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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이 하나가 돼 추격해 오는 형국이 너무 위협적입니다."
29일 만난 국내 굴지의 IT(정보기술) 기업 임원이 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IT 분야에서 글로벌 강자로 위상을 굳힌 한국 업체들이 최근 중국 대륙에서 '차이완(Chaiwan·China와 Taiwan의 합성어)'으로 상징되는 양국 기업들의 공세로 판판이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업체가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LCD(액정표시장치) 패널이 대표적이다. 작년 1분기(1~3월) 한국 업체들의 중국 내 점유율은 46.2%로 2·3위인 대만(35%)과 중국(13%)을 합친 것과 비슷했으나, 올 1분기에는 29.7%로 2위로 급락했다. 1위에 오른 대만 업체들의 점유율은 56.5%로 격차가 배 가까이 벌어졌다.
한 관계자는 "하이센스 등 중국 8대 TV 메이커들이 한국산 패널 대신 CMO 등 대만 기업 제품을 일제히 갖다 쓰기 때문"이라며 "양안 간 'IT 국공(國共)합작'의 직격탄을 한국이 맞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대만 CMO가 올 1분기 중국 토종 TV업체에 공급한 LCD 패널은 228만대로 1년 전보다 5배 이상 폭증했다. LCD TV 판매도 마찬가지이다. 삼성전자는 세계 TV시장 1위 메이커지만 올 1분기 중국 시장에서 9위로 추락하는 치욕을 맛봤다. 반대로 중국 로컬 업체인 하이센스는 같은 기간 94만대의 LCD TV를 팔아 판매대수와 매출액 모두 1위를 차지했다. 2~4위도 스카이워쓰·TCL·콩카 등 중국 업체들이 휩쓸었다.
한국 기업들의 이런 패퇴는 중국 현지 업체들의 저가(低價) 공세에다, 양안 관계 급진전에 따른 '바이 차이나(Buy China·중국 및 대만산 제품 사기)' 열풍이 겹쳐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올 초부터 중국 정부가 내수 활성화 차원에서 시작한 '가전하향(家電下鄕·농촌 지역 거주자가 가전제품을 구입할 때 13%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 정책도 보조금 지급 대상을 저가품으로 제한해 중국과 대만 업체들만 반사이익을 누리는 효과를 낳고 있다.
양안 '경제 연합전선' 구축에 따른 파장은 증권 시장에도 투영되고 있다. 이달 들어 지난 28일까지 대만 가권(加權)지수는 15% 정도 급등했지만, 한국 코스피 지수는 1.68% 상승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시가총액 규모가 비슷하고 IT 비중이 높은 닮은꼴인 두 나라의 증시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것은 경제 펀더멘털보다는 대외적 요인이 크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북한 리스크(위험)로 인해 브레이크가 걸린 한국과 달리, 대만은 중국과의 관계 호전으로 유망 시장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양안 간 '경제 밀월(蜜月)'이 한층 공고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 상무부는 이달 31일 분단 60년 만에 처음 대만에 대규모 상품 구매사절단 파견을 시작으로 올 9월까지 7~9차례 사절단을 보내 100억달러의 대만 제품을 살 것이라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사절단은 대만 주요 도시를 돌며 가전하향정책 등 중국 내수확대정책 활용방안도 설명할 예정이다. 이에 대만은 휴대폰·자동차·호텔·항만 등 101개 부문에서 중국 자본의 대만 투자 허용으로 화답할 방침이다. 지난 26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한 우보슝(吳伯雄) 대만 국민당 주석은 올 하반기에 자유무역협정(FTA)에 해당하는 '경제협력구축협정'(ECFA) 협상을 중국과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이렇게 되면 세계 최대의 상품시장으로 부상하는 중국에서 대만 기업들이 승승장구하고, 한국 업체들은 더 밀려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양안 간 경제 밀착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대책으로 바라볼 수만 없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