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본사가 서울 태평로에 있던 시절에도 회사에 거의 나오지 않았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서초동 삼성타운 내 삼성전자 사옥 42층에 마련된 집무실에 정기출근한 지 100일이 지났다.

    그가 4월21일 처음 출근하고 나서 100일째 되던 날은 삼성전자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2분기 실적을 발표하고, 이 회장이 선진제품 비교전시회를 참관한 뒤 소프트 기술, S급 인재, 특허를 최우선 확보하라고 지시했던 지난 29일이다.

    31일 삼성에 따르면 이 기간 이 회장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을 벌이고 대지진 피해를 본 일본의 지인들을 위로하느라 세 차례 해외 출장을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일주일에 꼬박꼬박 이틀가량씩 총 17일을 서초사옥에 출근했다.

    평창올림픽 유치로 특별사면에 따른 국민적 빚을 일정 부분 갚은 이 회장이 본격적으로 '쇄신·실적·품질'이라는 세 마리 토끼 사냥에 나서는 한편 애플 등 글로벌 기업과의 특허 전쟁과 시장 선점 경쟁을 진두지휘하면서 "삼성도 독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가 서울 한남동 자택과 외빈 접객 장소인 승지원이 아닌 회사에서 근무하기로 한 시점은 삼성 계열사에 대한 국세청의 일제 세무조사, 삼성전자를 상대로 한 애플의 스마트폰 특허 침해 제소, 호텔신라의 '한복 출입금지' 사태 등 여러 복잡한 사안이 뒤얽혀 그룹 분위기가 뒤숭숭하던 때였다.

    따라서 그룹 장악력을 강화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느슨해진 분위기를 다잡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출근 첫날 애플의 소송과 관련해 "못이 튀어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라면서 "애플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우리와 관계없는, 전자회사가 아닌 회사까지도 삼성에 대한 견제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이에 따라 다음날 한국·일본·독일 법원에, 며칠 뒤 미국 법원에 애플을 맞제소하는 등 기민하게 대응했다.

    그는 또 삼성테크윈 일부 임직원의 비리 행위가 적발된 것을 계기로 곧장 테크윈 사장을 경질하고 "삼성 전 계열사에 부정부패가 만연했다"며 조직문화 쇄신을 선언했다.

    삼성은 즉시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장과 인사팀장을 교체하고 각 계열사 감사팀을 강화해 삼성 전반에 엄청난 긴장감과 경각심을 불어넣기도 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삼성전자가 1, 2분기 잇따라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내놓자 이례적으로 실적이 부진한 경영진을 중도에 교체하고 조직 개편을 단행해 인사 스타일이 바뀌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이어 1993년 신경영 선언 때부터 강조해온 '품질 경영'에도 나서 삼성테크윈의 산업용 공기압축기를 리콜하고 삼성전자 스마트 에어컨 6만대의 핵심 부품을 갈아주도록 했다.

    그는 출근 100일째이던 지난 29일 선진제품 비교전시회를 둘러보고 소프트 기술, S급 인재, 특허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5년, 10년 후를 위해 지금 당장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이 회장이 회사에서 근무하고 나서 삼성에는 엄청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지만, 그의 앞에는 여전히 많은 숙제가 남아 있다는 게 삼성 안팎의 분석이다.

    우선 삼성전자 실적을 제 궤도로 끌어올리고 국세청 세무조사를 원만하게 넘김으로써 삼성전자에 대한 경제계와 투자자의 우려를 없애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는 6월 말 일본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삼성전자의 상반기 실적은 조금 떨어질 것"이라면서도 하반기 경영 전망에 대해서는 "계획대로 될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애플, 오스람 등 글로벌 기업과의 특허 전쟁에서 이겨야 하고 삼성이 미래 먹을거리로 정한 태양전지, 자동차 전지, LED(발광다이오드), 바이오 제약, 의료기기 등 5대 신수종 사업도 안착시켜야 한다.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위해 재계 1위 그룹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정부와 국민의 요구도 있다.

    물론 삼성의 그룹 지배구조에 큰 변화를 줄 수도 있는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처분과 경영권 승계 등도 이 회장의 관심사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회장의 정기출근은 이미 일상이 됐지만,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게 삼성 안팎의 공통 전망이어서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삼성과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