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인들은 왜 스포츠에 열광하는가?

    엘리스 캐시모어(영국 스태퍼드셔 대학 교수)는 ‘스포츠, 그 열광의 사회학’에서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를 현대사회가 가지는 특성 때문이라고 규정했다. 현대사회의 삶이 예측 가능할 만큼 뻔해지다 보니 현대인들이 무언가 자극적이고 불가능한 영역에 몰입하는 경향이 바로 스포츠 열풍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스포츠학자들은 더 구체적으로 도전과 응징이라는 인간의 본성, 공정한 경쟁, 대리만족 등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도전과 응징이라는 원시성을 대리 체험하며 선수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는 쾌감이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스포츠를 스포츠답게 하는 대전제는 공정한 경쟁이다.

    현대인들이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 또는 팀이 이기든 지든, 스포츠를 축제처럼 즐기며 열광하는 것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공정한 게임 룰이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집권후반기 국정운영의 기치로 ‘공정한 사회’를 내세운 뒤 온 나라가 ‘공정한 사회 신드롬’에 빠진 느낌이다.

    청문회에서 드러난 각료 후보자들의 투기의혹, 위장 전입, 거짓 증언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별채용 논란으로 ‘공정’의 원칙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왔지만 오히려 대통령의 ‘공정한 사회’를 향한 의지는 더욱 공고해지는 듯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대구에서 열린 지역발전주간 개막행사에서 격려사를 통해 "어느 한 분야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공정한 사회가 이뤄져야 한다."며 "우리 경제를 다시 한 번 도약시키고 국민 모두가 골고루 잘 사는 선진일류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정한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일 신문지면 TV 인터넷을 타고 전해지는 우리 사회의 각종 비리와 병리현상을 추적해보면 그 뿌리는 결국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 관행으로 모아진다. 각료 후보자의 탈락, 각종 게이트들, 대기업 중소기업 갈등, 사회의 양극화, 교육의 파행, 비자금파문, 부당 내부거래, 검찰 스폰서 비리, 리베이트, 소기업의 몰락 등 문제의 원인은 대부분 공정하지 못한 관행에서 빚어진 것들이다. 총리 후보 구하기가 어려운 것도 후보자군에 포함될 만한 사람들의 삶의 공정성을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사회 발전의 최대 걸림돌이 도처에 만연한 불공정 관행이라는 이 대통령의 인식은 핵심을 제대로 짚은 것이며 국민들에게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처음 기치를 내건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공정한 사회’를 외치니 정치인 관료 기업인 할 것 없이 모두가 ‘공정한 사회’를 합창한다.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단기간에 베스트셀러가 되고 국회도서관 대출 순위에서도 상위권을 기록했다고 한다. 여 야가 상대를 공격하는 데도 공정이 무기로 등장한다. 한나라당이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공정사회 및 친서민 정책 관련 중점법안 40건을 선정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기치에 화답하는 듯한 ‘공정한 사회’ 합창에 많은 국민들은 진정성 절실성을 찾기 어렵다. 그동안 얼마나 불공정이 판을 쳤고 우리 사회가 얼마나 깊이 불공정 관행에 물들어 있었으며, 얼마나 불공정에 무감각했는가를 보여주는 슬픈 반증으로 보일 뿐이다.

    ‘공정한 사회’는 잠시 인기를 끌다 사라질 유행가가 아니다. 판을 벌였다 치울 전시행정도 아니다. 우리 국민이 행복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탄탄한 선진일류국가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토대다.

    아무리 세계 10위권 안팎의 수출대국 경제대국임을 자랑해봤자 공정한 사회를 지탱할 공정한 룰이 정립되지 않고선 제대로 된 국가로 설 수 없다.

    문제는 ‘공정한 사회’의 게임 규칙을 만드는 것이 어느 특정 스포츠의 게임 규칙을 만드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데 있다. 전체 국민과 경제주체들, 단체와 조직들, 국가를 망라한 게임 규칙을 만드는 일이 그렇게 쉽겠는가.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중차대한 과업에 임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 숙연해질 정도다.

    정부 당국자나 경제 주체들은 마지못해 유행가처럼 ‘공정한 사회’를 노래해선 안 된다. 법안 몇 개 만든다고 될 일도 아니다. 불공정 문제에 둔감했던 국민의 상당한 인내력과 배려심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공정한 사회’의 기초를 다질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업적이 어디 있겠는가.

    <방민준 /뉴데일리 부사장,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