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의 정치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한편으로는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서구식 민주주의는 중국에 맞지 않는다”면서 정치민주화에 대해 일정한 선을 긋고 있다. 그 대신 판웨이(潘維) 베이징대 교수 등 일부 지식인들은 근래 ‘협의제 민주주의’(‘협의형 독재체제’라고도 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은 ‘협의제 민주주의’를 ‘선거는 없지만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시민의 요구에 부응하며, 법의 구속을 받는 정부에 의해 정책이 만들어지는 체제’라고 설명한다.

       ‘메가트렌드’ 등으로 유명한 미국의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이를 ‘수직형 민주주의(Vertical Democracy)’라고 표현한다. 그가 말하는 ‘수직형 민주주의’란 ‘하향식 정책집행과 상향식 정치참여’라는 말로 정의된다. ‘협의제 민주주의’건 ‘수직형 민주주의’건 간에, 선거에 의해 선출되지는 않았지만 능력과 전략적 안목을 가진 공산당 지도부가 올바른 국가전략을 하향적으로 제시하고, 전문가들에 의한 공청회나 인터넷 등을 통한 의견수렴, 하급 당조직이나 행정단위에서의 활발한 토론, 촌락 단위에서의 민주주의 실험 등을 통해 민의를 상향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양자 간의 조화를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그 내용을 접하는 순간, ‘이거 유신(維新)체제잖아’하는 생각이 들었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선으로 선출된 대통령에게 절대권력을 부여하는 유신체제 아래서 정당간의 수평적 정권교체는 분명 불가능했다. 하지만 유신체제 아래서 박정희 대통령은 눈앞의 정치적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중화학공업 건설에 나설 수 있었다. 김형아 국립호주대 교수는 유신체제와 중화학공업의 상관관계에 대해 ‘박정희의 양날의 선택’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또 유신체제 아래서 일정한 정도의 아래로부터의 참여는 보장됐다. 마을 단위에서 자연스럽게 지도자를 선출하고,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사업을 선택해 추진했던 새마을운동이 그 좋은 예다. 더욱이 유신체제 아래서도 야당의 존재는 보장됐다. 야당 지도자나 야당 의원, 혹은 언론이 박정희 정권의 잘못을 비판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유신체제가 억압적이었다고는 하지만, 이런 점에서는 지금의 중국 공산당 정권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스승 한국’을 부인하는 중국


       그러고보면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에는 경제면에서 박정희 모델을 모방했고, 이제는 정치면에서 박정희 모델을 흉내 내고 있는 셈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제기획원 차관보를 지냈던 황병태 전 주중(駐中)대사는 “1990년대 중반, 중국대사를 지내면서 중국 공산당 지도부나 인민일보 등 언론이 박정희 모델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이제 중국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이 한국에서 배웠다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예컨대 자오치정(趙啓正)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외사위원회 주임(대변인)은 미국의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와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한다. “중국식 발전 모델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 맞지만, 사실 여러 방면에서 미국 유럽 일본 싱가포르 등의 경험을 참고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발전 모델 중 일부를 중국 상황에 맞게 결합했고, 중국 문화의 옷을 입혀서 새롭게 탄생시켰습니다.”(<생중계, 중국을 논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우선 중국의 뿌리 깊은 중화(中華)사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자신들의 번속국(蕃屬國)이었던 나라가 자기들보다 잘 산다는 것, 그리고 그들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웠다는 것을 그들은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중국으로 식모살이 하러 오게 될 지도”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대한민국이 더 이상 중국의 모델이 되지 못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중국은 독일이나 일본 같은 경제강국들을 제치고 이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의 한 축으로 우뚝 섰다. 반면에 대한민국은 제자리걸음을 거듭했다. 1인당 GDP가 늘기는 했지만, 국민의 힘을 하나로 엮어서 과거처럼 세계를 감동시키는 드라마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시위, 노사분규, 지역갈등, 정치권의 저열한 정권다툼, …. 이런 것들을 보면서 중국은 ‘대한민국은 우리의 모델이 아니라 반면교사(反面敎師)’ 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10년 전 중국에 출장을 갔을 때 만난 기업인들은 “우리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우리 자식 세대에는 우리 아이들이 중국으로 식모살이 하러 오게 될 지도 모른다”고 말했었다. 내년 총선에서 표 좀 얻겠다고 나라 곳간을 헐어서 퍼주기 할 궁리만 하고, 다투어 ‘기업 때리기’에 나서는 정상배들의 얼굴 위로, 식모살이라도 해보겠다고 인천항 국제여객부두에서 중국행 페리선에 오르는 우리의 딸, 손녀들의 추레한 모습이 어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