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유로본드 발행 반대에 시장불안 커져
  • 유럽 재정위기가 악화될 조짐을 보여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작년 5월 그리스의 구제금융 신청으로 본격화된 위기는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을 구제금융으로 밀어 넣더니 경제대국 이탈리아와 프랑스까지 흔들고 있다.

    최근에는 핵심 경제국인 독일의 10년물 국채 응찰률이 2000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해 독일마저 위기로 내몰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25일에는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동유럽 국가인 헝가리의 국가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낮춰 불안감이 동유럽으로 퍼졌다.

    시장은 일파만파로 커지는 위기를 지켜보며 유럽 정책당국의 대응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과 나머지 국가들의 이견은 계속되고 있다.

    국내 증시 전문가들은 위기 해결의 열쇠를 쥔 독일의 입장 변화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위기 유럽 전방위로 확산조짐

    주로 남유럽 국가들인 피그스(PIIGS) 지역에 국한된 것으로 여겨지던 유럽 재정위기는 최근 서유럽 핵심 국가들과 동유럽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23일 독일의 10년물 국채 응찰률이 1.1배로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인 것은 시장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가장 안전하다는 자산중 하나로 평가받는 독일 국채마저 투자자들이 외면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기 때문이다.

    독일과 함께 유럽 핵심국가인 프랑스도 흔들리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최근 유럽 재정위기가 악화되면 프랑스도 최고 신용등급인 `AAA'를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잇따라 경고했다.

    프랑스는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위험노출도(익스포저)가 크다. 이탈리아가 채무상환 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면 프랑스 은행이 줄도산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7%를 넘어섰다.

    솔로몬투자증권 임노중 연구원은 "프랑스는 재정적자 해결 노력이 규모에 비해 너무나 미진해 현재의 신용등급을 유지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우려했다.

    시장은 25일과 29일 예정된 이탈리아 국채 발행과 28일 프랑스 국채 발행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동안 시장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듯했던 동유럽 국가들도 위기 징후를 보이고 있다.

    무디스는 헝가리의 국가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인 `Ba1'으로 한단계 강등했다. 헝가리는 신용등급 강등에 대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에 금융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동유럽 국가들은 서유럽에 대한 위험노출도가 커 서유럽으로 자금이 회수되면 급속히 위기에 빠져들 수 있다.

    KTB투자증권 김유미 연구원은 "서유럽에 대한 동유럽의 위험노출도는 75%나 된다. 서유럽 은행들이 자금 회수에 나서면 신용경색이 일어날 수 있는 구조다"라고 지적했다.



    ◇삐걱대는 공조…키는 독일 손에

    재정위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려는 유럽 국가들의 노력은 지지부진하다.

    24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3국 정상회담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로 본드 발행에 대한 반대 의사를 재확인했다.

    금리차는 국가 간 경쟁력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로 본드는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동양종금증권 이재만 연구원은 "독일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2% 초반 수준인데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채권 금리는 4% 수준이다. 독일이 유로 본드 발행을 반대하는 것은 자국의 이자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시장의 관심은 유럽중앙은행(ECB)이 더 과감한 대책을 내놓을지에 쏠린다.

    미래에셋증권 이재훈 연구원은 "독일이 유로 본드에 대한 반대 입장을 재확인한 만큼 시장의 관심은 ECB 역할론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은 ECB가 국채 매입을 확대할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ECB의 국채 매입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2.5%로, 영국 중앙은행(BOE)(20.7%)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18.3%)에 비해 지나치게 작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유럽 국가들은 ECB의 적극적인 국채 매입을 주문하고 있지만 이 또한 독일의 반대에 막혀 있다. 독일은 ECB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어 ECB의 신용 위험이 커지는 것이 반갑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유럽 재정위기의 해결은 결국 독일에 달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만 연구원은 "유럽 재정위기가 최근 빠르게 확산되면서 투자심리가 극도로 악화됐다. 위기 해결의 키를 독일이 쥔 만큼 당분간 세계 증시가 독일만 쳐다보는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은 오는 29일 열리는 EU 재무장관회담과 다음달 8일 열리는 EU 정상회담에서 독일이 전향적인 입장을 보일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