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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동 금융위원장의 발걸음이 예사롭지 않다. 며칠전 그는 ‘대책반장’이라는 별명답게 1박 2일 동안 전국 5대 광역지역의 산업단지와 창업센터를 총알같이 둘러보았다. 내년 초 발표할 중소기업 금융환경 혁신 대책을 위한 현장 실태조사가 목적이었다.
진영욱 정책금융공사 사장, 조준희 기업은행장,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김정국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 등 금융 단체장들이 대거 동행했다.
김 위원장은 참석자들이 제기한 문제점에 대해 현장에서 개선을 약속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구지역을 끝으로 이틀간의 현장투어를 마친 김 위원장은 단순 명쾌한 메시지를 내놓았다. ‘중소기업 금융지원 제도와 절차를 확 뜯어고치고 중소기업 수요에 충실한 맞춤형 종합대책을 내놓겠다’ 는 것이다.
21일 첫 방문지인 충북대 창업보육센터. 간담회 열기는 뜨거웠다. 24명의 중소기업 대표와 창업 준비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2시간여동안 현장에서 느꼈던 애로사항들을 속사포처럼 쏘아댔다.
김 위원장은 젊은 시절 창업했다 졸딱 망한 경험을 꺼내는 것으로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김 위원장은 "나도 창업 1세대"라며 1978년 1년간 다니던 삼성물산을 그만두고 창업한 무역회사가 사기를 당해 1년만에 문을 닫게 된 이력을 소개했다.
그는 "당시 멀쩡한 직장을 뛰쳐나와 창업을 한다는 이유로 '돌아이' 취급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창업에 뛰어든 여러분을 보니 맥박이 뛰는 느낌을 받았다"며 "청년 창업을 내년도 핵심사업으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농업분야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정진근 해뜯날참두릅영농조합 대표는 "농업부문은 금융지원을 받는데 한계가 많다"면서 "최근 친환경 제품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자금은 물론 토지 지원도 함께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농업경제연구소장으로 2년간 일한 경험을 꺼냈다. 그러면서 "평소 농업에 대한 관심이 크다. 여러 부처들과 협의해 농업에 대한 금융지원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충북대에서 중소기업 대표와 창업 준비생과 작별한 김 위원장은 곧바로 두어시간을 달려 전북 완주군에 있는 케이엠(KM)사를 방문했다. 산업용 로봇과 풍력발전기 블레이드를 제조하는 케이엠사는 박성배 대표와 그의 가족을 포함해 총 4명이 LCD 재료를 제조해 성장한 `원조 벤처기업`이다.
현재 136명의 직원을 둔 연 매출 422억원 규모의 유망 중소기업으로 성장해 2년 후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가족사업을 튼튼한 중소기업까지 성장시켰지만 여전히 박 대표는 `자금난`을 토로하며 어려움을 전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담보에 의존한 중소기업 대출 관행을 없애고, 기술 하나만으로도 대출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최근 논라인 되고 있는 꺾기 관행과 관련해서는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소기업에게 꺾기를 강요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꺾기 관행에 대해 세심하게 살피고 다시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하루뒤인 22일 김 위원장은 영남지역으로 핸들을 틀었다. 김 위원장은 이날 부산 테크노파크와 대구 성서단지 등을 방문해 지역 중소기업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중소기업 금융지원과 관련해 "보증, 융자, 투자를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보증과 융자, 투자를 기관별로 상품별로 따로 분리해 담당하는 탓에 종합적 지원이 미흡하다는 판단에서다.
김 위원장은 "보증하고 투자를 연계하면 보증 수수료를 낮출 수 있다"며 "투자의 경우도 성공하면 수익을 나눠가지고 실패하면 부담을 나눌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내년 2월 중소기업 금융지원 포털 사이트 개설 계획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중소기업 창업에서부터 성장과정, 구조조정까지 전 과정에 걸쳐 각종 지원제도와 안내사항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사이트를 만들도록 지시했다"고 운을 떼었다.
그러면서 "내년 2월 말 정책금융공사 홈페이지 내에 사이트가 오픈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여신 면책조항 신설 방침도 재차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정당한 심사를 거쳐 집행한 대출에 대해서는 담당 직원에게 불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은행 내규가 아닌 감독규정 등으로 제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틀간 충북→전북→광주→부산→대구로 이어지는 강행군을 소화했다. 금융당국 수장으로서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할수 있는 기회였다는 평가다.
금융당국은 내년에 기업 구조조정의 고삐를 죌 것이라는 신호를 최근 잇따라 보내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가 국내 경제에 주는 충격이 내년부터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가시화될 수 있는 큼 기업의 옥석을 미리 가려내 필요한 곳으로 자금을 흐르게 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전국 주요도시의 중소기업 현장을 방문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김 위원장의 다음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