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4일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리먼브러더스 붕괴 1주년을 맞아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를 방문해 직격탄을 날렸다.
    "책임감의 결여가 위기를 불렀다", "과거의 무모하고 방만한 행동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정부의 금융개혁에 저항하지 말고 협력하라" 는 등 올해 초 취임 직후 언급했던 월가 책임론과 비슷한 맥락이긴 했지만, 최근 위기가 진정되고 있는 국면에서 월가 한복판에 와서 던진 메시지로는 무척 강경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연설한 페더럴홀은 과거 미합중국 창업 1세대들이 국가 경제에 대한 연방정부의 관여를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리먼브러더스 붕괴 이후 미 연방정부는 금융과 자동차 산업등을 구제하기 위해 경기 부양자금을 쏟아 부으면서 2차 대전 이후 역대 미국 정부 가운데 가장 많은 재정 지출을 부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전체 국가경제에서 연방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26%로 높아졌다.
    새로 집을 사는 미국인 10명 중 9명이 연방 정부의 모기지 지원을 받고 있고, GM의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은 곧 정부가 60%의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의 차를 사는 것을 의미하며, AIG 보험에 드는 것 역시 정부 지분이 80% 인 회사의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됐다.
    그 어느 때보다 연방정부의 역할이 강화된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정부가 계속해서 개입할 필요가 있지만, 필요성은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의 강력한 입김은 수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곧바로 금융기관이나 자동차.보험 등에 대한 정부의 감독 강화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현재 `건보 개혁'에 발목이 잡힌 미 의회가 금융개혁 패키지 법안에 대한 심의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지만,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당인 민주당은 내년 초께 법안을 통과시킬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안이 통과되면 FDIC(연방예금보험공사)는 대마불사의 신화에 사로잡혀 있는 대형 금융회사들의 파산 가능성에 대비해 사전에 이들을 폐쇄시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게 되고, 재무부는 신용부도스와프와 같은 파생상품 시장에 대한 보다 강력한 규제권한을 갖게 된다.
    그러나 개혁에 따른 저항도 만만치 않다. 보수 진영은 이번 주말 워싱턴에서 `큰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이들은 오바마 정부가 자유시장원칙에 근거한 자본주의를 해체시키려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월가 역시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다. AIG의 신임 CEO인 로버트 벤모시는 정부의 사업부문 매각 채근에 대해 "미친 사람들"이라고 비판하면서 사업부문을 염가처분할 계획이 없다고 공개 반발해 미 재무부와 충돌을 빚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불행히도 리먼 사태에서 교훈을 얻으려 하지 않고 이를 모른 체 하려는 금융기관들이 일부 있다"며 "이는 자신들 뿐 아니라 국가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월가의 개혁 저항세력들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날 연설에 대해 미국 주요 언론들은 새로운 정책이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지난 1년간 위기가 상당부분 진정됐음을 과시하면서 의회에 금융개혁안의 조기 통과를 촉구하는 장으로 삼기에는 충분했다고 평가했다.
    최근 건보 개혁 논쟁으로 인기가 시들해진 오바마 대통령은 "많은 기업들이 번영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민들에게 빚을 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며 "미국의 납세자들은 위기에 아무런 책임이 없으면서도 정부를 통해 금융산업을 안정시키는 어려운 일에 참여해 줬고, 여전히 구제금융의 무거운 부담과 실업과 주택 차압의 어려움 속에 신음하고 있다"며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데도 소홀하지 않았다.
    이날 페더럴 홀 연설에는 수백명의 월가 대형 금융회사 임원들과 연방 및 뉴욕주 상.하원 의원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등이 참석했다.
    뉴욕타임스는 "월스트리트는 이날 따뜻하게 대통령을 환대했지만, 연설이 박수로 중간에 끊어진 것은 딱 한 번 뿐이었다"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월가의 거리감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