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금융통' 정형진 골드만삭스 한국 대표, 대표이사 내정해외실적 반등, 인니법인 연착륙 등 그룹 캡티브 역할 강화 기대'임추위 추천' 목진원 현 대표 결정 뒤집어…ESG 강화 트렌 역행
  • ▲ 정형진 현대캐피탈 대표이사 내정자. ⓒ현대자동차그룹
    ▲ 정형진 현대캐피탈 대표이사 내정자.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캐피탈이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출신의 '해외 금융통'을 CEO(최고경영자)로 영입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전속금융사(캡티브)의 지위를 굳히는 것은 물론 금융전문성 강화를 통한 글로벌 사업 확장을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거버넌스 측면의 리스크가 불거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현대캐피탈은 정형진 골드만삭스 한국 대표를 신임 대표이사로 내정했다. 그는 1999년 골드만삭스 서울지점 근무를 시작으로 2004년 홍콩 지점을 거쳐 2007년부터 서울지점에서 근무했다. 2014년부터 IB(기업금융)부문 공동대표를 맡았고, 2021년에는 한국 대표를 맡았다.

    정형진 대표이사 내정자는 골드만삭스에서 근무하며 국내·외 주요 기업들의 투자·금융자문을 수행하고, 주요 대형 거래 성사를 이끄는 등 금융업 전반에서 풍부한 업무 경험과 네트워크를 보유한 글로벌 금융 전문가로 알려졌다.

    정 내정자는 이를 기반으로 현대캐피탈의 글로벌 진출을 가속하고 금융 전문성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등 완성차 판매 및 금융간 시너지 제고에 박차를 가하며 회사를 이끌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캐피탈 측은 "신규 대표 영입을 통해 리스, 구독, 중고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완성차 판매 확대를 적극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신전문금융회사채 금리 급등 등 불확실한 시장 상황에 신임 대표의 전문성이 자금 유동성 확보 등 대내외 리스크 관리뿐만 아니라 현지 시장 내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를 통한 글로벌 신규 사업 확장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해외실적이 악화한 만큼 정 내정자의 글로벌 사업 확장에 대한 역할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캐피탈은 현대차그룹의 전속금융사이지만, 현대차에 비해 해외 성장세가 더딘 편이다. 현대차가 해외에서 판매되면 현대캐피탈이 곧바로 구매자에게 할부와 리스를 지원해야 하는 구조임에도 현대캐피탈의 부진으로 '차량 판매~금융 지원'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이 잘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제 현대캐피탈 글로벌 사업은 미국이나 중국, 영국 등 핵심 해외법인에서 실적 하락을 겪고 있다. 이들 세 곳 해외법인의 2022년 기준 세전이익은 △미국법인(HCA) 8492억원 △중국법인(BHAF) 1123억원 △영국법인(HCUK) 1260억원을 기록했다. 미국법인은 전년대비 37.5%, 중국법인 11%, 영국법인은 13.7% 감소한 수치다.

    해외실적 회복은 물론 현대캐피탈이 추진 중인 인도네시아 독자법인 '현대캐피탈 인도네시아' 설립도 정 내정자의 경영능력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현대차의 동남아시아 생산과 판매 거점이 있어 현대차그룹의 전략적 요충지로 평가된다. 독자법인이 출범하게 되면 현대캐피탈은 전세계 14개국에 총 19개 법인망(16개 법인, 2개 지점)을 갖추게 된다.

    이과 함께 비자동차부문에 대한 기대도 있다. 전체 상품자산 규모는 비슷한 수준이지만, 자동차금융 자산은 2022년 말 26조원에서 지난해 3분기 27조원으로 6.3% 증가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일시적으로 확대됐던 비자동차자산부문은 같은 기간 7조2104억원에서 6조678억원 수준으로 다시 축소된 상황이다.

    캐피탈업계 한 관계자는 "새로 내정된 대표는 이전에 캐피탈 회사에서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상당한 네임밸류와 경력을 갖고 있다"며 "해외시장 공략이라는 확고한 목표를 바탕으로 현대차그룹에서 낙점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 현대캐피탈. 사진=권창회 기자
    ▲ 현대캐피탈. 사진=권창회 기자
    정 내정자에게 마련된 환경은 우호적인 편이다. 최근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현대캐피탈의 신용등급을 줄줄이 상향 조정하고 나섰다. 이에 현대캐피탈의 조달 경쟁력 역시 이전보다 제고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무디스(Moody's)는 현대캐피탈의 신용등급을 기존 'Baa1(긍정적)'에서 'A3(안정적)'로 상향했다. 이는 지난해 초 무디스가 신용등급 전망을 상향한 이후 1년 만이며 약 12년 만의 등급 상향이다.

    이달에는 피치(Fitch)가 기업 신용등급을 기존 'BBB+(긍정적)'에서 'A-(안정적)'로 상향 조정했다. 세계 3대 신평사 중 두 곳의 신용등급 상승이라는 쾌거를 이룬 셈이다.

    현대캐피탈 측은 "무디스에 이어 피치 신용등급이 글로벌 A등급으로 상향된 것은 현대차그룹의 핵심 금융사로서의 독보적인 역할이 빛난 결과"라며 "시장변동성이 큰 상황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펀더멘탈을 대외적으로 증명했다"고 설명했다.

    ◇임추위 결정 뒤엎는 이례적 결정…거버넌스 리스크 불거질 수도

    앞서 현대캐피탈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대표이사 후보자로 목진원 대표이사를 단독 추천했다. 임추위 결정대로라면 목 대표가 연임에 성공해 주주총회에서 대표로 정식 선임돼야 한다. 하지만 발표 나흘 만에 정형진 대표가 내정됐다. 임추위 추천 후보에 없던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일각에서는 계열분리 후 첫 대표이사 인사에서 임추위 추천을 뒤집는 이례적인 결정인 만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차기 대표 후보 추천까지 완료한 상황에서 그룹 결정으로 대표가 바뀌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표 내정도 현대캐피탈이 아니라 현대차그룹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현대캐피탈은 현대가 사위인 정태영 부회장이 2021년 대표에서 물러난 이후 현대차그룹 체제로 들어갔다. 현대차그룹의 직할경영 편입 이후 현대차와 기아의 국내외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캡티브 금융 체제를 더욱 공고히 구축해나가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기업들이 ESG 경영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거버넌스 측면에서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계열사 수장 인사에 총수의 뜻이 반영될 수 있지만, 표면적으로나마 이사회 중심 경영이 중시되는 최근 경향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 내정자는 여전히 골드만삭스 소속이다. 대표 업무의 시작도 퇴사 절차가 마무리되는 6월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대표 업무는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목진원 대표가 정 내정자의 공식 취임 전까지 맡을 예정이다. 임기를 마무리하는 쪽도, 새로 시작하는 쪽도 모두 불편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수 년간 골드만삭스의 글로벌 파트너 승진이 무산되자 주요 고객이던 현대차그룹 계열사로 자리를 옮긴 것이라는 후문도 있다. 정 내정자는 골드만삭스 근무 기간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보스톤다이내믹스 인수 등을 자문하면서 현대차그룹과 신뢰관계를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