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기업, 독특한 국가자본주의 산물...정-경 공생관계가 한국 성공비결""대기업에 집중된 한국경제 충격에 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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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재벌은 일종의 도발이다. 경영이론에 따르면 이 공룡들은 오래 전에 사망했어야 한다."
29일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의 자매 월간지인 매니저 마가친(Manager Magazin)은 10월호 4개 지면을 털어서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재벌의 성공 신화와 그 명암을 집중 조명했다.
이 잡지는 "탄탄한 중소기업들이 떠받치는 독일의 산업 구조와 비교하면 한국 재벌이 그리 건강해 보이지는 않지만 세계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잠식하며 성공해 가는 모습은 매우 경이로운 일"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했다.
`문어의 나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만큼 소수 기업집단이 강력한 지배력을 발휘하는 선진국은 없다. 문어발식으로 확장해온 이들 재벌은 국내총생산의 40%를 차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서구 경영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이 아닌 매우 강력한 한국기업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며 "애플이 경쟁기업인 삼성을 소송전으로 끌어들인 것은 자신들의 공포를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폴크스바겐의 마르틴 빈터코른 최고경영자(CEO)가 "도요타가 아닌 현대가 가장 두려운 경쟁자다. 현대는 전 세계를 공략하고 있다"고 이 잡지는 전했다.
"과거 재벌은 발명가가 아닌 모방가에 불과했지만, 더 이상 빠른 추격자가 아니라 이미 선도자가 됐다. 스스로 트렌드를 조성한다"는 로널드 빌링거 매킨지 서울사무소장의 평가도 소개했다.
매니저 마가친은 재벌의 성공으로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다시 4∼5%에 이를 정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글로벌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고 있다며 `한국식 모델의 성공'은 한국의 역사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이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가나와 비슷한 수준의 빈국이었지만, 반(反) 시장경제 주의자인 박정희 대통령이 차관을 얻어 기업을 지원했고, 삼성, LG, 포스코, 현대 등이 바닥에서부터 기적을 일궈냈다고 소개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 출신이라며 정치계와 대기업 간의 교류가 활발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친환경 기술과 의료산업을 예로 들면서 관료들이 결정하면 경영자들이 이를 시행하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한국은 움직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성공적이라는 것이 이 잡지의 평가다.
파이낸셜 타임스 독일판(FTD)도 지난 28일자 `우리가 너희를 따라잡았다'라는 제목의 기획기사에서 "한국 대기업이 숨막히는 속도로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 역시 박정희 시대 이후 재벌의 고속 성장사를 자세히 다루면서 한국 전문가의 말을 인용 "한국 대기업은 독특한 국가자본주의의 산물로 정-경의 공생관계가 한국의 성공비결"이라고 분석했다.
삼성물산의 아부다비 원전 건설수주를 지원하기 위해 한국정부가 대기업들과 함께 아랍에미리트(UAE) 정부에 반도체, 조선, 군사기술 분야에 대한 종합적인 협력안을 제시한 것을 예로 들었다.
독일 언론은 그러나 "한국 재벌이 지나치게 성공했다"며 재벌과 이들을 둘러싼 시스템을 문제 삼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과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이 탈세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았다가 사면ㆍ복권된 것은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것이 었다며 "법은 재벌 총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한국금속노조 관계의 말을 인용했다.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갖는 위험성도 경고했다.
매니저 마가친은 "재벌은 창업자 가문들에 의해 적은 지분으로 통제되고 있으며, 전문가들조차도 기업경영구조를 파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잡지는 "한국인들은 위험성을 판단하는 데 미숙하다"는 위르겐 뵐로 한독상공회의소 소장의 말을 전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독일기업들보다 더 자주 `실험과 오류' 방식을 따른다고 평가했다.
FTD는 대기업들이 정부의 국책 프로젝트의 핵심을 독점한다면서 "중소기업들에는 재벌의 힘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이 정도 발전한 수준의 국가라면 부의 불균형에 대해서 유의 해야 한다"는 로페즈 아이메스 멕시코 경제학 교수의 말을 인용, "몇몇 대기업에 집중하는 한국경제는 충격에 취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