 내린다. 단 한번의 판정으로 확정되는 것이다. 그간 ISDS 제도를 두고 지속적으로 공정성과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판정 취소가 가능한 만큼 이를 통해 불복 절차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ISDS 중재 결과가 나오면 취소 사유가 있는 경우 취소 신청을 할 수 있다. 취소 신청을 하게 되면 3명의 취소위원이 새로 선임돼 판단하게 된다. 통상적으로 1년 이상 소요된다.

    정부가 취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있다. 영국중재법 67조에 규정된 중재 취소사유인 '실체적 관할 위반' 조항이 대표적이다. 중재 판정의 핵심 쟁점은 투자유치국의 조치가 정당한 정책이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불공정한 차별이었는지 여부인데, 이번 사안은 '정부의 조치'가 아니다.

    엘리엇은 삼성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불법 뇌물을 주고, 이를 대가로 옛 삼성물산의 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것에 대해 ISDS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상법상 특정 주주의 주주권 행사가 다른 주주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발생시킬 수 없으며, 삼성물산의 주주인 엘리엇이 다른 주주인 국민연금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것도 불가능하다. 즉 중재판정부의 관할권이 없는 사안이므로 중재 판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ISDS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ISDS는 역사적으로 선진국 투자자가 후진국에 투자해 문제가 발생한 경우 이를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로 선진국에 유리하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실제 전세계 ISDS 현황을 보면 선진국 대 선진국 소송은 드물고 선진국 기업 또는 펀드가 중진국 또는 후진국 정부를 대상으로 중재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까지 총 10건의 중재 요구가 제기됐고 누적 요구 금액은 13조원에 달한다. 

    이와 관련 법무부는 판정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법무부는 "국민의 세금이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대리 로펌 및 전문가와 함께 판정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대응하겠다"며 "국민 알권리 보장 및 절차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판정문 등 본 사건 관련 정보를 최대한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