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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 5일장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시골장터가 화제가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원숭이’의 출연 덕분이다.
지난 2일, 원숭이 분장을 한 사람이 나타나자 하동시장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검은 털을 뒤덮고 뛰어다니는 모습이 영락없는 원숭이다.
조금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그는 구성진 노랫가락을 뽑으며 신명 나는 공연을 펼쳤다.
“화개면에는 녹차도 많고~ 섬진강에는 재첩도 많고~”라고 운을 때자 관객들은 “쾌지나 칭칭나네~”라고 화답한다.
원숭이로 분장한 그는 경상대 중어중문학과 한상덕(51) 교수다. 한교수는 지난 8월부터 하동시장 장터에서 인간 원숭이라는 광대노릇을 해오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를 하는 교수가 공연을 한다? 그것도 원숭이 분장을 하고? 의아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하동에서 학창시절을 보내온 한 교수는 “하동시장을 살리기 위해 직접 공연을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시장을 활성화시키고자 재능기부에 나선 것이다.
기회는 우연찮게 찾아왔다. “하동군 경제정책담당이 제 초등학교 동창이예요. 그 친구가 전통시장을 부활시킬 방안을 놓고 고민하는 걸 보고 문화공연을 제안하게 된 거죠.”
하동의 스토리를 담아 모노드라마 형식의 극을 만들어냈다. 여기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원숭이 분장을 택했다. “좀 이상하다 싶어야 쳐다 볼 것 아닙니까”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 교수는 대학시절부터 연극을 해온 ‘프로 연극인’이다. 한 시간 가량 되는 공연도 끄떡없이 해낼 정도다.
“학부시절 전공은 중어중문학이지만 석사와 박사과정에서는 중국연극을 공부했어요. 연극이 좋아서 졸업 후에도 극단 활동을 했었죠.”
경남연극제에서는 최우수 연기대상을 받은 경력도 있다. “혼자 무대에 서는 것은 매력적인일이예요”라고 한 교수는 웃어보였다.
그의 공연은 하동의 특산물을 알리는 내용부터 흥겨운 노래와 연극 등으로 구성돼 있다. 관객들이 주로 어르신들이기에 ‘저승사자 퇴치송’이라는 특별한 노래도 부른다.“아리랑~아리랑~아라리요~ 육십에 저승사자가 날 오라 하거든~ 부모님 두고서 못 간다고 하소~ 칠십에 저승사자가 날 오라 하거든~애인이 생겨서 못 간가고 하소~”
구성진 가락과 재미난 가사에 어르신들은 웃음꽃을 팡 터뜨린다. 어깨춤을 더덩실 추며 흥겨워하는 이들도 있다. 시장 한복판에서 한바탕 놀이판이 벌어진 것이다. 누가 배우고 관객인지 구분하지 못 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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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마친 그는 원숭이 차림으로 차에 올랐다. 바삐 향한 곳은 교수연구실. 짙은 화장을 벗겨내자 쨘~ 전혀 다른 얼굴이 나왔다. 점잖은 인문학 교수의 이미지가 풍겨 나온다.
한 교수는 “동물의 생에서 이제 인간으로 돌아왔다”며 껄껄 웃어 보였다.
본업으로 돌아온 한 교수는 수백명의 학생들을 가르친다. 장터에서는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강의실에서는 학생들을 매료시킬 정도로 카리스마가 넘친다. 지난해에는 경상대학교에서 가장 잘 가르치는 ‘베스트 티쳐상’도 받았다.
근엄한 인문학 교수에서 우스꽝스러운 원숭이. 두 얼굴을 가진 한 교수는 “하동시장이 옛 명성을 되찾을 때까지 원숭이로 변신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