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를 보러 시장에 간다? 조금 엉뚱해 보이지만 서울시 망우동 우림시장에서는 전혀 어색한 풍경이 아니다.
과거 시장이 장을 보러 가는 곳이었다면 최근에는 문화를 나누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전통시장이 문화의 옷을 갈아입은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시행 중인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이하 문전성시 프로젝트)이 일으킨 변화다.
오후 2시. 다른 시장은 한가할 시각이지만 우림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시장 내 문화복합공간인 ‘춤추는 황금소’에서 영화를 상영해주기 때문이다. 상영관 밖에는 시장을 찾은 손님들과 상인들로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영화를 보러 시장을 찾은 심귀옥(60)씨는 “이거 보려고 점심을 먹고 부리나케 왔다”고 말했다. 우림시장 인근에 거주하는 심 씨는 ‘추억의 영화관’ 일정에 맞춰 시장을 방문한 것이다.
“오늘은 성춘향을 보여주는데, 예전에 본 영화지만 다시 보고 싶어서 왔어요. 영화가 끝나면 우림시장에서 저녁 장거리를 사갖고 갈 계획이에요. 영화도 보고, 장까지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저렴하고 싱싱한 물건 때문에 시장을 찾았다면 요즘은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서 찾기도 한다고 심 씨는 설명했다. 우림시장이 인근 주민들에게 문화를 공유하는 재미난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심 씨는 한 손에 든 쌀 봉지와, 다른 손에 든 누룽지 한 묶음을 보여주면서 “추억의 영화관에 오려면 이런 게 필요하다”며 웃어보였다. 쌀은 관람료로 내고, 누룽지는 팝콘을 대신 할 주점 부리다.
추억의 영화관은 관람료 대신 쌀과 라면을 받아 지역 사회시설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문화를 즐기면서 동시에 ‘좀도리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절미(節米)의 전라도 방언인 ‘좀두리’는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에 매 끼니마다 한줌씩 절약해 모은 쌀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 주는 활동이다.
-
간이 매표소에는 쌀 한줌씩이 담긴 비닐봉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손님들과 상인들의 참여율이 얼마나 높은지를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시장 매출도 늘었다. 추억의 영화관과 같이 특별 문화프로그램이 열릴 때에는 많게는 20~30%가량 매출이 증가한다. 우림시장을 찾은 손님들은 문화를 즐길 수 있어 좋고, 상인들은 매출을 늘릴 수 있으니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우림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 총괄기획을 맡고 있는 경상현 프로그램 매니저(PM)는 “우림시장에 문전성시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으면서 인근 주민들이 문화를 즐기기 위해 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시장이 문화를 나누는 공간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상당하다. 특히 대형마트가 시장상권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전통시장이 새로운 ‘탈출구’를 찾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경 매니저는 “마트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형마트에 없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차별화되는 점으로 덤 문화와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꼽았다. 조금 더 얹어주는 따뜻한 정과 함께 재미난 볼거리가 마련된다면 전통시장이 대형마트 못지않은 경쟁력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
우림시장은 올해 선정된 10개의 문전성시 프로젝트 시장 중 하나로 내년까지 지원을 받게 된다. 상인들과 인근 주민들의 참여도가 높아 시장의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 우림시장에서 열린 문전성시 프로그램은 12개.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영화를 상영하는 추억의 영화관, 시장의 한 평 공간에서 공연을 하는 한 평 예술단과 상인극단인 ‘춤추는 황금소’가 있다. 춤추는 황금소는 오는 27일 오후 4시 우림소극장에서, 오는 30일 오후 7시 중랑구청 강당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공연에는 상인과 주민들 18명이 출연한다.
이 밖에도 고객들에게 가요와 풍물 등을 가르쳐주는 시장통 학교, 우림시장 광고 영상을 상인들이 직접 만드는 ‘상인CF’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