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부담에… 수출 장수기업 안 보여중대재해법 강화에… "현장은 폐업공포"노란봉투법 재점화… 기업지원법은 캐비닛
  •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서성진 삼성전자 회장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서성진 삼성전자 회장
    故 이건희 회장의 주식 18조2251억원에 대한 상속세는 10조5905억원이다. 만약 삼성그룹이 미국 기업이었다면 상속세는 7조2747억원으로 줄어든다. 독일이라면 5조4592억원으로 절반 수준이 된다. 영국이라면 3조6399억원으로 더 떨어진다. 세계에서 상속세율이 가장 높은 일본의 과세체계를 대입해도 10조96억원으로 한국보다 5809억원 적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지분상속에 필요한 세금은 2조5000억원에 달한다. 현대차가 울산에 짓는 전기차 공장 건설비용(2조원)을 상회한다. 아직 정 명예회장의 건강에 이상신호는 없다지만, 85세 고령이라는 점에서 파생된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은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올리며 승승장구하는 현대차에 드리운 악재다.

    재벌기업들도 버거운 상속세는 중소기업들에게는 악몽 그 자체다. 상당수 강소기업들이 가업승계보다 인수합병(M&A)를 택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밀폐용기로 유명한 락앤락이나 세계 1위 콘돔 생산업체 유니더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손톱깎이 생산으로 세계 1위 매출을 기록했던 쓰리세븐(777)은 상속세 납부를 위해 지분을 전량 매각한 후 적자기업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한국무역협회(KITA)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기준 수출 업력 30년 이상인 기업의 최근 5개년(2015~2019년) 연평균 수출 실적은 1473만달러로 10년 미만 기업 평균 실적(94만달러)보다 15.7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래된 기업일수록 수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얘기다. 그러나 업력 30년 이상을 유지하기 위한 지분상속은 풀기 어려운 숙제다. 무협이 조사한 설문에도 가업 승계의 가장 큰 걸림돌로 조세부담(74.3%)을 꼽았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기업 업력이 곧 수출 경쟁력’이라는 생각으로 무역업계의 가업 상속을 적극 지원해 수출 장수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했다.
  • ▲ OECD 주요국 상속세·소득세 최고세율 및 GDP 대비 상속·증여세 비중.%)ⓒ한국경제연구원
    ▲ OECD 주요국 상속세·소득세 최고세율 및 GDP 대비 상속·증여세 비중.%)ⓒ한국경제연구원
    해마다 강해지는 중대재해법… 곳곳이 사법리스크

    지난달부터 5인 이상 전체 사업장으로 확대된 중대재해처벌법도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이 역시 대기업보다 우리 산업계를 떠받치는 뿌리기업들에게 더 큰 위험으로 다가온다. 자금이 부족하니 전문인력을 채우기 어렵고, 법기준이 모호하니 어디까지 대비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 892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0%가 "중대재해처벌법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대비하지 못한 이유로는 전문인력 부족(35.4%), 예산 부족(27.4%), 의무 이해 어려움(22.8%)이 꼽혔다.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은 "중소기업 체감경기가 급속하게 얼어붙고 있는데 형사처벌에 따른 폐업 공포를 더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처사"라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사고율은 낮춘 것도 아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는 874명으로 전년보다 오히려 46명 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KBS와 특별대담에서 "법시행 이후 지금까지는 실증적으로 긍정적인 결과가 없었다"며 "처벌강화와 책임범위를 넓히는게 실제 사고를 줄이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면밀히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법 역시 자동차, 철강, 조선, 화학 등 우리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뿌리기업들에게 더 치명적이란 점에서 우려가 크다. 한국경제인협회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1~3차 벤더사들이 공급하는 핵심 부품들이 하나라도 빠지면 전체 벤더사들이 동시에 납품에 어려움을 겪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 ▲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뉴데일리DB
    ▲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뉴데일리DB
    노란봉투법 재점화? 산업계 "현장 혼란 커질 것"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무산된 노동조합법 개정안(노란봉투법)도 다시 불씨를 살리고 있다.

    서울고법 행정 6-3부는 지난달 CJ대한통운이 특수고용직인 택배기사노조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동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직접 고용하지 않은 개인사업자 신분인 택배 기사들의 단체교섭권을 사측이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2000여개 대리점과 계약을 맺은 2만여명의 택배 기사에 대한 처우를 CJ대한통운이 일률적으로 협상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우려된다.

    만약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원청이 수많은 하청 노조와 일일이 임단협을 해야 한다. 이는 노란봉투법 2조에 담긴 사용자 정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 폐기된 노동조합법 개정안 2조에는 사용자를 근로자의 근로 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채용 및 해고에 대한 권한도 없이 처우 개선 의무만 씌우는 셈이다.

    재계에선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국내 대부분 기업 노사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번 판결로 산업 현장은 하청 노조의 원청 기업에 대한 교섭 요구와 파업으로 몸살을 앓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 기관도 청소 노동자 하청 노조와 직접 단체교섭에 나서야할 수도 있다"고 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에 저성장 흐름이 지속되는 등 전반적 경기 상황이 녹록지 않다"며 "기업 활력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킬러규제 관련법안, 지방투자촉진법 등이 최우선적으로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의 적극적인 입법 지원을 절실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