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신용등급 강등 여파로 9일 코스피 1,700선이 장중 붕괴되는 등 이틀 연속 전세계 곳곳의 주식 시장이 대폭락하자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각 기업은 각국 증시가 돌아가며 대폭락 장세를 연출하자 2008년말 미국발 국제 금융위기의 재연을 우려하면서 비상 경영 국면으로 전환을 심각히 고려하고 있다.

    특히 올해 대형 M&A나 신규 사업 진출, 생산시설 확충에 나선 기업들은 자금줄이 막혀 차질을 빚을까 우려하면서 대책 강구에 나섰고 주요 수출기업들은 증시 폭락에 따른 금융시장 경색과 수요위축으로 실적이 급전직하할 가능성에 대비하느라 부심하고 있다.



    ◇ 자금 조달 이상징후 없지만 비상태세 돌입 = 현 사태에 가장 노심초사하는 측은 대형 M&A를 위해 당장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기업들이다.

    CJ그룹은 대한통운 인수 자금으로 2조1천억원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 가운데 계약금 10%는 이미 냈고 잔금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 이후에 내면 되는 상황이다.

    CJ에서는 입찰 당시 금융 위기 재연 등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자금 마련에 문제가 없는 선에서 입찰 가격을 써냈기 때문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은 극히 낮은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원자재 수입이 중요한 CJ제일제당은 최근 주가 폭락의 여파로 인한 환율 변동에 대비해 곡물 수입을 담당하는 부서와 재무 관련 부서를 통해 주기적으로 주가 및 환율 동향을 체크하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공격적 M&A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롯데그룹은 미국발 증시폭락이 향후 M&A 행보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롯데가 다른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현금성 자산이 풍부해 당장 어려움을 겪을 일은 없겠지만 이 같은 추세가 장기화될 경우 어떤 식으로든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우려했다.

    롯데 관계자는 "당장에 큰 영향은 없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M&A와 같은 문제에 있어서도 완급을 조절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며 "시장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는 롯데마트가 중국과 동남아 시장에 진출하면서 공격적인 M&A 전략을 펴고 있고, 국내에서도 롯데주류가 맥주시장 진출을 적극 검토하는 등 자금수요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SK그룹은 하이닉스 인수전과 관련해서는 인수 의향서를 제출한 SK텔레콤의 내부 유보금이 충분해 자금 조달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의 경제 위기가 혹시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 경우에 대비해 최근 주가 폭락과 환율 변동 등 일련의 사태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SK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환율, 유가, 금리 등이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서 연간단위 경영계획으로는 최적의 대응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1~2개월의 단기 경영계획을 세워 기업경영을 하고 있다.

    업종의 성격에 따라 1개월 또는 2개월 단위의 경영계획을 마련해 자금운용 및 투자 등에 문제가 없도록 수시로 경영환경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하이닉스 인수전에 뛰어든 STX는 일단 추이를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STX는 주요 국가들의 증시 급락 등 세계 경제가 급격히 어려워지고 있으나, 이번 사태가 IMF나 리먼브라더스 사태 등 이전 금융 위기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하이닉스 인수과 관련해 계획하고 있던 자금조달은 현재 차질없이 진행 중이다.

    STX 관계자는 "우량 자산 지분 매각 등을 통한 자금조달 계획은 현재 카운터파터와 얘기가 잘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건설업체들도 금융·증권 시장의 불안으로 향후 주택분양 사업과 기업 인수작업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사태가 악화된 지 며칠 안돼 당장 사업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장기화하면 분양 일정이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며 부동산 시장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수도권 주택사업이 더 지연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대우건설 계열 수처리업체인 대우엔텍과 스페인 담수플랜트업체 이니마 인수를 동시 추진 중인 GS건설은 "9월까지 대우엔텍, 12월까지 이니마 인수대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당장 자금경색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상황을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이에 따라 건설사들은 종전보다 더욱 엄격한 기준으로 사업성과 전망을 따져 성공 가능성이 높은 사업을 엄선해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 "생산시설 등 설비 투자에 만전" = 연초 수출호조 등에 힘입어 공격적인 투자 확대에 나섰던 기업들도 현사태를 우려섞인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기존의 투자계획은 유지한다는 기업이 대부분이지만 증시급락과 이에 따른 금융시장 위축이 지속된다면 일부 기업은 불요불급한 투자를 뒤로 미루는 등 우선순위의 조정에 착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총 23조원에 달하는 신규 설비 투자를 집행하기 위한 자금부족 문제는 아직까지 발생하지 않았지만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미국에서 촉발된 이번 위기에 대해선 지금까지는 일단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수준"이라며 "아직 실물경제까지 영향이 내려오지 않았고, 이미 3분기에도 글로벌 경제 어려움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세워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투자는 예정대로 한다는 기조"라고 설명했다.

    LG전자 역시 현재로서는 추가 자금조달 계획은 없고, 연초 세워놓은 4조8천억원의 신규 투자는 그대로 진행할 방침이다.

    회사측은 "현재까지 자금흐름에 큰 문제가 없고, 별도 조달 계획도 세우지 않고 있다"며 "어려운 때일수록 투자해야 이후 시장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는 예정대로 집행할 계획이고, 다만 이번 위기가 경기에 영향을 미칠 경우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고전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러시아 등 대부분의 해외공장 건설이 이미 완료됐고, 현재 브라질공장, 베이징현대 3공장 등의 건설은 이미 착공에 들어갔고 자금 조달도 대부분 완료됐기 때문에 차질은 빚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인해 향후 자동차 시장은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 일본 대지진, 아중동 지역 정세 불안 등 상반기 3대 악재에 이어 미국 더블딥 우려, 주요국 물가 불안 및 긴축 확대, 국제금융시장 불안, 주요국간 통화 갈등 재연 조짐이 겹치면서 글로벌 경영 환경이 좋지 않은 쪽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주요 판매 시장인 미국, 유럽의 경제 사정 악화가 매출 감소로 이어질까봐 우려하면서 주요 시장 동향 및 경제 지표 모니터링에 주력하고 있다.

    포스코는 45만원 안팎 하던 주가가 40만원 대로 빠지자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향후 사태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기침체가 심화할 경우 자동차 등 철강 수요산업의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바짝 긴장하고 있다.

    포스코는 하반기 글로벌 철강수요 증가세가 둔화되고 원료 가격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면서 올해 그룹 전체로 2조4천억원 이상의 원가를 절감하기로 하는 등 '리스크 관리경영'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또 전통적인 여름 비수기까지 겹친 상황이므로 철강 생산량을 조절하는 한편 포항 전기강판공장 수리 등 3분기에 설비 보수를 집중할 계획이다.

    다만 아직까지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 만큼 연초에 밝힌 7조3천억원의 투자비를 예정대로 집행하는 등 경영의 큰 구도를 유지하기로 했다.



    ◇ 정부도 비상 태세 돌입 = 지경부는 지난 8일 오후 4시 업종별 단체 등 유관기관 임원들을 참석시킨 가운데 '긴급 무역·투자 동향 점검회의'를 개최한 뒤 계속해서 최근 주가 폭락이 수출 등 경제 전반에 걸쳐 미칠 영향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지경부의 한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말들이 많았지만 사태가 지속되면서 중장기적으로 봐야할 문제들이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회의에서 반도체를 포함한 IT업계의 경우 안좋은 상황이 길어지는게 아니냐는 예상이 제기됐고 경기에 민감한 섬유업종 및 환율 하락에 대한 우려 섞인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