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신용등급 하락은 中의 세계경제 주도권 확보 기회실질적 의미 G2 지위까지는 극복할 과제 많아
  •  "위기인가, 기회인가?"

    스탠더드 앤 푸어스(S&P)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해 '달러 제국' 미국의 위상을 뒤흔든 역사적 사건이 발생하면서 중국이 이번 위기를 '대국굴기(大國堀起, 대국으로 우뚝 일어섬)'의 기회로 적극 활용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 中 경제에도 악영향..긴축 기조 유지할 듯

    미국의 국가 신용도가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내려감에 따라 중국 또한 표면적으로는 적지 않은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됐다.

    중국은 지난 5월말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1조1천600억달러 어치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어 큰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아울러 중국의 외환 보유액 3조1천975억달러(6월말 기준) 가운데 3분의 2가량은 미국 국채 등 달러화 자산으로 구성돼 이번 사태를 초래한 미국을 제외한다면 가장 큰 '선의의 피해자'는 중국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 사태가 중국 경제에 드리운 가장 큰 그림자는 미국의 3차 양적완화의 가능성의 대두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과잉 유동성에 따른 물가 급등이 국내의 정치ㆍ사회 안정을 위협하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작년 하반기부터 긴축 기조로 돌아섰다.

    중국 정부는 연초 4% 안팎의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 목표치를 제시했지만 상반기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이를 훨씬 넘어서는 5.4%를 기록했다.

    이런 내부 상황 탓에 중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처럼 적극적인 국내 경기 부양책과 해외 국채 매입 등으로 세계 경제 회복의 '구원 투수'로 나설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도 대두하고 있다.

    9일 발표된 7월 CPI가 6.5%로 3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미국 신용등급 강등 사태에도 불구하고 올해 들어 4번째 금리 인상을 단행해 유동성 축소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 세계경제 주도권 확보 기회..위안화 국제화 장기적 도움

    그럼에도 세계 경제시스템을 좌지우지해온 미국과 유럽의 동반 위기는 중국이 G2 위상에 걸맞은 주도권을 확보하기에 절호의 기회라는 지적이다.

    올해 처음 일본을 제치고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자리로 발돋움한 중국은 국제금융시스템의 양대 축인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의 지배구조 개혁을 강력하게 촉구해왔다.

    중국은 유로존의 재정 위기가 지속되고 있던 작년 G20(주요 20개국)의 한국 경주 회의를 통해 IMF 지분을 확대시키는 데 성공했고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전 총재의 성추문 파문의 틈을 파고들어 자국의 경제 전문가 주민(朱民)을 IMF 부총재로 앉히는 데 성공했다.

    따라서 중국이 만약 이번 위기 국면에서 부채 위기국의 채권 매입에 나서면서 구원투수로 재등판한다면 지원의 대가로 국제금융시스템 안에서 지분과 발언권을 더욱 강력히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아울러 중국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위안화 국제화와 관련해서도 장기적으로는 달러화의 위상이 추락하면서 대안으로서 위안화 가치가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는 모양새다.



    ◇ 美 해외개입 여력 약화..中 영향력 확대될 듯

    한편 '세계 경찰'을 자임하면서 이라크전, 아파가니스탄전 등에서 천문학적 전비를 쏟아부었던 미국이 재정 부담으로 휘청거림에 따라 중국의 대국굴기에 더욱 유리한 조건이 형성되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작년 대만 무기 수출과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등으로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던 미국과 중국 양국은 올해 초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방미를 계기로 '대화와 협력'의 관계를 재정립했다.

    미국과 중국은 올해 '아시아태평양사무협상'을 출범시키고 첫 회담을 함으로써 일각에서는 아시아ㆍ태평양을 미국과 중국이 '공동 관할'하는 시대가 온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재정위기로 인한 국방비 감축이 불가피한 미국은 향후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 지역에 개입 여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그 공백을 서서히 중국이 메워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중국은 이미 실질적인 G2로서의 위상을 뒷받침할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도 갖춰나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중국은 미국의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 F-22랩터와 필적하는 성능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 젠(殲)-20(J-20)의 개발에 성공했고 곧 동아시아의 첫 항공모함이 될 바랴그호를 진수할 예정이다.

    작년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尖閣>열도) 어선 충돌 사건이 단적으로 보여줬듯 동아시아에서는 이제 경제·군사적으로 중국에 맞설 수 있는 나라가 없다는 점은 주변국들이 대국굴기의 길을 걸어가는 중국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지난달 1일 당 창건 90주년 기념식 때 장장 1시간 동안 이어진 연설에서 유독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힘줘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중국 수뇌부는 주변국의 견제 시선을 의식해 공개 석상에서 이 같은 표현을 가급적 자제해왔다.

    그렇지만 중국의 부상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지위에 올라서 실질적인 의미의 G2가 되려면 아직 걸어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최근 불거진 신장위구르자치구 연쇄 테러 사태에서 볼 수 있듯 중국은 여전히 방대한 영토의 통합과 보전을 넘어서는 적극적인 대외 진출 정책을 펼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게다가 중국은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외국 내정에 대한 불간섭과 군의 해외 진출 자제 방침을 천명하고 있다.

    따라서 개혁개방 정책 이후 30여년 동안 '도광양회(韜光養晦,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의 기본 대외 정책 원칙을 견지해온 중국이 역사적인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사태 이후 어떤 길을 걸어갈지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