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상생금융 배경은 '원죄론'공적자금 투입으로 기사회생한 금융사들에 책임 지라는 의미 금융사들, 내심 반발하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정부와 금융권의 황금률 찾기가 진행될 전망
  •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 네번째,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발표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 네번째,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발표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은 흐름입니다. 막힌 데 없이 구석구석 흘러가야 합니다. '이승제의 금융通'은 국내 금융권에서 일어나는 돈과 정보의 흐름을 좇아가려는 시도입니다. 딱딱한 형식주의를 벗어나 금융 속에서 자유롭게 노닐고자 합니다.  

     
    상생금융은 금융권 입장에서 '역(逆)계륵'이다. 따르면 주머니에서 뭉칫돈이 빠져나가고, 안 받자니 후환이 두렵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다" "과도한 개입이다"는 말은 소리 없는 아우성일 뿐이다. 

    #'원죄' 

    요즘 금융권 특히 금융그룹들의 처지를 압축해주는 키워드 중 하나일 것이다. 금융권 인사들에게 이를 말하면, 표정은 뚱해지지만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틀렸다"고 하기엔 양심이 찔리고 "맞아"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돈이 걸렸다. 

    과거 어려운 시절, 다른 사람으로부터 결정적인 도움을 받은 사람, 그리고 지금 넉넉하다 못해 당당해진 사람은 대체로 '미래'라는 단어를 즐겨 입에 올린다.  과거를 잊을수록, 그것이 희미해질수록 현재 아우라는 커진다. 누구처럼 서민 출신 이미지를 강조하며, '개천에서 용 났다'고 떠벌리는 정치인이 아닌 바에야. 

    정부는 과거 2000년대 전후에 부실 기업-금융사를 대상으로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과 금융회사의 부실채권 정리를 위해 총 168조7000억원가량을 쏟아부었다. 일련의 조치가 없었다면, 숱한 금융회사들이 무너졌고 무수한 기업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졌을 것이다. 지금 국내 금융권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대형 금융그룹들이나 금융사들은 대부분 그 후손들이다. 

    이것이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상생금융 밑에 깔린 주춧돌이다. 막대한 세금 덕에 살아남았으니, 이제 그 값을 치르라는 것이다. 

    정부 정책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는 큰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며 “막대한 부를 쌓고 있는 금융사들이 '원죄'의 값을 단 한번도 치른 적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금융사들이 과거의 책임을 통감하고 지금처럼 어려울 때,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기본 입장일 것"이라고 했다. 
      
    #'역사관 대 현실론'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2003년 카드 사태 때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1국장을 맡고 있었는데, 당시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금융사들의 모럴 해저드와 잘못된 경영으로 국가 경제와 국민들의 삶이 피폐해지지 않도록 다잡는 게 관의 핵심 역할이라는 얘기였다. 이로써 그는 '관치(官治)의 화신'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은 공공재"라는 인식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월 금융위원회 신년 업무보고에서 “은행은 민영화 기업이지만 자체가 하나의 공공재"라고 했다.  

    이어 "자유로운 설립 대신 인허가 형태로 운영 중이고, 과거 위기 시에 은행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구조조정을 했던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투명한 거버넌스(지배구조)를 구성하는 데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것이 관치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못박았다. 

    손발이 묶인 금융권은 속앓이 중이다. 내심 글로벌 스탠더드, 사기업에 대한 횡포 등을 되뇌지만 입밖으로 내뱉지 못한다. 그들이 과거 국민 세금으로 기사회생했다는 것은 지울 수 없는 팩트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나서서 우리에게 줬을 뿐, 떼먹은 것은 아니다'는 말은 궁색하다 못해 옹졸하다. 

    그나마 '주주 이익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항변은 어느 정도 기댈 만하다. 정부에서도 '밸류업 프로그램'에서 주주환원 강화를 강력 권고하고 있지 않은가. 

    금융권 일각에선 국가재정이 악화된 상태에서 세금으로 감당해야 할 영역을 사기업에 떠넘기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원죄를 짊어진 자의 주장이어서 결국 '반대를 위한 반대'에 그친다.  

    상생금융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고, 금융사들의 불만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누군가는 과거를 잊지 않고, 다른 누군가는 시간 뒤로 숨으려 한다. 전자는 윤 대통령의 역사관이고, 후자는 금융사들의 현실론이다. 

    또 다시 양비론에 가까워지겠지만, 결국 핵심은 원죄와 글로벌 스탠더드 사이에서 어떤 황금률을 마련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한쪽에서 찍어 누르고 다른 편이 마지못해 엉거주춤 뒤따르는 모습으론 결코 근본적인 타협이나 해결책에 다가설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