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럽고 치사한 지역이기주의

                                                    양   동   안

     

    이명박 행정부가 전문가들로 구성된 동남권 신공항 입지평가위원회의 ‘부적절하다’는 평가를 수용하여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을 백지화한다는 결정을 내린 후 한나라당 소속 영남권 국회의원들이 나타내고 있는 행태를 보고 있으면, ‘저 사람들이 제 정신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한나라당의 영남권 국회의원들은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 백지화 결정에 대해 극도로 흥분된 태도를 보이면서 자기당의 지도자인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역사 앞에 책임을 지라”, “국민 앞에 사과하고 한나라당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매도하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 백지화에 대한 영남권 국회의원들의 ‘뚜껑이 열린 듯한’ 행동은 지난해 세종시 건설 계획을 수정하려는 행정부의 움직임에 반대하여 광란적 행동을 보이던 충청도 지역 국회의원들을 생각나게 만든다.

    당시 충청도 출신 국회의원들은 국가에 백해무익한 세종시 건설 계획 원안을 수정하는 것이 마치 나라를 망하게 만들고 부모를 죽이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헛소리들을 해대며 광적인 언행을 했다.

      국회의원은 명색이 전체 국민의 대표이다. 필자는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한나라당의 영남권 국회의원들이나 충청도 출신 국회의원들이 국가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나 국가안보를 위해서 그토록 흥분한 언행을 나타낸 것을 본 적이 없다.

    이 사람들은 북한이 천안함을 격침시켰을 때나 연평도를 포격했을 때도 그런 흥분된 언행을 하지 않았다.
    이명박 행정부 출범 직후 반(反)헌법세력이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쇠고기라는 당치 않은 주장을 하면서 대규모 폭력 집회를 개최하여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결정한 이명박 행정부를 퇴진시켜 헌법질서를 파괴하려고 획책할 때도 조금치도 흥분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명색이 지역민의 대표가 아닌 전체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들이 국가이익의 침해나 국가안보의 위협 및 헌법질서의 파괴 위기 등에 대해서는 그토록 뜨듯미지근하게 반응하면서, 자기 선거구가 속해 있는 지역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실성한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것은 참으로 보기 안 좋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이러한 꼴불견의 모습은 그들의 속물근성에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이익의 수호나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뜨듯미지근하게 행동하는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지역이익의 수호를 위해서는 실성한 사람처럼 흥분한 모습을 보이게 만드는 것은 선거구 유권자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더럽고 치사한 지역이기주의 심리이다.

    유권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 더럽고 치사한 심리에 호응하지 않으면 국회의원들은 다음번 선거에서 지역구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런 치사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국가이익을 위하는 일에는 정당이 대립하여 싸우지만 지역이익을 위해서는 초당적으로 광분하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의 선거공약들을 국가이익을 위해서 백지화한 것은 도덕적으로 대단히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선거공약 사업들을 공약한 바대로 이행하면 정치적으로 이익을 볼 것이다. 약속을 위반했다는 비난을 받지도 않을 것이고, 해당 지역의 주민들과 그 지역 토지소유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그런 정치적 이득을 거부하고,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였다’는 극단적인 비난까지 받아가면서,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약화되는 손실을 감수하면서 국익을 위해 그런 공약사업들을 백지화한 것이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심각한 국론분열로 인한 국익손상을 우려하여 자기의 최대 선거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건설 계획을 백지화 하고, 두고두고 국가에 피해를 초래할 행정수도 분할을 피하기 위해 세종시 건설 계획의 수정을 기도하고, 국익을 손상시킬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평가를 수용하여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국제비지니스 과학벨트 후보지를 전문가들의 객관적 평가에 맡겨 결정하도록 한 것 등은 결코 ‘역사 앞에 책임을 질 일’이나 ‘국민 앞에 사죄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그런 결정들을  ‘자기의 정치적 입지 약화를 감수하면서 국익을 위해 선택한’ 용기 있는 행동으로 평가할 것이다.

      대통령은 선거공약을 지키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자기의 선거공약이 국가이익에 반할 경우에는 선거공약을 과감히 폐기해야 한다.
    속물적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선거공약을 지키지 않는 것은 약속을 위반한 것이라고 무조건 비난한다.
    그러한 비난은 정치인에게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천적이고 절대적인 약속이 무엇인지를 모르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인은 국가이익을 위해서 봉사한다는 원천적이고 절대적인 약속을 하고 있다. 국가이익을 위해서 봉사하겠다는 약속은 선거공약보다 훨씬 우월한 약속이며 정치인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속이다. 그에 비하면 선거공약은 중요도가 한 참 낮은 하위 약속이다.

    우월한 약속과 하위의 약속이 마찰할 때 우월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위의 약속을 위반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이다. 우월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위의 약속을 위반한 것을 두고 약속을 위반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약속이행의 우선순위를 모르는 천박한 행위이다.

      물론 선거공약은 국가이익에 부합한 것만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 도덕적으로 나 지적으로 완벽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선거 때 표가 아쉬워서 국익에 부합하지 않은 공약을 할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사고력이 못 미쳐서 국익에 부합하지 않은 공약을 할 수도 있다.

    당선되고 나서 공약을 실천하려 했을 때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점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약을 이행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반역이다. 선거공약이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되어서 그 공약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진심으로 국민을 주인으로 모시는 찬양 받을 용기 있는 행동이다.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영남권과 충청권의 지역이익 제고사업을 국익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백지화하거나 변경하려고 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반발하여 광란적 언동을 하고 있는 해당지역의 국회의원들은 거울을 보면서 ‘내가 국익에 봉사하는 전체 국민의 대표가 맞냐?’라고 물어봐주기 바란다.

    그리고 지역구 유권자들의 더럽고 치사한 지역이기주의 심리에 호응하지 않고도 국회의원으로 생존할 수 있는 정치의 정도(正道)를 찾아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