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분석기관인 한국CXO연구소가 올 연말 내년 초 대기업 임원 인사의 키워드는 'WEST'라는 눈길 끄는 보고서를 8일 내놨다.

    오일선 CXO연구소 소장은 보고서에서 'WEST'가 'Wall(벽)', 'Ethic(윤리)', 'Short(감축, 단축)', 'Technology(이공계)'의 이니셜이라고 설명했다.

    즉, 이번 인사에는 남녀와 학벌의 '벽' 허물어지면서 동시에 임원 승진에 '윤리'를 엄격한 잣대로 삼는 사례가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또 삼성과 현대차 등 주요 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임원 인사를 단행하면서 잔치를 벌였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실적 부진에 따른 고정비용을 줄이려고 임원 수를 '감축'하고, '이공계' 선호 추세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 여성, 학벌의 벽 무너진다 = 여성 임원의 중용에 관한 암시는 이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입에서 잇따라 나왔다.

    특히 이 회장은 지난 8월 서초동 사옥에서 여성 임원들과 오찬을 하면서 "여성이 임원으로 끝나서는 자신의 역량을 다 펼칠 수 없을 수도 있어 사장까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공언했다.

    이어 삼성전자는 지속가능 보고서에서 2020년까지 여성 임원의 비율을 10%까지 늘리겠다고 못을 박았다.

    올해 현재 삼성전자의 전체 임원이 1천여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10년후 삼성전자에는 100여명 이상의 임원이 포진하게 된다는 의미다.

    신 회장도 최근 주요 계열사 임원 회의에서 "앞으로는 여성인력을 잘 활용하는 기업이 성공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며 "롯데에도 여성 임원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100대 기업 내 여성 임원은 2005년 13명이었으나 2007년은 26명, 2010년은 51명, 올해는 76명으로 매년 꾸준히 늘었다.

    올 연말 내년 초 인사에서는 100대 기업의 여성 임원이 100명을 웃돌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이른바 'SKY대' 출신 비율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국내 1천대 기업의 SKY 출신은 2007년 59.7%에서 2008년 45.6%, 2010년 43.8%로 낮아지다 올해는 41.7%로 감소했다.

    이번 최고경영자(CEO) 인사에서는 30%대로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서는 관측했다.

    따라서 '비(非)스카이' 출신의 발탁 인사와 함께 고졸 출신의 임원 중용도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 윤리, 임원 인사의 핵심 잣대로 떠올랐다 = 삼성테크윈의 임직원 비리로 이 회장이 강도 높은 부정부패 척결을 선언하면서 삼성그룹의 이번 인사의 핵심 키워드중 하나는 '쇄신'이 됐다.

    작년 사상 최대의 임원 인사를 단행하면서 과감한 발탁 등 세대교체를 단행했던 삼성은 이번 인사에서 쇄신을 통한 조직문화의 변화를 꾀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로 삼성은 임원들을 대상으로 개인 비리부터 부하 직원에 대한 부도덕한 명령이나 지시, 중소기업과의 잘못된 관행, 부정 축재 등 저인망식 감사를 단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윤리적인 흠결이나 오점이 없는 점을 승진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는 이러한 분위기는 점차 대기업 사이에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오너 경영자들은 단순하게 실적 향상만을 추구하면서 윤리성이 결여되면 지속 가능한 경영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신임 임원 전반적 감축 전망 = 글로벌 경기 불황으로 경영 실적이 저조해 고정비용을 줄이는 것이 기업들의 과제로 떠올랐다.

    임원을 포함한 인력 구조조정은 기업들이 가장 손쉽게 택할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에 이번 인사의 폭이 작년처럼 크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최근 외부에서 핵심 인재를 선발해놓고도 채용 확정을 보류하는 대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실적이 좋은 기업들은 신임 임원을 늘릴 가능성도 있다.

    다만, 신임이 는다 해도 전체 임원 수는 작년보다 줄어들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즉 신임을 적게 선발하고 기존 임원을 많이 내보내는 '입소출다(入少出多)' 또는 신임을 많이 뽑지만, 기존 임원도 많이 내보내는 '입다출다(入多出多)'의 패턴으로 인사가 진행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이번 인사에서 정보통신(IT) 업종 등을 중심으로 임원 승진 기간이 단축되거나 평균 연령대가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했다.

    100대 기업은 작년 1960∼1961년생이 임원 승진의 주축이었고, 올해는 1962년생 이후가 주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비해 IT,전자업종은 전체 평균보다 2∼3년 젊은 층이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고 보고서는 내다봤다.

    ◇ 이공계 출신이 임원 꾸준히 증가 = 국내 주요기업의 이공계 출신 CEO 증가 추세는 꾸준하다.

    1천대 기업의 이공계 출신 CEO는 2008년 41.4%에서 작년 43%, 올해는 43.9%로 점증했다. 올해는 45%선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세는 임원급으로 갈수록 뚜렷한 양상을 보인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현장직이나 기술 연구직, 등 '필드(Field)'형 임원이 '스태프(Staff)'형 보다 선호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인사에서는 실적 부진에 해외 수출 등 영업 환경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마케팅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임원들이 중용될 것이라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