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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선생님~ 호박은 어떻게 자라는 거예요?”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선생님께 질문을 던졌다. 능숙한 솜씨로 호박을 설명하는 선생님은 바로 광주 무등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정남숙(54) 씨다. 25년간 야채가게를 운영해온 정 씨는 우연찮은 기회에 일일 교사로 활동하게 됐다.
지난해 3월, 인근에 있는 봉추초등학교와 무등시장은 아이들을 위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여기에 상인들을 선생님으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정 씨는 상인회의 추천을 받아 1기 상인강사로 뽑혔다. 그녀가 맡은 과목은 ‘호박 강의’이다. 직접 호박을 키우고 판매까지 해온 그녀로서는 전공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수업은 둥그렇게 둘러앉은 아이들과 질문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애들아, 맷돌호박이 어디서 만들어질까?” 정 씨가 질문을 던지자 아이들은 “몰라요~ 빨리 알려주세요!”라고 아우성을 쳤다.
“이 작은 호박 씨앗을 땅에 심어요. 그러면 15일쯤 후에 입이 2개 나오고, 10일 더 자고 일어나면 4잎이 나와요.” 아이들은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거리며 선생님을 응시했다.
“그럼 저 호박은 언제 만들어지는데요?”라고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했다.
“저 호박은 잎들이 무성해지면서 호박꽃과 함께 작은 열매가 생기는 거예요. 다른 과일은 꽃이 먼저 피고 떨어지면서 열매를 맺죠? 그런데 호박은 꽃과 같이 열매를 맺어요. 호박이 이렇게 커지면서 꽃이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는 예요.”
정 씨의 설명에 아이들은 호박을 만지작거리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책상위에는 갖가지 호박이 올라와 있었다. 애호박부터 늙은 호박, 맷돌호박 등 종류도 다양하다. 말 그래도 ‘체험학습’이 이뤄지고 있었다.
"호박이 어떻게 자라는지 배웠으니, 이제 우리가 호박요리를 먹어볼까요?” 정 씨는 직접 만들어온 호박죽을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노란 호박죽이 우리가 배웠던 저 늙은 호박으로 만든 거예요”라고 말하자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호박죽을 떠먹기 시작했다. 호박을 친숙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 정 씨의 수업 목표이기도 하다.
보통 아이들이 호박을 잘 먹을 줄 모르는데 수업을 하고 나면 쉽게 먹는다는 것이 그는 설명이다.아이들이 시식을 하는 동안 정 씨는 호박의 효능을 설명했다. “호박을 먹으면 피부도 부드러워 지고요. 다이어트 식품이라 살이 안 쪄요. 우리 편식하지 말고 호박을 많이 먹어야 겠죠?”
아이들은 “네! 선생님 맛있어요”라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한바탕 웃음을 쏟아냈다. 그렇게 한 시간 강의는 금방 지나갔다. 직접 호박을 만져보고 맛을 보니 아이들은 지루할 틈도 없었다.
하지만 정 씨가 처음부터 강의에 익숙했던 것은 아니다. 25년간 장사만 해왔던 터라 ‘강사’라는 직함이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할 줄 아는 건 장사 밖에 없는데,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어요”라며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첫 강의시간에는 떨려서 준비한 멘트를 그냥 줄줄 읽었을 정도라고 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강의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을 익힌 것이다. 이제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정 씨는 아이들이 ‘호박 선생님’이라고 불러줄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신기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때 정말 선생님으로 인정받는 것 같아서 보람돼요.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그는 전했다. 상인강사가 정 씨에게 제 2의 인생을 찾게 해 준 셈이다.
덕분에 생활도 활력이 넘치게 바뀌었다. “손님들에게도 더 친절해지고 웃음이 많아졌다”고 정 씨는 웃어보였다. 정씨를 보고 주변 상인들도 상인강사를 지원할 정도다. “저랑 친한 상인언니들이 저를 보면 부러워해요. ‘본인들도 해보고 싶다’고 말하면 꼭 지원해보라고 말하죠.”
무등시장은 정 씨를 포함해 약 10명 정도의 상인 선생님들이 있다. 방앗간집 사장님은 떡을, 쌀가게는 곡식, 생선가게는 생선 등을 맡아 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